기온이 오르는 여름에는 맥주 양조가 어렵다. 아무리 에일이라고 할지라도 발효 적정온도가 섭씨 15도에서 24도 사이[각주:1]인데, 평균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한국에서 발효 냉장고 없이는 양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올 봄에 두 차례에 걸쳐 8리터 (2갤런)의 맥주를 양조해놓았고, 또 평소에 술을 잘 먹지도 않으니 그럭저럭 여름 한 철은 버틸 것 같아 발효 냉장고의 도입을 서두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 자로, 더위가 채 찾아오기도 전에 8리터의 맥주는 마치 언제 양조했냐는 듯 다 사라지고 없는 상태다. 애초 8리터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지만, 지속되는 취업 실패로 인해 어느새 자리잡은 1일 1음주의 습관 탓이 크다. 마트에서 적당한 가격의 국산 라거를 사다 마시고는 있지만, (인간이 참 간사한게) 예전에는 별 맛 차이도 구분 못하던 혀와 뇌가 끊임없이 이 맛없는 보리맛 탄산음료를 저주하고 그 진하고 크리미한 에일을 원하고 있는 형편이다.


결정적으로 지금 구상하고 있는 자체 옥토버페스트. 10월에 마시려면 최소한 9월에는 양조를 해야 하는데, 왠지 올해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 9월이 되어도 발효에 적절한 온도가 조성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9월 말로 양조시기를 미루기에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냉장고를... 샀다...



운이 좋았는지 중고로 택배비 포함 5만 7천원에 100리터짜리 냉장고를 구했다. 대우의 신품 126리터짜리가 17만원 정도 하던데 백색가전의 명가, LG 제품임에도 너무 싸서 의심스러웠긴 했다. 막상 사고도 5만원을 허공에 날리는게 아닐까 싶었는데, 받고보니 99년에 생산된 물품이라 그런가보다 했다. 시험가동을 해봤는데 냉장기능에는 문제가 없고, 무엇보다 벌써 16년이나 된 물건인데도 컴프레셔에서 나는 소음이 크지 않다.


온도조절기는 국내에서 구할까 하다가 혹시나 싶어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찾아봤는데, 꽤 쓸만해 보이는 물건이 1만원도 채 안 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국내에서 파는 2~3만원 짜리도 중국에서 만드는 것이 있던데, 그걸 그 가격에 사느니 차라리 아예 중국에서 사는게 낫지 않나 싶어서 일단 주문을 넣고 기다리고 있다. 도착하면 설치방법과 중국산 온도조절기의 성능을 정리하여 또 포스팅할 예정이다.


더불어 2갤런 발효조와 라거 리필이 미국에서 물건너 오는 중이라는 소식. 나는 평소 브루클린 브루샵의 비어 메이킹 믹스를 쓰는데 거기는 진짜 맥아를 보내줘서, 그걸 끓여 워트(Wort, 당즙)를 얻어내는 작업이 영 귀찮았긴 했다. 그런데 미스터비어에서 나오는 리필 캔은 이미 얻어진 당즙을 생수에 희석시키기만 하면 되는거라 땀 나고 더운 여름에 더 간편한 작업이 가능할 것 같다. 리필 캔 작업은 물론이고, 진짜 맥아에서 당즙을 얻는 작업도 앞으로 차근차근 올려보겠다.


술도 못 마시는게 어디서 술 만드는 취미를 얻어서 이 난리인가 싶다.

  1. 라거는 섭씨 7도에서 10도 사이. 크래프트비어코리아의 관련 포스트를 참고하자. https://ko-kr.facebook.com/craftbeerkorea/posts/71279639876869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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