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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FEEDBACK"

자가양조는 왜 하는가

"맥주 사먹으면 되지 그걸 왜 만들어요?"


자가양조가 취미라는 말에 가장 먼저 듣는 이야기다. '담근 맥주가 맛있어요'라고 어물쩡 둘러대려치면 곧바로 '요즘 마트나 편의점에서 행사할 때 사면 수입맥주도 싸잖아요'라는 반격이 들어온다. 그렇긴 그렇다. 편의점에서 500ml 캔맥주 기준으로 4개를 사면 1만원(리터당 5천원)이거나 혹은 그보다 조금 적게 내는데, 4리터 맥주를 자가양조하기 위해 들여오는 원료의 가격만 2만 5천원이다. 벌써 편의점 맥주 가격을 넘어선 가격이다. 국제배송비에 내 노임까지 고려하면 못해도 1갤런에 5만원은 할텐데, 이렇게 따지면 리터당 1만 2천 5백원이다. 최종견적만 놓고보면 편의점에서 맥주를 구매하는 가격의 2배가 넘는다.


그뿐인가. 시간도 시간이다. 1차 발효에만 2주, 이후에 병입해서 저온에서 숙성하여 잡내를 없애는 2차 발효에 2주가 또 필요하다. 총 4주나 걸린다. 온도도 문제다. 비교적 손이 덜 타는 에일의 경우 발효적정온도는 18도에서 23도. 라거라도 만들라치면 더 낮은 온도가 필요하다. 온도가 너무 높으면 과발효되어 술에서 잡내가 나고, 너무 낮으면 또 발효가 덜 되어 충분한 알코올이 생성되지 않는다. 1차 발효에서 적절한 발효를 통해 당즙 내의 당분을 알코올로 변환시키고 나면, 더 이상의 진행을 막기 위해 0도에서 5도로 보관온도를 낮추어 2차 발효를 진행한다. 앞 포스트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한국 기후의 특성상 맥주가 가장 필요한 계절은 여름인데 여름에는 온도가 너무 높아 제대로 발효가 이뤄질 수가 없다. 그렇다고 겨울에는 온도가 너무 낮다. 남은 것은 이제 봄과 가을인데, 봄/가을이 갈수록 짧아지는 작금의 추세라면 이제 큰 품 들이지 않고 적절한 온도에서 양조가 가능한 시기가 짧아지는 셈이다.


▲ 새뮤얼 애덤스 브루어리의 내부.

샘 애덤스 브루어리는 보스턴을 대표하는 마이크로 브루어리 업체 중 한 곳이다.


잔손은 또 얼마나 많이 가는가. 효모균 외에 잡균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초산발효가 일어나 식초가 되어 버리거나, 아니면 당즙에 곰팡이가 핀다. 정말 운이 없는 경우에는 1차 발효가 마무리 되는 2주차 쯤에 곰팡이가 피어버리는 수가 있다. 더 심각한 것은, 한 번 곰팡이가 핀 발효조는 곰팡이균이 남아 다음 발효 때도 또 곰팡이가 필 수가 있다는 것이다. 맥아를 끓여 얻은 당즙을 날리는 것도 모자라 발효조까지 버려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자가양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히는 것이 첫째도 살균소독, 둘째도 살균소독, 셋째도 살균소독이라 강조되는 것이다.


'액체 빵' 맥주, 생 효모에는 풍미가 있다


봄과 가을에 잔뜩 만들어 두고, 나머지 기간에 음용하면 되지 않겠나 물어볼 수도 있겠다. 근데 이게 또 상미기한[각주:1]이 짧다. 시중에 유통되는 맥주는 필터로 정제하거나 열처리를 하거나, 아니면 파스퇴라이즈(저온살균)을 통해 맥주발효의 자연스러운 부산물인 효모를 제거한다. 효모가 살아 있으면 상미기한이 짧아진다. 유통온도가 높아지면 맥주 내에 남아 있는 효모가 다시 활동을 시작해 맥주에 잡내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냉장차를 이용해 숙성온도와 최대한 맞추어 유통하는 콜드체인을 운영해야 하는데, 이는 곧 맥주 단가 상승의 요인이 된다.


효모에는 풍미가 있다. 드라이 이스트 대신 발효종을 이용한 빵을 고급이라 치는 이유는 생 효모가 갖는 독특한 풍미 때문이다. 맥주 역시 마찬가지다. 효모가 살아 있어야 맥주의 풍미가 산다. 하면발효의 특성상 농밀한 맛을 갖지 못하는 라거인데, 유통을 위해 효모를 죽여버리니 유통맥주에 다양한 풍미가 있을 수가 없다. 생맥주라고 팔리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양조장으로부터 직납을 받지 않고, 중간 유통자인 주류상을 통해 유통되는 생맥주 케그는 주류상에 마련된 상온의 야적장에 적치되었다가 각 소매상들에게 수송된다. 이후 소매상들은 순간냉각기와 탄산 봄베를 이용해 순간적으로 강제로 탄산을 주입하여 손님에게 내놓는다. 재료 자체의 본연의 맛이 아니라, 조미료로 음식의 맛을 내는 것처럼 말이다.


무엇인가를 산출해 낸다는 것


자가양조를 하면 살아있는 효모를 품은 진짜 생맥주를 맛볼 수 있다. 돈도 많이 들고 품도 많이 들지만, 한 모금 마셨을때 효모향과 홉[각주:2]향이 어우러져 이뤄내는 과일향 내지는 꽃향기가 입안에 가득 차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 고생이 다 사르르 녹는 느낌이다.


비단 맛 뿐만은 아니다. 무엇을 만들어 낸다는 성취감이 있다.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정확한 인스트럭션과 레시피만 지키면 훌륭한 맥주가 탄생한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요인이 분명하다. 곰팡이가 슬면 살균소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고, 잡내가 나면 발효온도가 높았거나 역시 살균소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병입 후에 탄산이 생성되지 않았다면 병입시에 효모의 먹이가 될 당분이 충분하지 않았는지를 의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실패의 원인이 불분명하여 스스로를 끝없이 자책하게 하는 세상사와는 전혀 다른 셈이다.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결과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이러한 작은 성과들이 참 소중하다. 더욱이 취직이 되지 않고 집에서 노는 내 입장에서,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끔은 위안이 될 때가 있다.


결국은 그렇다. 자기 만족을 위해 자가양조를 하는 것이다. 취미에 달리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하겠는가?


  1. 양조자가 술을 만든 의도 그대로 그 맛과 향취가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있는 기간이다. 보통 상미기한은 유통기한보다 짧다. [본문으로]
  2. 홉(hop)은 삼과의 식물로, 황록색 꽃이 맥주 원료로 쓰인다. 꽃만을 홉이라고도 부르는데, 꽃잎이 얇으며 길이가 약 2.5~10㎝인 솔방울 모양을 이룬다. 꽃잎에는 다양한 종류의 기름과 수지가 들어 있는 작은 샘이 있다. 이 물질들은 맥주에서 자라는 특정 박테리아의 생장을 억제하는 한편 맥주에 쓴맛을 낸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