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記/2008, 유럽 32

8월 8일, 독일 베를린 - 나는 통일국가의 분단국가인(人)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날. 오늘은 베를린 장벽을 키워드로 베를린을 뒤져보기로 했다. 해서 첫번째 코스는 당연히 장벽이 남아있는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웜뱃이 위치한 로자 룩셈부르크 거리에서 트램으로 20분쯤 거리에 위치한 곳이다. 상당수의 볼거리들이 구 동독지역에 몰려있기 때문에, 현재 대다수의 숙소들이 구 동독 쪽에 있다고 한다. 웜뱃 역시 마찬가지. 누군가 평양에 간 소감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을 물었을 때, 대로변에 위치한 집단주택이었다고 한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집 > 아파트 단지 > 대로의 과정을 거치는 남한과 달리, 집 > 대로로 직행하는 북한의 가옥구조는, 개인을 사회에 편입시키려는 권력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 글을 읽었을 때에는 꽤 맞는 해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유럽 ..

8월 7일, 독일 베를린 - 브란덴부르크 문과 제국의회

씨티은행이 있다는 쿠담 거리의 KaDeWa 백화점 앞으로 아침부터 달려갔다. 돈이 있어야 뭘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나 할까나. 돈을 찾고 사람 적은 베를린의 중심가를 배회하다보니 역사적 기념물과 마주쳤다. 그 이름, '카이저 빌헬름 교회'. 베를린 초 역 앞에 있는 이 교회는 영국군의 베를린 폭격 당시 저렇게 앙상한 모습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벽에는 여전히 총탄에 맞은 자국이 있고, 탑 하나는 무너지고 다른 하나는 반쯤 무너진채 저렇게 서 있다. 이것을 허물지 않는 이유는 독일 국민들이 스스로가 전범이었음을 기억하고 사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떤 나라의 사람들은 '부역한 게 무슨 죄냐'고 하면서 더 떳떳해하는데, 이런 사람들도 있는걸 보면 참... 뭐라 말해야 할지 답답하다. 초..

8월 6일, 독일 베를린 - 어처구니가 없다

체코 나드라지 홀레쇼비체에서 10시 36분 기차를 타고 15시가 조금 넘어 베를린 중앙역에 도착했다. 체코에서 가지고 있는 유로 현찰을 모두 코룬으로 환전한 터라, 가진 건 딸랑 동전 몇 푼 뿐이었다. 내가 잘 몰라서겠지만, 베를린 중앙역 근처에는 인포메이션 센터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간절히 찾는 아멕스 지점이나 씨티은행 ATM도 없기 때문에 그냥 호스텔로 들어갔다. 체크인을 하려면, 잔금을 치뤄야 한다. 가진게 여행자수표 밖에 없어서, 되냐고 물었더니 안된다고 한다. 체크카드로 결제해봤더니 잔액이 모자라 결제가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엄마 카드를 빌려 결제. 대강 방을 정리하고 나가려고 생각하니,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다. 일단 나가려면 교통티켓을 끊어야 하는데 - 베를린 웜뱃은 U-bahn 위..

8월 5일, 체코 까를로비 바리 - 온천의 도시

이틀 간의 시내구경을 마치고 교외를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체스키 크루믈로프도 가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일정이 되지는 않는지라 띠동갑 누님과 함께 까를로비 바리란 곳을 찾았다. 전설에 따르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까를 4세가 사냥을 나왔다가 온천을 발견하고는 사냥터를 짓고, 온천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이 까를로비 바리라고. 시내 곳곳에서 온천수가 나오는 샘이 있다. 그 옆서는 컵을 팔고 있는데, 이 컵이 좀 많이 특이하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 컵을 사서 돌아다니면서 온천수를 떠 마신다. 작은 도시라고 알려졌지만 테스코, 빌라 등 유명 슈퍼체인이 다 들어와 있다. 도시의 양 끝을 2시간 정도면 주파할 수 있으니, 큰 도시는 아니지만 분명히 다른 면에서는 분명히 큰 도시다.

8월 4일, 체코 프라하 - 날씨가 너무 좋다

프라하에서의 이틀째, 시내구경을 마친 나는 프라하성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민박집에서 만난 세 명의 동갑내기, 한 분의 띠동갑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길지는 않은 여정이었지만, 동갑내기를 만나본 기억이 아직 없어서 무척 반가웠다. 하늘이 꾸물거리더니, 이내 비가 쏟아졌다. 워낙 날씨 변덕이 심한 유럽인 만큼,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으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역시나 밥을 먹고 나오니 이미 비는 그쳐있었다. 비가 와서인지, 그렇잖아도 푸른 프라하의 하늘은 더 푸르렀다. 맑은 하늘을 보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무엇을 해도 다 웃어줄 만큼. '프라하의 연인'이 괜한 발상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라하의 구시가지를 거닐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체코로 진격해오자 체코는 성문을 열어줌..

8월 3일, 체코 프라하 - 프라하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빈에서 슬리핑카를 타고 프라하에 도착. 예약비 30유로와 체코 국경부터 프라하로 들어오는 기차비용 30유로를 합쳐, 무려 60유로를 내고 탄 슬리핑카는 안전하고 안락했다. 방마다 있는 세면대에다가 뜨거운 물이 잘 나오는 샤워실, 방 내에 구비된 식수. 60유로가 만만치는 않은 돈이었지만, 그래도 뭐 그 정도의 가치는 한다고나 할까나. 6시 30분에 프라하 중앙역에 도착해서는, 소개된 루트를 따라 민박집을 찾아갔다.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있다가 민박집에서 만난 분들과 길거리로 나섰다. 프라하에서는 박물관 관람보다 그냥 분위기를 느끼리라고 마음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분들과 일정을 맞추기가 훨씬 수월했다. 프라하의 하늘은 맑았다. 그 끝을 모를 만큼. 어찌어찌 하다가 찾아간 천문시계. 정각이 되면 하..

8월 2일, 오스트리아 빈 - 한 잔의 멜랑게에 아쉬움을 달래다

빈에서의 이틀째, 웜뱃 더 라운지(http://www.wombat.eu)에서의 아침은 상쾌했다. 웜뱃 자체가 워낙 이름난 곳인지라 스탭들의 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시설 역시도 수준급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다른데에 비해 가격이 크게 비싸거나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얘네들이 기본적으로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동방예의지국의 쓰잘데기없는 규칙을 몰라서 그런지, 아니면 사람이 많은데 설마 뻘짓이라도 하겠느냐고 생각하는지 대체적으로 유럽의 도미토리들은 혼성방mixed room을 준다. 물론 민감한 여성들을 위해 여성전용방이 있긴 하다. 남성전용방은 없는데, 그것은 미학적인 관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어쨌거나 아침에 일찌감치 체크인을 해두고 돌아와보니 글쎄, 정원 6명중 나까지 포함해서 4명이 한국인이..

8월 1일, 오스트리아 빈 - 얻은 것과 잃은 것

7월 30일, 바쁜 하루였다. 오전에는 베네치아에서 밀라노까지 가서 최후의 만찬과 성당을 구경해야했고, 저녁에는 야간열차를 타고 베네치아에서 뮌헨으로 향해야 했기 때문이다. 식사도 거른채 7시에 출발하는 에우로스따에 몸을 실었다. 최후의 만찬이 있는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에 도착하니 시간은 11시 45분. 오후 1시 15분 티켓일 거라 생각한 나는, 여유있게 리셉션에 들어가서 표를 달라고 했다. 직원이 몇 번 검색해보더니, 이상하다면서 표를 뒤적거렸다. 아뿔싸, 11시 15분에 예약한 것을 13시 15분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원래 이 곳은 정확히 25명씩 15분간만 관람을 시켜주며, 시간이 지난 사람은 절대 들여보내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우 측은한 표정을 지었더니 직원이 난처해하면서 이번 ..

7월 29일, 이딸리아 베네치아 - 운하의 도시에 오다

드디어 운하의 도시,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대운하로 모든 것이 이동하는 도시. 지반침하로 인해 점차 가라앉고 있다고는 하나, 베네치아 시 당국의 노력으로 차츰 나아지는 추세라고. 하루 일정이기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채비를 해서 관광을 나섰다. 첫 출발지는 유리공예로 유명한 무라노와 레이스공예로 유명한 부라노. 수상버스를 타고 2, 30분 정도 나가야 하는 곳이다. 무라노에 도착하자마자, 삐끼가 '무료로 유리공예를 구경해 볼 수 있다'며 자신들의 공방으로 관광객들을 인도한다. 따라가 봤더니, 제법 규모가 있는 공방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공예 과정은 안 보여주고 물건만 보여준다. 사라는 건데, 사려고 봤더니 괜찮은건 50유로가 훌쩍 넘는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그냥 바깥으로. 공방을 나와..

7월 28일, 이딸리아 로마 - 8일간의 로마생활을 정리하며

드디어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납니다. 21일부터 대략 8일간 머물렀던 로마를 등지고, 내일이면 - 현재 로마는 오후 10시 반쯤 되었습니다 - 베네치아로 간다. 짧게 정리해보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짧지 않은 로마에서의 일정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로마의 정취를 모두 느낀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여정을 대강 설명하고 로마, 그보다는 이딸리아에 오기 전에 취해야 할 우리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오늘은 '비밀의 열쇠구멍'이란 곳을 갔다. 로마 시내에는 바띠깐 말고도 몰타 기사국이라는 또다른 소국이 있다. 거대한 성곽으로 둘러싸인 바띠깐 시국과는 다르게, 이 곳은 딸랑 건물 하나가 국토의 전부다. 그렇다고 해도 나름의 화폐와 우표를 발행하는 엄연한 국가란다. 몰타 기사국과 인접한 싼 안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