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記 57

8월 13일, 프랑스 파리 - 루브르 박물관과 우리네 문화유산

파리에 왔으니 루브르에는 가봐야 할 것이다. 원래는 파리 변방을 수호하는 요새였던 것을, 국왕들이 거처로 삼다가 박물관으로 바꾼 것이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이라고 한다. 물론 이 곳의 많은 컬렉션들은 대다수가 다른 나라로부터 약탈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유럽의 많은 큰 박물관들은 전리품으로 컬렉션을 채우고 있다. 이 곳 역시 마찬가지로 나폴레옹이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약탈해 온 문화재들로 성을 채운 것이 시초라고 한다. 본디 문화라는 것은 힘과 연관이 없다. 팍스 로마나의 뒤를 이어,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영광을 물려받은 미국의 문화가, 그 정치적 힘에 비해 실질적으로는 문화적 가치가 하등 없는 잡탕인 것이나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가 피정복지인 그리스의 문화에 복속당했던 사실은 그러한 실례이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8월 12일, 프랑스 파리 - 오르세 미술관과 바또 빠리지앵

아침에 늦게 일어난 탓에 서둘러 베르사유로 향했다. 오스테를리츠 역에 가서 어떻게 가냐고 물으니, 현재 해당 구간이 공사중이라 버스타고 다른 RER 역으로 이동하란다. 버스에 몸은 실었는데, 기차표 예매 변경하랴 뭐하랴 해서 이미 시간은 오후 3시다. 갈까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버스가 오르세 미술관 앞에 선다. 어차피 뮤지엄패스도 있으니 그냥 내려 들어가보기로 했다. 어차피 목요일에 정식으로 볼 생각인지라 쭉 한 번 훑고 나왔다. 앞서 본 몇 곳의 미술관보다 작다는 느낌. 고흐나 모네, 르누아르 컬렉션에 있어서는 이제까지 봤던 곳들 중 제일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르세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집에 들어오니, 민박집에서 만난 동생이 저녁에 야경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혼자 다니면, 야경을 제대..

8월 11일, 프랑스 파리 - 버스투어

숙소 근처에 있는 Gambetta 역에서 69번 버스를 타고 길을 나섰다. 69번 버스는 바스티유 광장, 오뗄 드 빌, 루브르 등의 파리 주요 지점을 도는 시내버스다. 베를린으로 치면, 100번이나 200번 버스랑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첫번째 행선지는 오뗄 드 빌, 파리 시청사다. 이 곳 주변에는 퐁네프 다리와 노트르담 사원, 퐁피두 센터가 위치해 있다. 시청사 앞에는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는데, 무료로 지도를 준다. 한국어 지도도 있다. 유럽에서 공식적으로 나오는 한국어를 본 일이 별로 없어서 은근히 반갑더라. 물론 번역은 개판... 두둥, 노트르담 사원이다. 주변에는 '콰지모도'나 '에스메랄다'의 이름을 딴 상점이 많다. 루브르 박물관이다. 피라미드 ㅎㄷㄷ 퐁네프 다리. 근데 은근히 그냥 퀭-하다...

8월 9일, 독일 포츠담 - 그 해에도 정원은 아름다웠을까

베를린을 가면 꼭 끼워서 가기 마련이라는 포츠담을 방문했다. 포츠담, 왠지 친숙한 이름이라면 그것은 ‘포츠담 선언’이라는 용어 때문일 것이다. 역사상 한국이란 나라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 딱 세 번 있다. 첫번째는 앞서 이야기한 제2차 세계대전 후 조선의 처리 문제, 두번째는 한국전쟁 당시의 UN군 파견 문제, 세번째는 반기문 씨의 UN 사무총장 취임 문제다. (글쎄, 올림픽과 월드컵 개최지 선정 문제까지 합치면 5번은 될지도.) 어쨌거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연합군 수뇌 간 세 번의 회의가 열린다. 카이로 회담, 얄타 회담, 포츠담 회담이것인데 포츠담 회담이 앞서의 두 회담에 비해 의의가 깊은 이유는 이탈리아와 독일이 차례로 패망한 후, 마지막 남은 일본에게 항복권고를 함으로서 제2차 세계..

8월 8일, 독일 베를린 - 나는 통일국가의 분단국가인(人)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날. 오늘은 베를린 장벽을 키워드로 베를린을 뒤져보기로 했다. 해서 첫번째 코스는 당연히 장벽이 남아있는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웜뱃이 위치한 로자 룩셈부르크 거리에서 트램으로 20분쯤 거리에 위치한 곳이다. 상당수의 볼거리들이 구 동독지역에 몰려있기 때문에, 현재 대다수의 숙소들이 구 동독 쪽에 있다고 한다. 웜뱃 역시 마찬가지. 누군가 평양에 간 소감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을 물었을 때, 대로변에 위치한 집단주택이었다고 한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집 > 아파트 단지 > 대로의 과정을 거치는 남한과 달리, 집 > 대로로 직행하는 북한의 가옥구조는, 개인을 사회에 편입시키려는 권력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 글을 읽었을 때에는 꽤 맞는 해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유럽 ..

8월 7일, 독일 베를린 - 브란덴부르크 문과 제국의회

씨티은행이 있다는 쿠담 거리의 KaDeWa 백화점 앞으로 아침부터 달려갔다. 돈이 있어야 뭘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나 할까나. 돈을 찾고 사람 적은 베를린의 중심가를 배회하다보니 역사적 기념물과 마주쳤다. 그 이름, '카이저 빌헬름 교회'. 베를린 초 역 앞에 있는 이 교회는 영국군의 베를린 폭격 당시 저렇게 앙상한 모습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벽에는 여전히 총탄에 맞은 자국이 있고, 탑 하나는 무너지고 다른 하나는 반쯤 무너진채 저렇게 서 있다. 이것을 허물지 않는 이유는 독일 국민들이 스스로가 전범이었음을 기억하고 사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떤 나라의 사람들은 '부역한 게 무슨 죄냐'고 하면서 더 떳떳해하는데, 이런 사람들도 있는걸 보면 참... 뭐라 말해야 할지 답답하다. 초..

8월 6일, 독일 베를린 - 어처구니가 없다

체코 나드라지 홀레쇼비체에서 10시 36분 기차를 타고 15시가 조금 넘어 베를린 중앙역에 도착했다. 체코에서 가지고 있는 유로 현찰을 모두 코룬으로 환전한 터라, 가진 건 딸랑 동전 몇 푼 뿐이었다. 내가 잘 몰라서겠지만, 베를린 중앙역 근처에는 인포메이션 센터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간절히 찾는 아멕스 지점이나 씨티은행 ATM도 없기 때문에 그냥 호스텔로 들어갔다. 체크인을 하려면, 잔금을 치뤄야 한다. 가진게 여행자수표 밖에 없어서, 되냐고 물었더니 안된다고 한다. 체크카드로 결제해봤더니 잔액이 모자라 결제가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엄마 카드를 빌려 결제. 대강 방을 정리하고 나가려고 생각하니,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다. 일단 나가려면 교통티켓을 끊어야 하는데 - 베를린 웜뱃은 U-bahn 위..

8월 5일, 체코 까를로비 바리 - 온천의 도시

이틀 간의 시내구경을 마치고 교외를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체스키 크루믈로프도 가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일정이 되지는 않는지라 띠동갑 누님과 함께 까를로비 바리란 곳을 찾았다. 전설에 따르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까를 4세가 사냥을 나왔다가 온천을 발견하고는 사냥터를 짓고, 온천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이 까를로비 바리라고. 시내 곳곳에서 온천수가 나오는 샘이 있다. 그 옆서는 컵을 팔고 있는데, 이 컵이 좀 많이 특이하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 컵을 사서 돌아다니면서 온천수를 떠 마신다. 작은 도시라고 알려졌지만 테스코, 빌라 등 유명 슈퍼체인이 다 들어와 있다. 도시의 양 끝을 2시간 정도면 주파할 수 있으니, 큰 도시는 아니지만 분명히 다른 면에서는 분명히 큰 도시다.

8월 4일, 체코 프라하 - 날씨가 너무 좋다

프라하에서의 이틀째, 시내구경을 마친 나는 프라하성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민박집에서 만난 세 명의 동갑내기, 한 분의 띠동갑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길지는 않은 여정이었지만, 동갑내기를 만나본 기억이 아직 없어서 무척 반가웠다. 하늘이 꾸물거리더니, 이내 비가 쏟아졌다. 워낙 날씨 변덕이 심한 유럽인 만큼,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으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역시나 밥을 먹고 나오니 이미 비는 그쳐있었다. 비가 와서인지, 그렇잖아도 푸른 프라하의 하늘은 더 푸르렀다. 맑은 하늘을 보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무엇을 해도 다 웃어줄 만큼. '프라하의 연인'이 괜한 발상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라하의 구시가지를 거닐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체코로 진격해오자 체코는 성문을 열어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