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記 164

아고라의 쇠락, 민주주의 2.0의 개막 - 촛불의 행방은?

9월 18일 정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들여 준비했던 '민주주의 2.0'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노 전 대통령이 '노공이산'이란 필명으로 올린 환영사 겸 감사인사에서도 읽을 수 있듯, '민주주의 2.0'은 개방과 공유를 원칙으로 하는 웹 2.0 정신을 정치토론에도 적용시켜보자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전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는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데일리 서프라이즈 정치부 차장의 말 마따나, 그동안의 전임 대통령들이 '청빈한 29만원',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등의 발언으로 도움은 커녕 물의만 일으켰던 것을 생각하면 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인 다양성을, 토론을 통해 제고해 보자는 그의 이번 행보는 새롭다. 이러한 '새로움'에 대해 그의 이해관계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5..

재미있는 일이다

유럽여행 때 이용했던 민박집들이 운영하는 카페에 들어가봤다. 여전히 잘 되는 민박집들은 잘 되고, 다정다감했던 주인들은 다정다감했다. 다시 만나고 싶은 동생이 있었는데, 간만에 들어간 민박집에서 그 친구도 나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든 즐거운 일이다. 특히나 나처럼 애정에 목마른 나그네에게는. 그런 점에서 사람 간의 관계라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다. 그 만남의 역사가 길거나 짧거나, 그 길이에 관계없이 기억이 나는 사람은 언제나 기억이 나게 되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그들을 잊었으며 그 중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반면에 다른 사람들에게의 나는? 나는 그들에게 잊혀질 사람일까 아니면 영원히 기억될 사람일까. 좋게 기억될까, ..

글이 안 써진다

말 그대로다. 글이 안 써진다. 아마 안 써진다기 보다는 쓸 생각이 없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이럴 때 넙죽넙죽 여러 날에 걸쳐 잘도 포스팅을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저런 필력이 나에게는 없다는 사실에 열등감도 느낀다. 솔직히 말해, 필력이 없다기 보다는 노력하지 않는다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늘 어떤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두면서도 그것을 구체화하려고 더 생각하지는 않는다. 설계도를 그리고 집을 지어야 하는데, 나는 언제나 집 먼저 짓는다. 그러다보니 잘 지은 집보다 짓다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무너뜨린 집이 더 많다. 글쓰기란 작업을 얕보는 거다. 한낱 짧은 글일지라도 머릿속에 명쾌한 구조가 잡혀야 진도가 나간다. 굳이 구조가 없더라도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주제라면 글은 써진다..

DVD를 보다가, 삶에 대한 반성(?)을 하다

여전히 유럽 이야기를 한다는 게 우습지만, 그 인상은 마치 낙인과도 같아서 자자형(刺字刑)마냥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것 같다. 바람이 든 것처럼 보이겠지만, 돌아온 지 스무날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유럽을 부르짖는 것은 그만큼 나도 알게 모르게 얻어 온 것이 많다는 반증이리라. (어째 점점 글쓰기 스타일이 허세근석일세.) 유럽에서 건져온 그 '수많은 것들' 중에 애착이 가는 것이 있다면, 카라얀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내놓은 음반과 1983년 새해 기념 콘서트 실황을 녹화한 DVD다. 고전 음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이렇게 앨범을 사가면서 찾아 듣는 이유는 단지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나 자신이 악기를 연주하는 '허세'를 부려보고 싶어서일 거다. 정신과 육체가..

'불온서적을 판매합니다' - 대학생들의 발칙한 커밍아웃

9월 4일과 5일 양일간, 종로구 명륜동에 위치한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캠퍼스에서는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성균관대 학생모임'(이하 '학생모임')의 주최로 '불온서적 판매전'이 열렸습니다. 학생모임 측은 학내 대안도서관인 '김귀정 생활도서관'(이하 '생활도서관')과 국방부가 지난 7월에 발표한 불온서적 23종 외에 추가로 60종을 선정했고,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의 처지를 생각해 준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 '풀무질'의 도움으로 정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도서들을 판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생모임과 생활도서관 학생들이 선정한 인문사회과학 서적들. 손문상 씨의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이 눈에 띈다.  '불온서적 판매전'의 기획의도를 묻자. 학생모임 측은 '새로운 저항방식을 고민하던 차에 나온 아이디..

'호국불교'란 수식어가 난 왜 이렇게 어색하지?

더위와 올림픽으로 인해 식었던 광장을 불교계가 다시 달구고 있다. MB정권의 막되먹은 종교 편향 행위에 인내심이 다한 불자들이 거리로 나서 '정교분리'와 '국교없음'을 명시한 헌법을 준수하라며 MB에게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누리꾼들은 소강상태로 접어든 촛불집회의 불씨를 불교계가 되살리고 있다고 칭찬하며, '역시 호국불교다'란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 '호국불교'란 수식어가 참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투쟁의 과정에서 한 명의 '내 편'을 얻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전쟁이란 것도 멀리서 바라보면 결국 세력싸움이기 때문에, 내 편을 더 많이 갖는 사람이 대부분 이기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내 적의 적은, 곧 나의 동지'라는 전쟁격언도 있을까. 그런데 이런 말..

꿈이었을까 - '선진국'과 '선진화'의 넓은 간극

잠자리에 들려고 누웠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됐다. "내가 며칠 전까지 정말 유럽대륙을 헤매고 있었던 걸까? 설마 꿈은 아닐까?" 무거운 짐을 매고 낑낑거리며 기차를 탄 일이나 교과서 속에서만 보던 고대의 유적 · 유물들을 실제로 본 일, 그리고 다른 나라나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 술 한 잔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일들이 정말 꿈 속 일처럼 여겨진다. 수없이 드나드는 기차와 거기서 내리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크지는 않지만 현대적이면서도 실용적인 건축물들, 거리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공산당이 버젓이 활동하는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 이건 나에게는 꿈이었다. 내 국적지(國籍地)의 현실은 냉혹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느낀 것은 선진국과 선진도약준비국 간의 문화적 · 정치적 ..

멍하게 쳐다보다 - 시간표

성균관대학교는 1년치 시간표를 연초에 다 짜게 되어있다. 때문에 좋은 1학기 시간표를 얻는 대신, 절망의 2학기 시간표를 얻거나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나고야 마는 구조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맞교환을 꽤 잘 구현한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어쨌거나 연초의 전쟁을 끝내고 나면, 1학기가 끝날 때 쯤에는 다음학기 수강신청을 준비하며 칼을 가는 타 대학생들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여하간 이번달 말까지 2학기 수강신청 변경일이다. 앞서 말했듯, 연초에 거의 다 결정이 되므로 수강신청 기간이 길어도 별 변동은 없다. 난 물론 1학기 시험을 망쳐버렸기 때문에 학점 보존을 위해 꽤 손을 봤지만서도... 흠... 여튼 시간표 공개. 아름다운 시간표다. 무려 월요일 공강. 금요일을 제외한 평일의 3시 퇴근..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신앙보다는 이성을 따르는 것이 옳다며 '과학인'을 자처하더니 드디어 '돌아온 탕아'가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반은 그렇고 반은 아니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유럽에서 확실하게 배운 것이 한 가지 있다. 영미권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성경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 남들이 뻔히 다 알고 있는 이야길 뭐하러 하냐고 묻는다면 민망하겠지만, 그들의 수많은 행위들이 생각보다 많이 성경구절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게 이번 여행의 성과였다. (하다못해 인종차별까지 성경 속 구절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전해진다. 물론, 성경 구절을 통해 그들의 악행을 합리화했을 거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궁금한 사람은 창세기 9장 18절부터 29절까지를 참고하라.) 더욱이 내가 이해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