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청탁금지법에 관하여

2016. 9. 30. 17:04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금지법')이 시행된지 사흘이 지났다. 업무특성상 공공기관과 접촉할 일이 많아서인지 우리 회사도 이례적으로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관련법 강의를 네 차례나 열었고, 영업을 담당하는 직원들의 해당 법에 대한 관심 또한 뜨거웠다.


해당 법률에 대한 관심은 우리 회사 업무 담당자만 뜨거웠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기자들의 관심도 뜨겁다. 청탁금지법이 발효된 28일부터 기자들이 써놓은 관련기사의 수는 무려 64,000건[각주:1]. 일평균 21,000건의 기사가 김영란법을 키워드로 한 셈이다. 권익위나 경찰청 등 유권기관에서 내놓은 보도자료를 받아쓴 식의 중복 기사도 다수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참 많은 수다. 언론의 청탁금지법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새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와중에 재미있는 현상들이 목격된다. 법 취지가 무색하게 이 법 때문에 '서민이 죽는다'는 투의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점도 그 중 하나다. 문화일보는 '식당폐업 속출, 서빙직 줄줄이 쫓겨나... '서민 일자리'직격탄'이라는 제호 하에 청탁금지법을 헐뜯는 기사를 내놨다.[각주:2] 법률이 시행된지 사흘 밖에 안됐는데 벌써 폐업하는 식당들이 속출한다는 주장도 실소를 금할 수 없지만, 이 말이 정말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얼마나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비싼 밥을 공짜로 먹어가며 청탁을 받느라 으스댔는지 짐작할 만한 대목이다.


서울신문이 '[르포1...신논현역 대리기사] 콜 '0'... 대리기사의 눈물'이라는 제호로 내놓은 기사[각주:3]도 눈여겨봄직 하다. 고급술집이 밀집한 논현역-신논현역 일대에서 접대 받은 후 대리를 이용하는 경우가 없어져 대리기사들의 생계가 막막하다는 내용이다.


뉴스1이 '김영란법이 뭐길래…쫄쫄 굶고 물만 마신 기자들'이란 제호로 내놓은 기사[각주:4]는 차라리 솔직하기라도 하다. 그들 자신이 청탁금지법의 규제대상이 되면서 답답하다는 고충을 잘 털어놓은,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다. 기자들이 이 법의 대상이 된 것은 한국 사회에서 언론이 갖는 위상을 감안할 때 당연한 일이다. 언론이 내놓는 기사가 만드는 후폭풍은 매우 크다. 사실 확인이 명확히 되기 전까지는 기사라 할지라도 팩트보다는 의견에 가까운데 우리 사회에서는 철저하게 '기사=팩트'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같은 내용을 내놓더라도 해당 건을 보도한 언론사의 위상에 따라 그 팩트의 질이 판단된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현상적으로도 자본과 언론이 결탁하여 비뚤어진 결과를 내놓는 경우는 무수히 관찰된다. 기사 형식으로 내놓는 광고 - 이른바 '협찬 기사' - 도 있고, 기자간담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고 마땅히 내놓아야 할 기사를 내놓지 않거나 아니면 단신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한국의 언론재벌들은 경제권력과 결탁하여 간혹 부정한 이들의 신분세탁에 동원되기도 한다. 안 그런 분들이 많겠지만, 빈 수레가 요란하듯 저널리즘을 배신하는 몇몇 기자들의 행동이 사회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법을 탓하기에 앞서 기자들 스스로 직업윤리를 준수하고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 중 청탁금지법 설명 부분


흔히들 혼동하는 것이 청탁금지법이 모든 청탁을 금지하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법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가장 보수적이며, 합리적인 문장이다. 청탁금지법도 마찬가지여서, 공개적인 청탁에 대해서는 법률로 처벌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법이 문제삼고 있는 '부정청탁'이란 해당 사안에서 권력을 가진 자가 비정상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 경우 대부분의 과정이 금품 등 경제적 이익을 매개로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기에 경제적 이익 공여에 대한 처벌규정을 특별하게 만든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음지에서 벌어지는 부정부패를 근절하겠다는 것이 이 법을 만든 사람의 취지고, 이 법의 취지는 분명히 도덕적으로나 사회규범적으로나 바람직한 방향이란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애먼 서민경제를 언급하며 마치 이 법이 국민경제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보도하는 것은 명백한 호도다.


청탁금지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은 간단하다. 호의를 바라지 말자. 설마하는 생각을 버리자. 내 밥은 내가 사 먹고, 내가 일하지 않은 것에 대해 소득을 바라지 않으면 된다. 극히 합리적이고 순리적으로 생각하면 답이 간단하게 나오는 법이다. 이 법률 때문에 감사를 표하는 미풍양속 - 그런데 또 사회상규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기부행위에 대해서도 조건부로 허용한다 -  이 사라지니 어쩌니 하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을 보면 기가 막힐 따름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고, 그깟 관례적 호혜 때문에 부정부패를 막자는 취지의 법률을 무력화시키자는 것이 어떻게 합리화될 수 있다는 말인가?


위에서 몇몇 기자들이 언급한 '서민경제 파탄', '내수위축'같은 것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누누히 강조하지만 청탁금지법은 남에게 얻어먹는 것을 제한하는 법률이니 자기 돈 주고 자기가 사먹는 것을 막는 법은 아니다. 비싼 술이 먹고 싶으면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모여 마시고 나눠 내고, 그리고 내 돈 주고 대리기사 요청하여 집에 가면 될 일이다. 비싼 밥도 마찬가지고, 골프도 마찬가지다. 그저 누군가 대신 내줘야 할 것이라는 그 게으른 탐욕에 대해 비난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엄한 법률을 탓하는 것을 보면 대체 이들이 어떻게 언론고시를 통과하여 기자가 될 수 있었는지 청문회라도 열어야 할 판이다.


이제는 불필요한 호의들과 작별할 때다. 전 국민이 갑질에 분노했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부정하게 청탁할 수단이 사라지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권력관계도 일정 부분 해체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명쾌한 도식에서 헤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복잡한 청탁의 그물에서 움직이고 있었다는 반증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겪으면 겪을수록,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참 안쓰러운 체제다.

  1. 구글 뉴스 검색결과. 언론에서는 '청탁금지법'이라는 정규 이름보다 '김영란법'이라는 속칭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어서 '김영란법'으로 검색했다. https://www.google.co.kr/search?q=%EA%B9%80%EC%98%81%EB%9E%80%EB%B2%95&newwindow=1&hl=ko&biw=1536&bih=731&source=lnt&tbs=cdr%3A1%2Ccd_min%3A2016.+9.+28.%2Ccd_max%3A2016.+9.+30.&tbm=nws [본문으로]
  2.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6093001071003016001 [본문으로]
  3.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0930008019 [본문으로]
  4. http://news1.kr/articles/?278854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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