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포주


자주 다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 사진을 보았습니다. 7월 23일경 울리히 슈틸리케 감독이 팬들과 '치맥'을 즐기는 '슈맥데이'라는 행사에서 찍힌 사진이라 합니다. 이 사진은 이른바 '덕국인 고문 사진'이라 불리며 여기저기로 공유되고 있는데, 맥주를 입에 댄 슈틸리케 감독의 표정이 몹시 당혹스러워 보이는 데서 연유한 모양입니다. 하기사, 한국 맥주에 대한 외국인들의 평가가 박한 것은 비단 슈틸리케 감독만의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일찌기 다니엘 튜더[각주:1]는 한국 맥주를 가리켜 '지루[각주:2]한데다가,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고 혹평한 바 있습니다. 그는 한국 맥주 시장이 이렇게 된 이유로 주류시장의 복점 체제를 지적했었죠.


이코노미스트의 해당 기사는 업계와 소비자들 모두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소비자들은 '말오줌 같은 한국 맥주'라는 평이었지만, 지적당한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는 이코노미스트에 항의서한을 보내는가 하면 대강 '한국 맥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벌어진 오해'라는 취지의 반응을 보였던 모양입니다.[각주:3] 이후 '한국맥주는 왜 맛이 없는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그 중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한국 맥주의 맥아 함량이 매우 낮다'는 것이었습니다.


맥아함량이 높으면 맛있는 맥주일까?


해당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일본과 독일의 맥주에 대한 정의를 인용합니다. 독일의 경우 아시는 바와 같이, 15세기에 반포된 '맥주순수령Reinheitsgebot'에 따라 맥주에 대해 '오로지 홉, 정제수, 그리고 맥아로만 구성되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후 유럽통합이 가속화되며, 이 맥주순수령은 통합을 방해하는 일종의 비관세장벽으로 여겨져 유럽사법재판소에 의해 철폐 권고를 받았고 이후 몇 차례의 시도 끝에 93년에 임시 독일맥주법이 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당초 맥주순수령을 골자로 하긴 하였으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 임시 독일맥주법은 맥주순수령에서 인정하지 않던 밀맥아나 설탕, 효모의 첨가를 인정하여 이전에는 인정받지 못하던 '음료'들을 '맥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맥주에 대한 정의가 독일에 비해 느슨한 듯 하면서도 구체적입니다. 일본 세관의 설명[각주:4]과 일본 주세법[각주:5]을 보면, '탄산이 들어간 음료Sparkling Beverages' 중 알코올 도수가 20도 이하인 동시에 맥아의 함량이 50% 이상[각주:6]이 되는 음료만을 '맥주'라 정의하고 있습니다.[각주:7]


한국의 경우, 주세법 시행령 제3조제1항4호에 따르면 맥아 함량이 10% 이상이면 맥주로 인정[각주:8]하고 있습니다. 일본이나 독일에 비하면 맥주라고 치는 음료 중 맥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낮아보입니다. 관련업계는 맥아 함량에 대한 과세당국의 기준이 낮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각주:9]합니다. 주세법령 상에 그렇게 정의된 것은 맥아 비율이 높으면 맥아를 적게 함유한 수입맥주들이 범람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과세당국이 그렇게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이라고요.


대표적인 대량생산맥주인 하이네켄은 맥아 함량을 100%로 유지하고 있고, 미국식 부가물 라거의 대표주자인 버드와이저도 맥아 함량을 70~80%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가 국산 맥주와 비교 대상으로 삼았던 북한의 대동강 맥주는 맥아 함량이 70%라고 합니다. 국산 맥주[각주:10]의 경우, 제조사들의 주장에 따르면 국산 맥주의 맥아 함유량은 60~70% 정도 된다고 합니다. 맥스나 오비 골든 라거와 같이 맥아 함량을 100%로 가져가는 특별한 라인도 있습니다. 이것이 맞다고 전제하면, 국산 맥주의 맥아 함량은 수입 맥주들에 비해 결코 낮지 않습니다.


맥주에 물을 타는 '하이그래비티 공법'


그럼에도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의 맛 차이는 확연합니다. 혹자는 라거로 대표되는 하면발효맥주의 특성상 수입 맥주에 비해 맛이 없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도 이야기 합니다. 국내 프리미엄 맥주 시장에서 인기가 있는 주종은 에일로 대표되는 상면발효맥주이고, 그렇기 때문에 라거 일변도인 국내 맥주에 비해 맛이 진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각주:11]


이에 발효 후 탄산수를 적당히 타서 맥주를 만드는 이른바 '하이그래비티 공법'이 맥아 함량에 이어 맛없는 이유로 꼽히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적정 비중을 계산하여 당즙을 내는 것은 복잡하니, 아예 고농도의 알코올 발효액을 만들어 제품화 전에 탄산수를 섞어 도수를 낮추어 공급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대량생산에 최적화 된 방법이지요. 더불어 출하 전 여과 과정에서 탄산수를 섞기 때문에 가볍고 청량한 맛을 냅니다. 그대신 물을 타기 때문에 맥주 원액이 가지고 있는 풍미를 해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 '오리지널그래비티 공법'은 발효된 맥주 원액 그 자체를 내놓기 때문에 발효 순간에 가지고 있는 맥주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있습니다. 후발주자인 롯데주류의 '클라우드'가 이 오리지널그래비티 공법'을 사용한 대표적인 상품으로, 아예 '물 타지 않았다'라는 카피를 내세워 기존의 맥주들과 차별화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한국 맥주의 맛없음은 대표적인 '시장실패'의 사례


결국 국산 맥주가 맛이 없는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맥아 함유량에서나 공법에 있어서도 수입 맥주와 국산 맥주 간에 큰 차이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산 맥주 제조사들은 '소비자들의 주관에서 비롯된 오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객관적으로 차이를 따져볼 수 있는 근거를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는 제조사가 할 것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실제로 맥아 비율이 수입 맥주만큼 높은지, 어떠한 홉을 사용하는지에 대한 사실 확인은 커녕, 하다못해 '국내 생산 호가든이나 오리지날 호가든이나 똑같은 맛이라고 본사에서 그러더라'는 업계의 주장을 소비자들이 검증해 볼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전무합니다. 대체적으로 이러한 업계의 방어책은, 업계 간의 경쟁을 통하여 전환의 기회가 모색되곤 합니다만 그러기에는 한국 맥주시장의 경쟁구도가 너무 처참합니다. 1933년 일제강점기에 하이트맥주의 전신인 조선맥주와 오비맥주의 전신인 소화기린맥주가 이 땅에서 맥주를 생산한 이래 80년 이상 복점체제가 유지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클라우드를 앞세운 롯데주류가 등장했다고는 하지만 그 시장점유율이 3%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각주:12]


독일이나 미국처럼 소규모 양조업자들이 활동하기에도 한국의 환경은 녹록치 않습니다. 두산주류BG를 인수하고, 또한 이전부터 롯데칠성음료라는 걸출한 회사를 보유하고 있던 롯데주류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요. 주세법이 2014년 4월 개정되면서, 이들 마이크로 브루어리에도 생산주류의 외부 유통이 허용되었다지만 대기업과 똑같은 주세가 매겨지며 가격경쟁력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현행법상 외부 주류유통은 반드시 주류종합도매상을 거쳐야 하는데, 과점 시장에 길들여진 이들 주류도매상들이 소규모 양조업체들에게 공급망을 내줄 이유가 만무합니다.[각주:13]


결국 '맛없는 맥주'라는 오명을 대내외적으로 꾸준히 듣고 있지만, 그 질이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 것은 복점(과점) 시장이 갖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보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코노미스트 역시 한국 맥주가 맛없는 이유로 '복점시장'을 든 것이라 생각되는군요.


다른게 아니라, 과도하게 대기업에 의존하는 시장 구조를 혁파하여 중소업체들이 파고들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고 거기서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짜 '창조경제'일 것입니다.



덧 : 반면 일본과 독일 못지 않게 다양한 맥주 라인업을 자랑하는 미국의 맥주에 대한 정의는 무척 간단합니다. 미국법전 5052항은 '알코올 도수가 0.5도 혹은 그 이상으로, 맥아만을 사용하거나 혹은 그 대체품과 혼용되어 양조되었으며 비어, 에일, 포터, 스타우트 혹은 그와 유사한 이름을 가진 발효 음료'[각주:14]를 맥주로 보고 있습니다. 앞서 예시로 든 일본과 독일의 맥주 생산업자들이 미국의 이 정의를 본다면 자국의 엄격한 기준에 대해 다소 섭섭해 할 것 같습니다.

  1. 여담이지만 이코노미스트의 오랜 전통 중 하나가 바로 '기자의 이름을 숨기는 것'이라고 한다. 튜더의 경우 당시 이코노미스트 소속으로 한국에 특파원으로 온 특이한 상황 때문에 이 기사를 쓴 것으로 밝혀졌을 것이다. [본문으로]
  2. '말오줌 같다'고 평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원문을 읽어보면 그런 표현이 없다. http://www.economist.com/news/business/21567120-dull-duopoly-crushes-microbrewers-fiery-food-boring-beer?fsrc= [본문으로]
  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001&aid=0005958868 [본문으로]
  4. http://www.customs.go.jp/english/c-answer_e/kojin/3105_e.htm (영어) [본문으로]
  5. http://law.e-gov.go.jp/htmldata/S28/S28HO006.html (일본어) 맥주의 정의에 대해서는 제3조제12항을 참고하면 된다. [본문으로]
  6. 인터넷 상에 일본 주세법상 '맥아 비율이 3분의 2를 넘어야 맥주로 본다'는 주장이 있습니다만, 일본 주세법 제3조제12항제2호에 따르면 '맥주, 홉 물 및 보리 기타 정령에서 정하는 물품을 원료로 발효시킨 것(그 원료 중 해당 정령에서 정하는 물품의 중량의 합계가 맥아의 중량의 백분의 오십을 넘지 않는 것에 한한다.) 麦芽、ホップ、水及び麦その他の政令で定める物品を原料として発酵させたもの(その原料中当該政令で定める物品の重量の合計が麦芽の重量の百分の五十を超えないものに限る。)'고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변동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
  7. 알코올 도수가 10도 이하이면서 맥아의 함량 역시 50% 이하인 탄산음료는 '발포주Sparkling Liquor'입니다. [본문으로]
  8. 주세법시행령 제3조제1항4호 '4. 법 별표 제2호라목2)에 따른 맥주의 제조에 있어서 그 원료곡류중 엿기름 사용중량은 쌀·보리·옥수수·수수·감자·전분·당분 또는 캐러멜의 중량과 엿기름의 합계중량을 기준으로 하여 100분의 10이상이어야 하고, 맥주의 발효·제성과정에 과실(과실즙과 건조시킨 과실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을 첨가하는 경우에는 과실의 중량은 엿기름과 전분질원료의 합계중량을 기준으로 하여 100분의 20을 초과하지 아니하여야 한다.' [본문으로]
  9. 이코노미조선, "‘물 맥주’ 소리 듣는 국산 맥주의 숨겨진 진실', 2013년 1월 9일 작성. http://food.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08/2013010801803.html [본문으로]
  10. 맥주는 성분표시의무제를 적용받지 않아, 각 제조사가 맥아 함량을 공개해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객관적인 자료가 없이 제조사들의 주장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 이 숫자를 믿을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본문으로]
  11. 개인적으로 이 주장은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첫째는 왜 그걸 알면서도 라거 일변도의 라인업을 버리지 못하느냐는 겁니다. 문호가 개방되며 다양한 경험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굳이 맛이 없다고 지적되는 심심한 라거류만을 계속 생산하는 것은 소비자의 니즈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수요-공급 법칙에 배치되는 상황입니다. 둘째는 같은 하면발효맥주인 하이네켄이나 버드와이저와 비교하더라도 국내 라거의 맛이 크게 없게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본문으로]
  12. 비즈포커스, "클라우드' 약진 맥주 시장 '양강' 아닌 '삼강' 구도 변화하나", 2015년 5월 25일 작성. http://news.tf.co.kr/read/economy/1530256.htm [본문으로]
  13.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2564 [본문으로]
  14. 미국법전 제2절 내국세 중 5052항. 'For purposes of this chapter (except when used with reference to distilling or distilling mate - rial) the term beer means beer, ale, porter, stout, and other similar fermented beverages (including sake or similar products) of any name or description containing one-half of 1 percent or more of alcohol by volume, brewed or pro - duced from malt, wholly or in part, or from any substitute therefor'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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