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시. 여느 때처럼 퇴근하려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데 내선 전화가 울렸다. 사업팀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전화 주신 선임님은 요새 상품이 생각보다 안 팔리는거 같은데 이번달 말까지 추세가 어떨 것 같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짐짓, '그래서 뭐 어쩌라고'의 표정을 잠깐 지었다가 '월초에 연휴여서 그런게 아니겠느냐'는 상투적인 대답을 해주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전화가 마무리 될 때 쯤, 대뜸 사업팀 선임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선임님이 잘 해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괜한 걱정을 했나봐요."


나는 쑥스러워서 '왜 이러시냐, 일 더 시키시려고 이러는 게 아니냐.'고 농을 쳤지만 예상치 못한 칭찬에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불현듯 지난 9개월을 돌아보게 되었다.



입사 3개월만에 퇴사를 고민했다. 6개월 차에는 실제 다른 회사 면접을 보기도 했다. 면접 결과가 좋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붙었다면 진작 이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직의 사유는 되먹지 못한 회사의 시스템과 인간적인 부분 때문이었다. 비효율적으로 설계된 환경에서 인간을 갈아서 성과를 내는 것에 동의하지 못했고, 그것을 강요하는 사람들도 싫었던 것이다.


그랬던 게 불과 3개월 전인데, 이제는 회사 업무 중 주요한 업무 몇 개를 맡아서 하고 있다. 어떤 업무는 상품 발급에 중요한 부분으로 전 프로세스를 이해하는 사람이 전사에 나와 사업팀 선배 단 둘 뿐이고 어떤 업무에서는 대외기관과 내부 조직을 매개하는 유일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사회에 직접 보고를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내 재량에 따라 정책결정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 9개월 차에게 걸맞지 않은, 지나치게 많은 권한 - 그렇다고 막 회사의 향방을 조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 이 주어진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지만 일단 요즘은 일하는 게 재미있다. 업무가 전문성을 띄게 되기도 했지만, 선배들이나 동기들과의 관계도 원만해진 덕도 크다. 3개월 전의 상황과는 상전이 벽해로 바뀔 정도의 변화다.



앞으로 상황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에, 긴 안목으로 봐야 한다느니 따위의 말을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정말로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아도 어떻게든 살아갈 구멍은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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