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베트 8

[8일차] 9월 9일, 캉딩-러샨[樂山]-청두

9월 9일 금요일. 이날은 모처럼 여유있는 날이었다. 아침의 소란만 빼면. 새벽 2시에 캉딩에 도착해 터미널 근처의 숙소에서 새우잠을 잤다. 주인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러샨으로 가는 버스가 아침 7시 반에 있다고 했다. 바이두에서 찾은 결과가 6시, 7시, 7시 반의 3개 설로 분분하였으나 동네 사람의 말이므로 믿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L은 불안했는지, 아침에 조금 일찍 나가서 표를 사겠다고 했다. 표가 없다면 플랜을 다시 고민해야 했으므로 그러는게 좋겠다고 했다. 조용한 새벽은 L의 비명으로 깨졌다. 표를 사기 위해 터미널로 갔던 L이 러샨으로 가는 버스 출발시각이 7시 반이 아니라 7시니 지금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눈을 떠 본 시계 속 숫자는 6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20분이었다...

[6일차/7일차] 9월 7일-8일, 써다[色達]-캉딩[康定]

나는 죽음이 또 다른 삶으로 인도한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닫히면 그만인 문이다. ― 알베르 까뮈 9월 7일 수요일, 그리고 9월 8일 목요일 이 날은, 아니 이 날'들'은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 날이었다. 보통 써다까지 가는 사람들은 단 하나, 오명불학원(五明佛學院)을 찾아간다. 어찌나 유명한지 '심지어' 나무위키에도 항목이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온라인에서 찾은 이 곳의 사진을 보고, 마냥 티베트 불교에 대한 환상을 꿈꾸며 이 여행의 목적은 이 곳이라 단언하기도 했다. (놀라운 일이다.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이 역시나 오리엔탈리즘을 가지고 있다니.) 수요일은 오명불학원을 탐방했고, 목요일은 천장(天葬)을 보았다. 다만 나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자세한 이야기와 사진을 내놓지 않을 생각이다. 오명불학..

[5일차] 9월 6일, 빠메이-딴빠[丹巴]/자쥐짱짜이[甲居藏寨]-따오푸[道浮]

9월 6일 화요일. 이 날은 아침부터 징징대지 않기로 결심했다. 지난 며칠간 계속 징징댔더니 모든게 다 망가져 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왕 휴가를 온거라면 즐겁게 보내다 가는 것이 내게 큰 도움이 되리라는, 다소 익숙한 생각을 했다. 목적지도 괜찮아 보였다. 동티베트를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딴빠의 자쥐짱짜이(또는 '갑거장채')를 꼭 가곤 했다. L은 만들어진 관광지라면 일단 기함을 하며 피하려고 애썼지만, 나는 만들어진 관광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여기를 개발했을 때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행정적 판단이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나와 L이 참 다르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한 회사, 한 팀에서 인턴을 하면서도 익히 알려진 바긴 했지만, 나와..

[4일차] 9월 5일, 상목거-신두차오[新都橋]-타공[塔公]-빠메이[八美]-야라설산[雅拉雪山]

9월 5일 월요일. 이 날도 날은 흐렸다. 그래도 오늘은 여길 나간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설렜다. 민가 주인이 여행기간 동안 이용할 차량과 기사를 물색해주었다. 유류비 제외 1일 600위안. 만약 숙박을 하게 된다면 숙박비는 우리가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장거리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과 비교하면 결코 저렴한 금액은 아니었지만, 금액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정된 기간 내에 압축적으로 여정을 소화하는 것이었다. 상목거의 길은 매일이 달라졌다. 어제는 분명 있었던 길이 오늘은 없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 날도 그랬다. 엊그제 들어오며 우회했던 길이 오늘은 간밤에 온 비 때문에 떠내려갔고, 대신 원래 다리가 어설프게 복구되어 있었다. 여전히 다리 옆에는 전복된 트럭이 그대로 물에 잠겨 있었다. 아마도 공사 때문에..

[3일차] 9월 4일, 상목거-즈메이야커우, 그리고 북망산(...)

9월 4일 일요일. 이 날은 아침부터 비가 많이 왔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전날 민가 주인은, 우리가 애초 가려 했던 즈메이야커우까지 길이 험해 차량 접근이 어려우므로 오토바이를 타고 갈 것을 권했다. 그리고 즈메이야커우 외에 두 곳의 여행지를 추가로 추천해주었다. 즈메이야커우는 새벽에 올라가야 공가산[貢嘎山]의 전경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밤늦게 미리 와서 자고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었다. 출발하기로 한 시간이 임박했으나,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 역시, 전날의 여정이 힘들었는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기다렸다, 비가 그치기를. 비가 그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딱히 그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전 9시가 되었지만 비는 그..

[2일차] 9월 3일, CTU-KGT-상목거(上木居)

9월 3일 토요일. 이 날의 기억은 그다지 좋지 않다. 우선 호텔에 들어간지 세 시간도 되지 않아 일어나야 했다. 청두부터 첫 목적지인 캉딩까지는 장거리버스로 대략 4시간 이상 소요될 것이었기에, 짧은 기간 동안 압축적으로 시간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보다 빠른 탈것이 필요했다. 캉딩공항으로 떠나는 비행기의 시간은 오전 7시. 쓸데없이 꼼꼼하기로 소문난 중국의 항공보안검색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었다. 잠을 제대로 잔 것인지도 모르게 일어나 다시 공항으로 떠났다. 아직까지는 초반이니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고. 한 시간을 날아 내린 캉딩 공항은 해발 4,300미터에 위치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공항이라고 했다.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탈의실과 의무실. 그..

[1일차] 9월 2일, ICN-CTU

9월 2일 금요일. 이 날은 거의 하루종일 서비스 관련 보도자료를 작성했다. 회사에 대언론 창구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이걸 내가 왜 쓰고 있어야 하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튼 뭐 그랬다. 글을 쓰는 건 일이어도 즐겁다. 현상이 나의 언어로 번역되어 타인의 논리구조에 들어가고, 타인이 제대로 이해하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일이다. 여행과는 큰 관계가 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진작에 말과 글을 다루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해외영업이니 경영이니 하는 것들에 억지로 관심을 가지며 스스로를 속여왔던 날들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저녁 8시 출발 비행기라, 오후 5시 45분에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인천공항행 직통열차를 타야 했다. 팀장께 양해를 구하고 30분 일찍 회사를..

[prologue] 그렇게 다시 중국으로 갔다

첫 직장에서 맞는 첫 리프레시 휴가 - 회사는 여름에 편중되어 사용되는 '여름휴가'를 없애고 대신 '리프레시 휴가'로 이름을 바꾸어 연중 어느때나 사용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 를 결정한 것은 7월이었다. 나는 당시 도무지 생각과 맞아 떨어지지 않는 회사를 떠나기 일보직전이었다. 한편으로는 그 괴로운 일상을 대차하고자 다짜고짜 응했던 소개팅에서도 차여 몹시 죽고 싶은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쓰고보니 전후관계가 다소 비틀어졌지만) 보다 못한 '누군가'가 내게 같이 여행을 가자고 했다. '리프레시'를 위해서. 그 누군가는 좋은 데 가서 쉬는 것도 좋지만, 한 살이라도 더 늙기 전에 '고생하는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도 동의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스스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