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


  더위와 올림픽으로 인해 식었던 광장을 불교계가 다시 달구고 있다. MB정권의 막되먹은 종교 편향 행위[각주:1]에 인내심이 다한 불자들이 거리로 나서 '정교분리'와 '국교없음'을 명시한 헌법을 준수하라며 MB에게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누리꾼들은 소강상태로 접어든 촛불집회의 불씨를 불교계가 되살리고 있다고 칭찬하며, '역시 호국불교다'란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 '호국불교'란 수식어가 참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투쟁의 과정에서 한 명의 '내 편'을 얻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전쟁이란 것도 멀리서 바라보면 결국 세력싸움이기 때문에, 내 편을 더 많이 갖는 사람이 대부분 이기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내 적의 적은, 곧 나의 동지'라는 전쟁격언도 있을까. 그런데 이런 말도 있다. '동상이몽'. 한 침상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인데, 헐리우드판으로 이 말을 재개작하면 '적과의 동침'이다. 동침은 하고 있으나, 상대는 본질적으로 적[각주:2]이라는 거다.

  사태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불교계의 요구가 시민들이 촛불을 통해 보여준 정권에 대한 요구와 그 맥락을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민들과 불교계 모두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시민의 대표로서의 사과를 요구하는 반면 불교계는 권력자로서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차이다. 전자와 후자가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전자가 시민의 대표로서 민주주의란 기본 이념에 충실하지 못한 점과 시민의 건강권을 쉽게 내어준 데에 대한 책임을 묻는데 반해 후자는 단순히 불교계라는 한 세력을 소홀히 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쉽게 말해, 시민들의 광장이 생활밀착형 정치가 실현되는 아고라라면, 불교계의 광장은 권력투쟁의 전쟁터인 것이다.

  중요한 점은, 시민들이 불교계에 '호국불교'라는 애칭까지 붙여가며 기대를 하는 이유가 앞서 말한 '내 편'이라는 데에 있다. 길게는 4년 4개월 동안 이루어질 '대정권 투쟁'에 불교라는 큰 세력이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지향점의 차이' 때문에 그 연대가 과연 이루어질지, 더 나아가서는 그것이 계속 유지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지금의 MB 상태로선 절대 그러지 못하겠지만 -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자체를 모르는 인간이기 때문에 - 만약 MB가 뛰어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해 개신교계를 멀리하고 불교계를 아우르려는 제스츄어를 취한다면 '연대' 전선은 곧 붕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범불교도대회에 참여한 대다수가 단순히 '종교 차별'에 한을 품고 MB에 비판을 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변혁은 의외로 단순한 데에서 비롯된다. 뜨거운 가슴으로 투쟁하되, 머리는 차갑게 유지해야 할 시점이다. 늘 그렇듯, 본 글에 대한 무한한 비판을 환영한다.
  1. MB의 1등 하수인인 어청수 경찰청장은 조직 내 게시판을 통해 자신이 참여하는 시국기도회를 홍보하였고,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와 자기과시를 위해 사진을 찍는 등 한 국가기관의 수장으로서의 자질이 의심되는 행위를 한 바 있다. 이후에도 경찰은 촛불집회 관련 수배자들이 조계사로 피신해 있다는 것을 이유로 조계사 내로 들어가는 조계종 총무원장의 차량을 강제 검문하여 또 한 번 파문을 일으켰다. [본문으로]
  2. '적'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너무 강해 다른 말로 바꿔보려고 했지만, 그럴 경우에는 원문의 기막힌 형용모순이 표현되지 않아 그냥 살려두기로 했다. 표면상 '적'이지만 사실은 '너'와 '나' 사이의 회색지점도 포함한다. [본문으로]

시차적응이 안된다

2008. 8. 23. 02:07
사용자 삽입 이미지Canon | Canon EOS 400D DIGITAL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25sec | F/3.5 | -0.33 EV | 18.0mm | ISO-1600 | Off Compulsory | 2008:07:09 05:55:14
 
Tchaikovsky - 1812 Overture Op.49
지휘 : 레너드 번스타인
후반부 3분 30초 분량만 잘라서 업로딩


  유럽에서 돌아오자 마자 해야 할 것들이 마치 벽처럼 내 눈앞에 선다. 개강 준비나 현 정권과의 지지부진한 밀고 당기기 - 물론 MB씨는 내가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 말고도 시차적응이라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여하간 해외 여행 경험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몇 번의 사례로 볼 때 나는 그닥 시차적응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비근한 예로 캐나다에 갔었을 때도 밴쿠버에 도착한 첫 날은 물론이거니와 돌아와서도 그닥 장애없이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다. 시차적응을 제대로 못한 탓에 사흘째 새벽 컴퓨터질 중이다. 하기사 원래도 블로그에 글들을 새벽에 썼었다. 이상하게도 대낮에 맨 정신에서 쓰는 글은 내가 생각해도 별로인데, 졸린 눈을 비벼가며 쓰는 글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착란 상태에서 쓰기 때문일까. 불현듯 '뽕 맞는' 연예인들이 급히 이해가 간다.

  시차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나라와 시각대가 다른 곳에 있다보면 묘한 경험을 한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잠든 사이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이 촛불 집회에 귀기울이지만 그 중 대다수는 자정을 넘기지 못하고 관심의 끈을 놓아버린다. 그들이 의지가 박약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도 생활이 있고 그를 위해서는 잠이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각대가 다른 곳에 위치한 나는 상황이 다르다. 새벽 시각대에 들어오는 연행자들의 속보를 일일히 접할 수 있고, 다음날 인쇄를 위해 각 신문별로 내놓은 '종합' 뉴스들을 비교해보면서 꼼꼼하게 읽어볼 수도 있다. 맨 정신으로 말이다. 무엇보다도 큰 재미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는 거다. 사람들은 흐름에 매몰되면 그 흐름을 읽지 못한다. 아마도 이것은 시각대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기 보다는, 내가 현장에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나는 곧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그들이 지난 12월에 벌였던 만행과 현재 그들이 올림픽을 보며 행하고 있는 행태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이든, 많은 사람이 장기간 가담하게 되는 일은 반드시 탈이 나게 되어있다. 어떤 일이 정당성을 갖느냐의 판단기준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 아주 틀어진 일일 경우, 내부의 자성하자는 목소리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더 오래 갈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에 응답하기 때문이다. 어떤 명분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건 반성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경제라는 밑도 끝도 없는 장밋빛환상에 간도 쓸개도 내주었던 지난 12월이나 어쭙잖은 '메달노래'로 환상을 정당화하는 지금의 민족주의적 광풍과 앞으로의 촛불집회가 차이를 보일 수 있는 지점이, 바로 그 곳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덧 : 아마도 요새는 '못생겼다'는 말을 '훈훈하다'는 표현으로 하는 모양이다. 몇 선수들의 미모에 '얼짱'이란 헛웃음켜게 만드는 호칭으로 찬사를 보내다가, 얼굴은 안되도 '자랑은 스러운' 선수들에게 마지못해 '훈훈하다'는 수식어를 붙여주는걸 보면 말이다. 물론 아름다운 것은 언제까지나 긍정적이다. 맛난 떡도 보기가 좋아야 하고, 치마를 사도 기왕이면 다홍색이면 좋다. 그러나 지금처럼 선수들이 무슨 연예인마냥 얼굴로 칭찬을 받아야 하는건지, 나는 때로 혼란스럽다. 다수의 아이돌들 중 소수만 열성 팬들을 갖는다. 이상하게도 학창시절에 그렇게 아이돌들을 좋아하던 여아들은 머리가 좀 크면 '제가 왜 그땐 그랬는지 몰라요'하며 철 든 티를 낸다. 그 '철 든 여아들'에게 버림받은 아이돌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쉽게 좋아하고 쉽게 버리는 것은, 버려도 새로 살 수 있다는 산업시대가 불어넣은 헛바람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걸까'란 자기성찰을 불가능하게 하는 집단주의적 광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덧2 :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해보고 있다. 누군가와 무슨 이야긴가를 하다가, '너, 걔 좋아하는구나'란 이야기를 들었는데 난 그것에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좋다'는 것에 대해 확고한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좋다'는 것은 그것에 대응되는 영단어마냥 Good에 가까운 동사다. 그렇기 때문에 남발해도 돈은 들지 않지만, 나는 왠지 그런 단어일수록 그냥 소비하기가 싫다. 나는 컴퓨터를 좋아하지만, 때론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밥을 좋아하지만, 역시나 때론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함'과 '안 좋아함'이 반복되는 시퀀스를 정말 '좋다'는 한 단어로서 정의내릴 수 있을까. 사랑이란 것이 원래 서로를 채워주는 매커니즘의 로만틱한 표현이라고 하지만, 아마도 그런 아름다운 정의 역시 '자신없음'을 감추려는 다수 군중의 자기합리화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싫다는 건 참 명확하다. '난 이명박이 싫어' 어쩜 이렇게 명쾌할 수 있는지)

덧3 : 빅벤과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을 같이 배치한 까닭은 빅벤이 속해 있는 건물이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폭탄에 날아가는 영국 국회의사당이기 때문이다. 이 음악에 대한 포스팅도 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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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7월 5일 후기

2008. 7. 8. 00:58



오늘로서 촛불집회가 60회를 맞았다고 한다.
매일 한 차례도 쉬지 않고 이어져 왔다면 60일, 몇 번 빠진 적이 있었다면 그 이상 동안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 시민들이 대한민국의 심장 위에 서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MB와 그의 수하들은 어떻게든 이 촛불을 꺼보고자 갖은 정치적 레토릭과 음모론을 제기하였지만,
시민들은 그런 모함과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어쨌든 촛불을 지켜왔다.

대책회의와 정부와의 커넥션이 이야기 - 개인적으로 많은 부분 청와대의 '저작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는 연기가 나지 않는다 - 된 것처럼 내부에서도 이제 '그만 하는게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지금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물론 몇몇의 '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지금이야 말로 '조직력'이 필요한 시점일 수도 있다.
조직을 동원하면 수적으로도 많을 뿐더러, 지금처럼 '유약한' 비폭력을 논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조직이 가져온 들불은 빠르게는 타들어가지만, 결국엔 꺼지고 말 것이다.
촛불처럼, 꺼진 후에도 다시 성냥을 들이대면 타오르지는 않는다.
들불이 지나간 자리는 황량하다. 하지만 촛불이 지나간 자리엔 빛이 있다.
빛과 불은 분명히 구분된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시민들은 자의에 의해 나오면 된다.
꺼지면, 그것이 시민의 뜻이다.
신체에 대한 공포가 이제는 사그라들었다는 뜻이고
이 정부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그들이 이전처럼 '무관심' 내지는 '적당한 타협'을 했을 수도 있다.
정신차리고 보니, 너무 우스운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전의 그들이 아니다.
그들은 이제 그들이 그렇게 재밌게 읽어 마다하지 않던 '조, 중, 동'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그들은 이제 그들이 대선 당시에 생각했던 것처럼 2MB의 정책이 단순히 '삽질정책'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우리에겐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정당으로서, 그리고 남들보다 '더 정치적인' 인간으로서 우리가 할 일은
시민들이 그 앎을 지속하기를 바라고 그를 돕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시작부터 그랬으니까.
그런 점에서 대책회의의 '평일 시위 주도 포기 선언' 내지는 '청와대와의 소통노력'이란게 조금 우습다.
우리의 배후는 대책회의가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대책회의가 대표할 수 없는 것 아니었던가?


스님들이 제작한, 연꽃을 든 소녀를 시민들이 구경하고 있다Canon | Canon EOS 400D DIGITAL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100sec | F/5.6 | 0.00 EV | 55.0mm | ISO-1600 | Off Compulsory | 2008:07:05 22:53:03

연꽃을 든 소녀를 시민들이 구경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초파일때 심심치 않게 보여주시는 스님들의 내공이 집약된 개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Canon | Canon EOS 400D DIGITAL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30sec | F/3.5 | 0.00 EV | 18.0mm | ISO-1600 | Off Compulsory | 2008:07:05 22: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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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Canon | Canon EOS 400D DIGITAL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13sec | F/3.5 | 0.00 EV | 18.0mm | ISO-1600 | Off Compulsory | 2008:07:05 22:56:19

이제는 모두가 2MB OUT을 외칠때
무능하고 비도덕적인 지도자가 당선되었을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덧 : 내일부터 어쩌다보니 유럽에 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유럽의 민주주의'란 것에 대해 알아보고는 싶은데 그 놈의 언어적 장벽이 걱정이다.
  1. Favicon of https://gonghyun.tistory.com 공현 2008.07.16 14:22 신고

    넌 왜 같은 집회에 나와있어도 내가 진보신당 칼라TV쪽 기웃거릴 땐 맨날 안 보이니 ㅋㅋ




나는 김광석을 참 좋아한다.
김광석 노래를 처음 들은게 중학교 2학년 때였으니까,
정말 어린 김광석의 팬이었다고 하겠다.

어른들은 '서른즈음에'를 부르는 중학생을 의아하게 여겼다.
물론 나도 그 뜻을 모르고 불렀다.

어느날 CD 네 장으로 구성된 김광석의 추모집이 눈에 띄었다.
주저하지 않고 거금  몇 만원을 쏟았다.


그러다 본 영상이다.
나는 이것을 처음 본 5년 전에도 가슴이 떨렸지만
지금은 이상하게 더 떨린다.

데자뷰인양, 내가 요 며칠 '신새벽'에 보았던 것들과 너무 흡사해서인 모양이다.

  이 글은 2008/06/12 - [시작, 2008] - 왜 진보신당인가? - (1)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을 버린 이유의 후속편격이다. 앞 글에서는 진보신당의 가입 이전의 나의 정당생활에 대해 간략하게 적어두었다. 별 내용은 없지만, 관심이 있으면 읽어보라.




  4월 9일, 진보신당은 믿었던 심상정-노회찬 두 후보의 낙선 · 정당지지율 3% 획득 실패(실제 2.94%)로 한 명의 의원도 내지 못했다. 그들이 버리고 뛰쳐나온 민주노동당의 사정도 좋지 못했다. 물론 수성에 성공한 권영길, 이방호라는 거성을 무너뜨린 강달프[각주:1]의 존재가 돋보이긴 했지만 17대 총선 당시 10석[각주:2]이라는 쾌거를 이뤘던 거에 비교하면 이번 18대 총선의 5석[각주:3]은 진보정당의 입지가 엄청나게 좁아져 있다[각주:4]는 것을 의미했다. 어쨌거나 처참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던 진보신당은 - 지금은 촛불정국 때문에 조금 소외되는 분위기지만 - 재창당을 결의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그 재창당을 대표들과 간부로 구성된 소수의 대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당원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보신당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작은 지도부의 특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수인 일반당원들에게 여타 당들보다 더 넓은 운신의 폭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앞서의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런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열린우리당은 6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한 이른바 '진성당원'들에게 국민경선에 참여할 기회를 주었고, 민주노동당 역시 일정 자격이 되는 당원들에게 당내 긴급 현안들에 대한 투표권을 주었다.

  그러나 진보신당은 당원들에게 그들보다 더 많은 참여기회를 주고 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당원들이 '당직자들에게 주도할 기회를 주고 있'다. 현재의 촛불정국에서 진보신당의 심벌로 자리잡은 '칼라TV'는 당 차원에서 주도한 것이 아니라, 일반 당원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미디어 팀이다.[각주:5] 촬영 장비 공수 및 편집, 스트리밍 서버 제공자 섭외, 진행 자원[각주:6] 등 방송 운영의 핵심적 운영에서부터 진행을 원활하게 하는 자원봉사자까지 온통 일반 당원 천지다. 중앙당에서 해 준 것은 그냥 몇 가지의 금전적, 물질적 도움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버재창당의 경우도 그렇다. '서버재창당'이란, 현재 열악한 수준의 당 홈페이지를 - 지금 상태로는 방문자가 조금만 증가해도 서버가 다운되는 경우가 잦다. 인터넷 시대를 열어가야 할 진보진영에게 이런 현상은 조금 부끄러운 일이다 -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리자는 운동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서버 구입, 웹 디자이너 고용, 컨텐츠 제작 등이 있는데 서버 구입에 필요한 자금은 일반 당원들이 십시일반하여 모으고 있는 상태고 웹 디자인과 같은 부분은 당 내 해당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당원이 어느 정도의 자원봉사를 해주는 식으로 해결했다고 알고 있다. 이 과정에서도 역시나 중앙당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나름 실무자로서 가진 전문적 의견을 개진하기도 전에, 더 전문가인 일반 당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그야말로 '웹 2.0'식의 능동적인 흐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흐름은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다. 중앙당 주도의 연행자 관리&변호 사무는 실질적으로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중앙당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들의 수가 너무 적어서이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중앙당 상근자들을 위해 당원들은 당장 필요한 인원을 파악하고 그것을 업무별로 나누어 당원들에게 참여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칼라TV 스탭들을 위한 '밥나르기' 자원봉사가 이루어졌다. 이 역시, 자금 모금부터 실제 집행까지 오로지 일반 당원의 손에서 생산되었다.

  이러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은 굉장히 이상적인 형태다. 정치가 곧 삶이 되는,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본질적 의미에 가장 가까운 형태의 정치 현상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가 불안정한 상황에까지 치닫게 된 것은 시민들이 '실질적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현실정치에 반영되지 않는 현상이 비일비재해진 탓에 시민들이 패배주의에 젖거나 아니면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갖게 되어, 대중에 의한 대중의 정치라는 민주주의(demos+cracy)가 그 본질을 잃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일반 대중의 씨알이 먹혀들어가는 현상이 진보신당과 같은 '정치적 아이콘'에서 나타나게 되면, 대중들은 자신의 의견이 현실화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고 모처럼 찾아온 그 기회를 놓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일종의 '피그말리온 효과'다. 이런 현상이 우리 정치사에서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다. 유시민이라는 걸출한 논객을 정치인으로 변신시킨 개혁국민정당이 이 부분에서는 진보신당의 선배격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군집화, 거대화된 것이 오늘의 촛불집회다. '배후 없는' 촛불집회가 40여일을 맞게 되는 원동력도 거기에 있다.

  당연히 진보신당에게도 부족한 점은 있다. 원외정당이라는 한계도 있겠지만, 아직 그들이 '공당'으로서 가진 정치적 파워는 미약하다. '원외 제1정당'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는 하지만, 작금의 사태들에 대해 몇 가지의 논평을 내는 것 외에 하고 있는 일은 없다. 이 때문에 가끔 시민들의 항의가 들어오기도 한다. 진보신당이 서민의 삶을 지향하면서도 실제로 하는 것은 없지 않느냐는 논조다. 무조건적으로 '전시 행정'을 늘어놓는 것도 지양해야 할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이렇듯 '하는 일 없지 않느냐'는 소릴 들을 정도로 조용한 것도 문제다. 대중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판단한다. 정말로 '진보신당'이 대중정당을 꿈꾸고 있다면 어느 정도의 제스츄어를 취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앞서의 사례들에서 보았듯, 진보신당은 스스로를 수정하는 훌륭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자정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곧 자가발전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보는 반성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내가 진보신당에 또다른 희망을 가져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왜 진보신당인가?' 연재 종료)

  1. 강기갑 의원을 지칭하는 네티즌들의 용어다. [본문으로]
  2. 지역구 - 2석, 비례대표 - 8석 [본문으로]
  3. 지역구 - 2석, 비례대표 - 3석 [본문으로]
  4.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는 지난 17대 총선부터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다. 유권자는 투표할 때, 지역구 후보에 대한 투표권과 정당에 대한 투표권을 갖는데 이를 통해 얻은 정당 득표율대로 각 정당에 비례대표 당선자 수를 할당하는 제도다. 비례대표 당선자의 수가 8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유권자들이 지난 총선에 비해 그 정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5. http://www.newjinbo.org/board/view.php?id=discussion&url=/board/list.php?id=discussion&search[subject]=on&search[word]=스텝&no=967 [본문으로]
  6. 진중권, 정태인 교수는 현재 일반 당원인 것으로 알고 있다. '헤딩라인 뉴스'의 이명선 앵커의 경우에는 진보신당의 맥이 자신이 가진 신념과 일치한다고 하여 자원한 것으로 알려진다. [본문으로]
  1. Favicon of https://youth.sisain.co.kr 겨울녹두 2008.06.15 01:09 신고

    진보신당이 되었던 민주노동당이 되었던...

    정당정치의 원형이 살아났으면 합니다.

    우선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회복이 우선이겠지요.

    요번 총선에서 진보신당과 창조한국당이 그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봅니다.

    창조한국당이 벌써 배신을 때려 어이가 가출했습니다만...

    • Favicon of https://blog.philobiblic.com 클라시커 2008.06.15 10:46 신고

      창조한국당의 전향은 이미 '예정된 배신'이었지요. ㅎㅎ CEO 출신의 후보가 사회주의에 가까운 우리들과 맥을 함께 한다는건 참 쉽지 않은 일일 거에요.

  2. Favicon of https://youth.sisain.co.kr 겨울녹두 2008.06.15 01:22 신고

    칼라TV는 잘 보고 있습니다. 진중권 교수님의 진행때문에 몇번 봤구요... 칼라TV PD이신 조대희님은 미디어운동진영에서 꾀나 뿌리가 깊은 분으로 알구 있구요 ^ ^ 얼마전에 자원활동가 모집하시더라구요... 참으로 대단합니다. 아무래도 민주노동당에 비해 역동성이 뛰어난 진보신당입니다.

    • Favicon of https://blog.philobiblic.com 클라시커 2008.06.15 10:48 신고

      ㅎㅎ 조PD님 그런 분일 것 같았어요. 진보신당이 역동성이 뛰어난 이유는 본문에서도 밝혔듯, 지도부의 수가 적어서인 것 같아요. 문제는 이제 '우리가 민노당만큼 어느 정도 커졌을때도 과연 이럴 것인가'이겠죠. ㅎ

  정국이 뒤숭숭하다. 80년대에나 보였던 '토끼몰이', '프락치', '사복경찰'이란 단어들이 헤드라인을 돌아다닌다. 더불어 '배후설'도. 연일 계속되는 촛불집회에 대해 경찰청장과 검찰청장은 '배후가 있다'면서 '그들을 색출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라 선언하고 있다. 87년에 태어난 내가, 천장의 모빌을 보던 그때 6월로 돌아온 느낌이다.

  권력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5, 6, 7, 80년대에  그들의 '정치적 선조'가 국민들을 향해 하던 이야기와 똑같다. 지금 그들의 발언들은 해방 이후에 모두 사라졌어야 할 집단들이 그들의 생명을 연장시켜준 독재정권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일종의 오마주인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 '선조들'이 모두 민주사회를 역행하는 일들을 했음이 명명백백히 밝혀진 이 시점에서 그들이 했던 이야기를 똑같이 할 수는 없다.

  배후, 배후하는데 촛불시위의 배후는 나다. 엄밀하게 말해, 나처럼 세련된 용어로 현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썰을 푸는 나같은 '블로거'들이 배후다. 그리고 명확한 가치기준을 가지고 옳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 하에 촛불시위 일정들을 자기가 애정을 쏟고 있는 카페로 옮겨가는 '네티즌'들이 배후다. 어청수 경찰청장이 수백명이 되었건 촛불시위의 배후를 색출해내겠다고 하는데, 그의 예상치는 이미 틀린 것 같다. 당장 수천명으로 고쳐주기 바란다.

  배후를 자꾸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정부의 속내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80년대에 이미 갈아치워진 이전 맞춤법을 여전히 준용하여, '읍니다'가 맞다고 믿고 있는 자가 권력의 정점에 있어서인지 그 똘마니들도 국어 능력중 하나인 문맥 이해 능력이 크게 부족한 것 같다. 쇠고기 고시 반대를 위한 촛불집회는 그것이 이미 내포하고 있듯, '쇠고기 고시'라는 정치적 사안에 '반대'하기 위한 정치적 집회다. '문화제'란 이름을 단 것은, 정부가 얼기설기 만들어놓은 집시법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꼼수다. 다시 말해, 작금의 시위는 비정치적 성격을 띤 정치적 집회다. 그러한 암묵적 합의가 있어서 이명박에 대한 반대, 도로점거 시위로도 자연스럽게 넘어간 것이다. 정말 '문화제'라 생각하고 나온 나이브한 국민들이 적기 때문에.

  집시법? 지금의 집시법은 신고제의 탈을 쓴 허가제다. 아무리 그 의도가 좋아도 경찰이 신고를 받지 않으면 불법집회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사회단체가 집회를 연다고 할지라도 그것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게 불법/합법이 결정되는 것이다. 동일한 시위임에도 서울광장에서 '반핵반김국민연대', '자유총연맹' 같은 노망난 노인네들의 집회가 열리는 것은 허용되고 지금의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것은 불허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반대받는 집단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넌센스다. 그런 사정을 모르고 불법집회라 무조건 안된다고 말하는 나이브한 자들도 넌센스고. 그 우두머리에 그 똘마니라고나 할까.

  김상봉 교수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시위를 하라는 것은 이불 속에 들어가서 만세 부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사실, 우리네 교과서에서 나오는 그 '친절함'은 사실 '멍청함'이다. 왜 파업의 번역이 strike이고, 시위의 번역이 demonstration인지를 생각해 보라. 어륀지를 강조한 정부니 이런 초딩 수준의 영단어 뉘앙스 해석은 충분히 해낼 거라 믿는다.

  해외에서 경찰저지선 넘어 시위하면 우리보다 더 엄격하게 다스린다는 사람들. 미안하지만 당신들이 알고있는건 부분이다. 외국의 시위 현장에서 방패를 본 일이 있는가. 외국 경찰들은 그냥 인간띠를 만들어 제한한다. 물론 그들도 예전에 경찰봉을 든 일이 있었다. 물론 그 다음의 선거에서 집권당은 그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우리처럼 이렇게 불쌍한 전경애들 데려다놓고 방패로 찍고 경찰봉을 매번 휘두르고 테이저건으로 기절시키는 만행을 저질러도 정권이 유지되는 나라는 북한, 쿠바, 중국 빼곤 없다. 국민들이 메조키스트가 아닌 이상 그 정권이 몰락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데,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그런 일이 아직 없다. 그 이유는 우리 국민이 너그럽거나 변태거나 둘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나는 전자라기보다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별로 좋은 나라가 아니다. 20년만에 민주화를 이룩한 탓에 선도적인 그룹만 그 의의를 잘 이해하고 있고 나머지는 그냥 추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진짜 민주국가는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자각하는 나라인데, 앞서도 말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그 수준까진 오르지 못했다. 앞으로 이런 촛불시위가 몇 번은 더 있어야 우리 국민들이 피플파워에 대해 자각할지. 개탄스럽지만 그 성장이 기대되는 순간이다.

며칠 째냐...

2008. 6. 8. 12:46
연 나흘째 현장에 나와 노트북을 붙잡고 있다.
당명을 내걸고 하는 일이라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실수 연발이다.


오늘 저녁에는 집에 들어간다.
  지난 6월 5일, 대책위 쪽에서는 72시간 철야농성을 선언했습니다. 이에 호응하여 많은 시민단체들이 시청 바로 앞에 부스를 차려놓고 철야농성 중입니다. 저희 칼라뉴스와 칼라TV 역시 85시간 집중 취재를 선언한 상태입니다.




  인권단체의 부스에서는 민변회장을 초청하여, 헌법강의를 여는 한 편 집시법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받고 있습니다.




  민가협 어머님, 아버님 이십니다. 젊은 이들도 추운 이 시간에 나오셔서 기꺼이 농성대열에 함께하고 계십니다. '미남, 미녀'라 말씀드리니, 환하게 웃으십니다. 이 분들이야말로, 대한민국 민주화의 산 역사라 할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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