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記/2015, 미국 동부

새벽 6시에 일어나 1등으로 아침식사를 마쳤습니다. 시차적응이 덜 되어서이기도 했겠지만, 저를 제외한 룸메이트 5명이 새벽에 들어와 부스럭 거리는 통에 잠을 설친 탓도 큽니다. 둘째날 아침에 잠깐 이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알고보니 보스턴에서 열리는 코믹콘 비슷한 행사에 참가하러 온 일행이었습니다. 나름 한국 내에서 공인받는 준 덕후로서 덕에 대한 담화를 나누어보고자 하였으나, '덕중지덕은 양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더랬습니다.


각설하고, 그렇게 일찍 아침식사를 마치고 유스호스텔을 일찍 빠져나왔습니다. 회색빛 하늘 아래에 폭설로 쌓인 눈들이 까맣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제가 보스턴에 갔던 시기는 기록적인 폭설이 있었던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MIT 친구들이 눈산을 만들어 등반에 성공하고 찍은 자축사진이 나돌던 때입니다.





분명히 보스턴 코먼을 생각하고 걷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바다가 눈에 들어옵니다. 가이드북을 대강 보니 보스턴 커먼은 바다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 싶어 구글 지도를 켜 봅니다. 그제서야 처음에 방향을 잘못 잡은 탓에 아예 반대 방향으로 와 버렸다는 것을 알고는 황급히 방향을 틀었습니다. 한참을 종종걸음 치다보니 웃음이 납니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지만 몸에 밴 급한 성격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걷는 속도를 좀 줄이다보니 미국의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보스턴의 모습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옵니다.





'보스턴 코먼', 우리로 치면 시청광장 쯤 되는 곳입니다. 주청사 앞에 마련된 이 정방형의 공간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며, 또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실외 스케이트링크를 가진 곳이기도 합니다. 원래는 방목을 위한 목초지였던 이곳은, 이후 해적이나 죄수들을 공개처형하는 곳으로 활용되다가 1775년의 그 유명한 렉싱턴 전투 기간 동안에는 영국군의 진지가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에 들어 마틴 루터 킹,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공개연설을 한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코먼이 처음 등장한 1600년대 중반 이래, 근 400여 년간 보스턴 역사의 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와 함께 눈여겨 볼 것은, 보스턴 코먼의 양 끝에 있는 지하철 역입니다. 보스턴이 미국에서 가장 먼저 도시철도를 운행한 도시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 파크 스트리트 역과 보일스턴 역의 구간은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운행된 구간이라고 합니다.





코먼을 걷다보면 바닥에 표시된 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제가 가장 먼저 경험할 '프리덤 트레일'의 표식입니다. 우리나라의 제주 올레길처럼, 보스턴 지역사회 역시 미국의 고도이자 혁명의 정신적 수도라는 자긍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프리덤 트레일'이라는 어트랙션을 운영 중에 있습니다. 말 그대로, 독립혁명과 연관이 있는 도시 내 사적지들을 숙련된 가이드와 함께 돌아볼 수 있는 길입니다.





프리덤 트레일은 보스턴 코먼에서 시작하여, 주 청사, 파크 스트릿 처치, 올드 코너 북스토어, 벤자민 프랭클린이 유년시절에 다녔던 학교, 올드 사우스 미팅 하우스, 구 주청사를 지나 패뉼 홀에서 마무리 됩니다. 시간상으로는 대략 2시간 정도이며, 아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당시 복장을 한 가이드 1인과 함께 하는 여정입니다. 가이드는 굉장히 유쾌하며, 보스턴의 문화유적지를 소개한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간간히 거센 눈보라가 치는 날씨였고, 이에 많은 관광객들이 장갑과 모자로 완전무장을 해야 겨우 따라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만, 손이 시려운 상황에서도 손가락 끝이 없는 장갑을 고수하는 저 늠름하고 잘 생긴 청년을 보십시오.





누군가에게 보스톤은 단순히 클램차우더 수프나 로브스터로 유명한 도시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MIT와 하버드로 대표되는 유명한 교육도시일 것입니다. 그러나 메이플라워 호가 북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이후의 역사, 그리고 한 술 더 떠 미국의 역사를 논하는 데에 있어 보스톤은 빼놓을 수 없는 도시입니다. 미국인들이 그들의 정신으로 삼고 있는 혁명의 발원이 된 도시인 만큼, 한 번쯤은 그 여정을 쫓는 이 트레일을 따라 걸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2015년 7월 기준 스케쥴을 보니, 오전 5회/오후 8회나 퍼블릭 투어가 진행되는군요. 동계에는 아무래도 비수기이다 보니 이보다 횟수가 적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http://www.thefreedomtrail.org 를 참고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딱히 아는 곳이 없어 그냥 도심을 서성입니다. 그러다 배고파서 다시 패뉼 홀로 돌아가 인근의 유명한 오이스터 바에 들어가 이른 저녁을 먹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로브스터인지라, 망설이다가 과감히 70불을 던집니다. 조리방식은 전통적인 방법인 '찜'이었고, 살짝 발라 먹을 버터와 보스턴 맥주계의 양대 산맥 중 한 곳인 새뮤얼 애덤스의 IPA, 사이드 메뉴로는 감자튀김을 시켜봅니다.


사실 맛은 그냥 그랬어요. 이 여행기가 좀 시일이 지나서 적는 탓에 다소 그 감흥이 줄어들어서기도 하겠지만, 기억을 더듬어봐도 특별한 감흥은 없습니다. 많이 쫄깃한 크래미를 먹는 기분이랄까. 갑각류 자체가 가진 감칠맛이랄까 그런 것은 오히려 킹크랩이 더 낫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이 로브스터 찜 외에 로브스터 롤과 같은 다른 방식의 조리법도 많으니 그걸 시도해보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전날의 '후회'가 다소 사그라드는 하루였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시 보스턴의 밤거리를 걸으며, 무슨 상황에서든 당황하기보다 일단 차분히 대응을 고려해보자는 다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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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미국 | 보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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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7일 오전, 설레는 마음과 함께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해외여행을 처음 가는 것도 아니련만, 인천공항에 갈 때에는 왜 이렇게 매번 긴장되는지 모를 일입니다. 특히나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입국심사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국에 가는 것이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비자입국을 위해 필요한 ESTA 등록은 왜 이렇게 복잡하던지, 집에서 공항 가는 내내 확인증만 쳐다보고 있었지요.


부모님을 졸라 예상 출항 시간보다 세 시간이나 빨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좀 여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게 왠걸, 미주행 카운터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제가 출발하는 날은 휴일이 아니었고, 또 방학기간도 아니었는데요. 아마도 미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서였겠지요. 예전에 비해 미국 유학을 가는 경우가 많이 줄었다지만, 많은 항공사들이 타행 항공권에 비해 미주행 항공권에 더 많은 혜택을 주고 있고 또 미주 내의 기항지들을 많이 점유하려는 것을 보면 미국으로 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긴 많은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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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속을 마치고 면세구역으로 들어와 라운지로 향합니다. 한 번 가보겠다며 큰 맘 먹고 만든, 연회비 비싼 카드의 혜택 중 하나입니다. 1년에 두 번만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는데 두 번 이상 해외를 나갈 일이 아직은 없어서 이렇게 기회가 되면 꼭 라운지를 챙겨서 방문합니다.


먹을 건 별로 없습니다. 원래 입장가격이 3만원 정도 한다는데, 차라리 3만원을 들고 편의점에 가면 여기 있는 것들보다 더 맛있는 음식들을 더 다양하게 먹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식사대라기보다는 자릿세의 개념이 더 크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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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로 향하니 미국으로 타고 갈 비행기가 보입니다. 선뜻 미국으로 향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일리지의 힘이 컸습니다. 미주를 편안하게 직항으로 왕복할 수 있는 비행기를 단 16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기회였으니까요.


이 마일리지의 사용을 두고 갑론을박이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차라리 항공권을 사더라도, 이 마일리지를 이용해 좌석을 승급하여 타고 가는 것이 더 낫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냥 항공권을 저렴하게 사는 것이 낫다고도 합니다. 몇몇 명민한 사람들이 계산을 해 본 결과, 좌석승급이 더 단위마일당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이 재화를 어떻게 쓰느냐는 사용자의 가치관에 달려 있는 거겠지요. 저처럼 저렴하게 한 곳이라도 더 나가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좌석승급보다는 항공권을 구매하는 것이 더 편익이 크겠지요. 반면 한 번 나가더라도 몸 편히, 좋은 서비스 받으면서 나가는 것에 더 많은 효용을 두는 사람이라면 좌석승급에 마일리지를 사용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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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사진은 없습니다만, 어느새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3월 7일에 한국을 출발해서 열 몇 시간을 비행했는데 여전히 3월 7일인 상황. 제가 어렸을 때 수백번도 더 본 영화가 '백 투 더 퓨처'였는데, 날짜변경선의 의미를 볼 때마다 그 영화가 생각납니다. 드로리안을 타고 저도 달리고 달려 하루 전으로 온 기분이죠. 물론 집에 돌아갈 때에는 이 댓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하루를 벌었으니 집에 갈 때는 하루 더 늙어야 하는 거죠.


JFK 공항에 내리자마자 에어트레인을 타고 기차를 타러 유니온 스테이션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에어트레인 역에서 어떤 흑인 청년이 말을 걸더니, 여기서는 자마이카로 가는 에어트레인을 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운전하는 밴이 있으니 그걸 타고 가라고 하더군요. 네,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저는 여기서 사기를 당했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것은 좋았는데 자마이카 스테이션에 도달하자마자 문을 잠그고 있는 돈을 다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140달러인가를 달라고 했는데, 와서 환전할거라 돈이 없다고 하니 카드를 달라고 합디다. 학생이라 카드가 없다고 하니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던데... 아, 정말 그때의 그 경험은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네요. 나름 해외여행 많이 다녀봤고 산전수전 다 겪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을 당하다니요. 여러분, 잘 알아보고 다닙니다. 물론 공항 터미널을 순환하는 에어트레인도 있지만 분명히 자마이카 역까지 가는 에어트레인도 있습니다. 하하.


그렇게 유니언 스테이션에 도착했습니다. 휴대폰 심카드를 사야겠다 싶어 근처의 티모빌 가게를 찾아 대략 70달러에 구입. 물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좀 기다리셨다가 월마트에 가실 일이 있다면 월마트에서 심카드를 사시면 단돈 35달러에 더 많은 무료데이터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또 한 번 강조하지만 여러분... 해외여행은 역시 정보가 돈입니다.


여튼 이렇게 산전수전을 다 겪고 유니언 스테이션에 들어가 보니... 보스턴으로 가는 기차가 연착된다고 합니다. 다들 보통 뉴욕에서 보스턴 갈 때에 버스타고 간다고 했지만, 혼자 '위대한 천조국의 암트랙을 경험해보겠다!'고 버스비보다 비싼 돈을 주고 산 기차표인데 이게 대체 무슨... 그나마도 처음에는 예상 연착 시간이 30분이었지만 10분씩 찔끔찔끔 늘어나더니 어느새 1시간 20분 연착 예정. 그러려니 하던 사람들도 1시간이 넘어서니 모두 전광판 앞에 서서 웅성거리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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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을 끝에 탑승한 기차에는 이렇게 아울렛이 있었습니다. 출발 전에 집에서 아이패드에 영화와 읽을 책들을 몽땅 다운 받아 간 덕에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심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 제 앞, 그리고 그 앞의 앞 승객 모두 아이폰을 충전하고 있어 그냥 아무생각 없이 찍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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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기차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보스턴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눈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습니다. 역에서 유스호스텔을 가는 길에는 차이나 타운이 있었고, 그 가운데를 28리터짜리 캐리어를 끌고 가는 길은 결코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오늘 하루 종일 겪은 일들이 컸지요. 사기도 당하고 기차도 늦고. 큰 마음 먹고 온 여행인데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경험도 다 경험이라고 생각했었을까요? 음...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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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미국 | 보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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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에 미국에 다녀왔습니다. 다녀와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어디가 좋았었냐"는 것보다, "왜 갔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떠났었고, 또 여행가기 좋은 계절이 아니어서였을 것입니다.


사실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꽤 충동적인 여행이었고, 준비되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첫 목적지인 보스턴에 가는 기차표를 출국 전날에서야 예매했으니까요.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가서 헛돈도 많이 썼고, 첫날부터 사기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다녀와서 생긴 빚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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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두번째 도전한 채용전제형 인턴결과를 새벽 기차 안에서 받아 들었습니다. 유학 가 있는 학과 선배를 만나 자동차로 미국을 누비는 흔치 않은 경험도 했지요. 좋아했던 사람에게 혼자 설레발치다 이렇게 연애하는게 아니라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여행 중 쓴 상반기 공채 자기소개서를 다녀와서 읽고는 손발이 오글거리기도 했습니다.


'시기적으로나 실리적으로나 좋지 않은 경험이다'라고 평가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마 이 때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미국에 다녀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으며, 그렇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긴 시간을 자기계발에 들여야 하지만 이렇게 한량짓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제게는 다시 없을 좋은 시간들을 차근차근 정리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여행기를 다시 적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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