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記

그 즈음의 기억

2020. 5. 23. 21:15

아침에 실시간 생중계는 못 보고, 좀 지나 녹화본으로 추도식을 보다가 펑펑 울었다. 노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으로 썼던 '상록수' 연주 장면에 여러 사람들의 노래를 합쳐 함께 부르는 식으로 재구성을 한 비디오 때문이었다.

 

요즘 일이 많긴 했다. 어렵게 취직해서 5년 동안 열심히 공들였더니, 대표이사가 제깟놈 연임해야겠다며, 위기극복 시나리오 만드느라 없는 위기설 만들어가며 무급휴직 운운하는게 서럽기도 했고, 올 초부터 아프셨던 외조부가 며칠 전부터 떠나가실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헤어지고 나서 몇 번 한 소개팅에서 잘 될 것 같았는데 거절도 당하고 해서 힘든 5월이었다. 그렇잖아도 퍽퍽 울고 싶었는데 - 웃기게도 - 별 이유가 없어서 못 울던 차였는데, 기타 치는 노 대통령을 보고 콧등이 시큰했다가 많은 사람들이 한 뜻으로 한 사람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게 못내 감동적이었던 모양이다.

 

 

내 군번은 2009년 5월이다. 2006년에 재수, 2007년에는 삼수를 해서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1년여 정도 겨우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재검을 받고 논산에 입소했다. 5월 십 며칠이었던 것 같은데, 4급 보충역이어서 4주간 기초군사훈련만 받으면 되는지라 훈련소 내에서도 사회에 대한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곧 집에 갈 애들이라 그런지 바깥 소식이 닿는 조교나 간부도 별 말을 전해주지 않았었다.

 

입소한지 3주차쯤 됐나. 일요일 종교활동을 마치고서 생활관으로 들어오는데 같이 입소한 동기들이 '노무현이 죽었다,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를 않았다. 그 사람은 절대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TV 앞에서도 삐딱하게 서서 한 손 주머니에 찔러넣고 이야기하는 사람이고, 검사들 앞에서도 '이쯤되면 한 번 해보자는 거죠?'라고 물어보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수사를 받고 싸우면 싸웠지 고작 스캔들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실이었다.

 

 

뭐랄까. 노무현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중학교 시절에 노무현의 연설을 보고 반해 버렸었다. 광주였던가, 목포였던가 거기서 진행된 경선투표에서 남도의 아들인 한화갑을 제치고 당당하게 바람을 일으키던 모습을 보고는 더 열광하게 되었었다. '이 사람이야말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이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후보다'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작 중학생이 뭘 얼마나 안다고 그랬을까 싶지만... 여튼 그때는 그랬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의 내가 내놓는 소위 '전망'이라는 것보다, 그때 내놓았던 생각들이 실제로 맞아 떨어진 적도 많았고 더 나았던 것 같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 수록 더 배워간다는데, 나는 어째 퇴화중이다.)

 

대통령 취임식에 응모해서 당첨도 되고, 처음으로 서울에 혼자 올라와 여의도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 지하철 역에서 택시를 타고 국회의사당까지 갔었던 것 같다. 택시 아저씨가 멀찍이 국회의사당을 보며, '학생 저기 가는 거야?'라고 물어서 엄청 신나하며 답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사당 한 켠의 내 자리에 앉아 멀찍이서 그의 대통령 선서도 지켜봤다.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아 급히 산 일회용카메라로 사진도 찍었었는데 그 사진들이 어딨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이후에 그의 행보는, 글쎄. (지금은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자들에 의해 형편없이 방해되었으리라 짐작하지만,) 당선 초의 기대에 못 미쳤던 것 같다. '왼쪽 깜빡이를 켠 신자유주의자', 고등학교 시절에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이다. 그의 탄핵 시도 즈음에 만들어진 열린우리당에 가입했다가, 나는 당적을 민주노동당으로 전환하였고 내 생각보다는 어느새 그들의 생각에 더 많이 동조하게 되었던 것 같다. [각주:1]

 

이명박 당선 즈음까지 나는 노무현에 대한 날 선 시각을 포기하지 않았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죽고 나서도 별로 바꾼게 없다. 노무현이나 유시민 같은 속칭 '참여계' 인사들은 내게 애플 같은 존재였다. 어떤 실천이나 비전없이 그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들. 이미지로만 정치하는 사람들. 진보를 참칭하는 사람들. 그래서 심상정이 경기도지사 후보를 멋대로 사퇴하고, 한 번 쪼개졌던 진보정당이 또다시 쪼개져 통합진보당이 될 즈음에도 이 때의 시각에서 'YS 못지 않은 야합에 동의하는 나쁜 사람'이라고 심상정을 면전에서 비난한 적도 있었다. [각주:2]

 

 

그가 죽은 이후에

광화문에서 광우병 집회를 하느라 근 40일을 집에 안 들어가 본 적도 있고, 독재자의 딸인 박근혜가 당선됐을때는 혼자 울면서 술도 마셨고, 영화관에서는 레미제라블 영화를 보다가 '두 유 히어 더 피플 싱'을 뻑뻑 울면서 따라 부르기도 했고, 시린 손 호호 불며 그 겨울 매주 주말밤에 나가 탄핵 피켓도 들어봤고, 헌법재판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낭독하는 탄핵 판결문을 회사에서 숨죽여 듣다가 '파면한다'는 부분에서 혼자 소리지르다 팀장님께 한 소리도 들어봤으며, 유세에 온다고 해서 회사 마치고 광화문으로 뛰어가 잘 생긴 문 후보와 눈도 마주쳐 봤으며, 지방선거에서 지역구도가 깨지는 모습도 목격하고, 여자친구에게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여보기도 했고, 민주계 정당이 180석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는 것도 보았다.

 

그렇게 11년이 흘렀더라.

 

 

'노빠'였던 시간보다 '노까'로서, 속칭 '입진보'로서 보낸 세월이 더 길지만 이제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1. 사실 지금도 나는 그가 박근혜 당대표에게 제안한 '대연정' 구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자발적으로 국무총리에게 대통령의 권한을 이양했듯, 그렇게라도 지역주의를 타파하고자 하는 생각이었을텐데... 결국 그것이 YS의 삼당합당이나 DJ의 전노 사면과 같은 결과를 내지는 않았을까? [본문으로]
  2. 근데 이건 지금 생각해도 엄청 잘 한 일이잖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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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는 길

2020. 5. 17. 23:30

파리저 광장에서 바라본 브란덴부르크 문. 여전히 굳건히 서 있다.

 

한 해 전을 생각한다. 새벽 비행기를 타고 인천에서 두바이로, 두바이에서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프랑크푸르트에서 차를 빌려 로만틱가도로, 드레스덴으로, 베를린으로, 그리고 함부르크로 쏘다니다가 다시 함부르크에서 두바이로, 두바이에서 인천으로 왔던 여정. 베를린에서는 조성진의 공연을 봤고, 라이프치히에서는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의 프로그램을 보며,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 되는 2020년에 독일을 재방문하겠다고 말했었다. 제철이라는 슈파겔을 시장에서 사다가 에어비앤비로 빌린 집에서 이래저래 삶아도 먹어보고 볶아도 먹었었다. 함부르크로 가는 길에 있던 슈베린에서는 오래된 슈베린 궁에 들어가 튤립은 어떻게 심는지, 실제 현지인들은 슈파겔을 어떻게 먹는지 보려고 슈파겔 수프도 사서 먹었었다.

 

코로나 19가 지배하는 지금 떠올려 보면 정말 꿈만 같은 길이었다.

 

그렇게 세상이 바뀌는 동안 나도 변화가 많았다. 삐걱대던 여자친구와는 2020년 초에 헤어졌다. 헤어지기가 싫어서 여자친구가 근무하는 지방까지 퇴근 후에 내려가 무릎도 꿇어보고 싹싹도 빌어봤다. 냉담하게 돌아서는 그녀를 보며, 나도 아무렇지도 않을거라는 오기가 들기도 했다. 그리워할 틈도 없이 새롭게 짜인 조직에서 좌충우돌하며 보냈다. 떠나버린 사수가 남긴 빈 자리는 내가 떠나보낸 여자친구의 빈 자리를 느끼기 쉽지 않게 컸다. 해보지도 않았던 일들을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억지로 배워갔고, 졸지에 팀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으로서의 역할도 해야했다. 아무 책임감도 없이 만년 신입사원으로 살 것 같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니 벌써 5년차였다.

 

회사 선배가 소개팅을 시켜줬다. 첫번째 만난 분은 좋은 분이었다. 활동적이었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두 번 만나고 '동네친구가 좋겠다'며 까였다. 두번째 만난 분도 좋은 분이었다. 이미 본인이 걸어본 길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고 이직에 성공한 사람이었다. 첫번째 만난 분과 같은 매력은 없었지만, 내가 기댈 수도 있겠다 싶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분과도 한 번 만나고 까였다. 이후에 소개해 준 선배를 만나서 벼락같이 자학개그를 했던 거 같다. 운전해서 가느라 술도 못 마시는데, '아무렇지도 않다'며 계속 이야기했지만 자학개그가 끊이지 않았던 거 보면 절대 아무렇지도 않았나보다.

 

문득 창 밖을 보다가 숨겨둔 위스키를 꺼내 한 잔 마셨다. 보통 때는, 큰맘 먹고 한 잔 마시려고 따랐다가도 첫 입에서 돌아오는 진한 오크향이 어색해서 코를 잔뜩 찡그리는 술이었는데 오늘은 왠지 달았다. 혼자가 싫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전 여자친구와 두 번의 소개팅 상대의 얼굴을 떠올렸다. 혼자가 싫어도 혼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했다. 혼자 지내는게 그렇게 싫다면 상대의 장점보다는 단점에 집중해야 했고, 내 단점보다는 장점을 살려야 했으며,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보다는 내가 마음에 드는 부분에 대해서 더 마음을 열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 하나도 하지 않았고, 그저 이기적으로만 생각했다.

 

그저 그런 시시껄렁한 자책을 하다 이내 혼자 잘 지내보기로 했다. 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아무와도 잘 지낼 수 없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처럼 사회적인 사람도, 따뜻한 사람도 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내가 달랐기 때문에 어느 한 명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하고 그것을 인정해주길 바랐어야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를 만들기 위해 나는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전 여자친구는 그게 정말 싫었다고 했다. 아마 최근에 만난 두 분도 그것에 대해서 어렴풋이 느꼈을 것이다.

 

올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겠다고 말하기에는 벌써 반이 지나고 있다. 남은 반 년은 잘 지낼 수 있을까. 남은 반 년은 쓸데없는 데에 시간 낭비하지 않으며 오롯이 내 자신을 사랑하며 지낼 수 있을까. 그렇게 사랑하며 주변을 정리하고 그 빈 자리의 여유로 다른 사람을 대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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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받았던 기억

2020. 5. 6. 21:44

최근에 직장 선배로부터 소개팅을 받았다. 예쁘고 귀여운 사람이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았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장점이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그 점이 참 좋았다. 첫만남 이후에 말도 잘 통하는 것 같았고, 상대에서도 그닥 싫어하지는 않는 눈치라 두번째 만남에서 내댑다 세번째 만남을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아니오'였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10개의 일 중 9개의 일이 좋아도 단 하나의 일이, 그것도 내가 정성을 쏟은 일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 기분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삶의 이유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결과론적이겠으나,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었는데 거기에 며칠간의 내 삶을 투영하였던 모양이다. 그런 것이 한 방에 사라져버리니 허무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덜어내는 것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능력에 걸맞지 않게 욕심만 많은 것은 아닐까 곰곰히 생각해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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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 즈음하여

2020. 4. 13. 12:17

열린민주당과 더불어민주당(또는 더불어시민당) 관련한 이야기다. 오전에 출근하면서 뉴스공장을 들었는데, 김진애 박사가 서운한 감정을 공장장에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그럴만 하다 했다. 오랫동안 김어준을 지켜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점이 이번 총선에서 가장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열린민주당에 대하여 언급하는 걸 본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중 더러는 '김어준이 민주당 편만 든다'고 섭섭해하고, 더러는 '김어준이 변절했다'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공통적으로는 자신들이 기대해왔던 '총수' 또는 '공장장'으로서의 모습과 현재 국면에서의 김어준이 내놓는 메세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 지점이다. 사람만 보는 정치. 사람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좋겠지만, 어디 그게 가당키나 하든가. 다들 가슴을 쥐어 뜯으며 '너무 이른 시기에 나온 대통령'이라며 안타까워 하는 이유가 뭐였는지. 아무리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이더라도 주변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 개인이 얼마나 큰 좌절을 겪는지. 이미 겪어봤으니 모를 바는 없지 않나 싶은데 좀 이상한 일이다.

 

한편으로는 열린민주당 몇몇 후보[각주:1]는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이 자신('열린민주당')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이유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해석을 내놓던데, 이건 조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발언이다. 원래 새 세력은 기존 세력을 가리켜 '기득권에 매몰된 세력'이라고 비난한다. 특히나 열린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같이 공동의 타겟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관계에서 선명성을 드러내는 데에는 이만한 워딩이 없다. 그럼에도 이 말이 새롭다며 앞뒤 따지지 않고 달려드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일부러 저러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더 있는 것인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은 인기가 없는 사람이지만) 이해찬 대표가 말하길, "선거 때가 되면 멀쩡한 사람도 맛이 간다"고들 했다. 이해찬 대표는 정치인들을 가리켜 한 말이지만, 나는 유권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방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고 싶은 선의의 욕망에서 나오는 한 때의 해프닝이겠지만, 굳이 내 생각을 남에게 강요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닌가. 특히나 한국과 같이 모든 유권자에게 동등한 기회가 보장된 고도의 민주사회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각자 하고 싶은대로 투표하면 된다. 이 말이 하고 싶었다. 물론 나는 이미 사전투표했지만.

 

+ 정치 관련한 이야기를 했다가 올 초에 엄청나게 큰 변고를 맞았었다. 내가 그렇게 하면 안되는 일이었다. 그 이후로 최대한 주변에 딱히 내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상대방이 내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 요새 우려스러운 일이 있어 못내 말을 꺼낸다.

  1. 주진형, 황희석, 최강욱 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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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체험단이라는걸 처음 신청해본다. 꼭 써봐야 할 이유가 있는 물건이 많지도 않은데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돈 모아서 샀지 굳이 그걸 업체로부터 제공받아 무료로 쓰기 위해 안달을 해야하는게 너무나 귀찮았기 때문이다. (업체의 입맛에 맞는 글을 써야 한다는 점도 싫었고.)

 

그런데 LG에서 홈브루 체험단을 선발한다는 이야기에는 안 흔들릴 수 없었다.

 

그간 내가 맥주를 위해 해왔던 모든 작업들... 그러니까 잘 구워진 맥아를 사다가 물에 넣고 끓여 맥즙을 짜고 그걸 다시 걸러서 홉을 넣고 자글자글 끓이다가 이스트를 넣고 2주를 카보이에서 발효시켰다가 다시 병입하여 2주를 기다리는 그 작업을... 단 한 대의 기계가 해준다니까. 캡슐머신처럼 넣기만 하면 끝이라니까.

 

이건 원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이걸 한 번에 해준다는데.

 

체험단 신청 조건이 체험해보고 싶은 레시피를 블로그에 쓰는거라는데, 맥주라면 당연히 IPA다. 필스너도 좋은데, 날씨가 춥다. 청량한 맥주는 날이 더울때 마셔야 제격이다. 위트는 너무 순하다. 페일에일은 흔하고, 스타우트는 외관과 맛이 매치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결론은 IPA.

 

+ 2020년 4월 13일 추가

결론은 안 뽑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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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홈브루 체험단 가입을 위한 포스팅  (0) 2019.11.05

10년 만에 민주당계 정당으로 당적을 바꿨다. 민주노동당 입당으로 시작해서, 진보신당-사회당-노동당으로 이어지는 이 철새역사가 드디어 민주당계 정당까지 이어진 셈.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당원이 되기로 결심한 까닭은 별 것이 아니라, 참 근거없는 이야기로 자꾸만 공격을 받는 어떤 대선후보를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름 정치판에서, 그것도 까보면 깔수록 아사리판인 진보정당 영역에서의 짬이 좀 되는지라 이미 볼 건 다 봤다는 근거없는 자신감 같은게 있었는데, 요새 상황은 그야말로 미증유의 개판이다. 오로지 한 후보의 낙선을 내건 사람들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게 어디 보기 쉬운 일일지.


각설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온라인 당원가입서 - 더민주에서 온라인 당원가입서를 내놓으면서 '정당 역사 최초 온라인 당원가입'이라고 주장했는데, 사실 공인인증서 기반 입/탈당은 예전 진보신당 시절에도 되던 것이다 - 를 작성했다. 주민등록번호와 범용공인인증서를 통한 본인인증을 마치고, 시도당을 정하기 위한 간단한 정보와 당비납부정보를 입력하니 가입완료 화면과 시도당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는 메세지가 나를 반겼다. 문득 당원가입에 왜 시도당 검토가 필요한지 생각해 봤다. 아마도 여러 사람들이 검증되지 않은 페이퍼를 뭉텅이로 가져와 강제로 가입시키고, 그것을 기반으로 여러 당내 선거 등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과거 '페이퍼 당원'을 뿌리뽑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생각했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문자가 하나 왔다. 내가 당원에 가입되어 있으니 시도당에 문의하라는 내용이었다. 더민주가 창당된 이래,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입당 러시가 벌어지던 때에도 꿈쩍하지 않았는데 이미 가입이 되어 있다니 무척 의아했다. 경기도당에 전화해봤더니 전북도당에 당적이 있다는 것만 확인해 줄 수 있고, 자세한 내용은 전북도당에 물어보라고 했다. 담당자의 목소리는 피곤한데다 짜증으로 얼룩져 있었다. 한국같은 정치에 쓸데없이 엄숙한 풍토에서 당원가입을 한다는 것 자체가 꽤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인데 - 물론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당제 민주국가에서 자기의 정견과 일치하는 정당에 당원으로 가입하는 것은 반드시 장려되어야 하며, 기초교육 과정에서도 소개해야 하는 아주 기초적인 내용이라 생각한다. - 그렇게 마음 먹고 전화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태도로 응대한다는 것이 마케팅 측면에서 딱히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한 소리 할 수도 있었지만, 우선 내용 확인이 급해서 전북도당 전화번호만 안내 받고 전화를 황급히 끊었다.


전북도당에 전화를 해서 주민등록번호를 불러주니, 2004년에 당원으로 가입이 되어 있다고 했다. 최초 가입 당시 당이 어딘지 알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것까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2004년이면 아마도 열린우리당이었을 것이다. 그 해에 노무현 탄핵이 있었고, 공세에 몰린 열린우리당에 힘을 싣기 위해 당원가입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렇게 졸지에 13년차 더민주 당원이 됐다.


여담이지만, 이 전화를 끊고 다시 경기도당에 전화했더니 아까 전화받았던 그 분이 다시 받았다. 당적을 전북도당에서 경기도당으로 옮겼기 때문에, 당비납부약정을 위해서는 경기도당에 문의해야 한다고 전북도당에서 말해줘서 전화했다고 하니 또 막 짜증을 내면서 '아까 온라인 당원가입때 적으신 정보로 하면 되죠?'라고 말한다. 한마디 해야겠다 싶어 '이상한 사람들이 전화를 많이 하나봐요. 아니면 일이 많으시던가요.'라고 물었더니, '온라인 당원가입이 많아서 서둘러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미안하다.'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전북도당 당직자도 되게 짜증을 냈던 것 같다. 뭔가 이런 일 말고 다른 일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전직 진보정당 당원으로서, 그리고 더민주 당원으로서 우리 동네 시도당을 책임지는 당직자의 노동환경을 보호해주길 중앙당에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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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부쓰를 가기 시작한건 2013년부터다. 블로그에 올린 방문기의 일자가 2013년인걸 보니 확실히 그렇다. 당시 더 부쓰는 경리단에서 자라는 크래프트 비어의 새싹이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당시에는 바로 옆의 맥파이의 후발주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니엘 튜더를 언급한 것으로 마케팅 포인트가 잡혔지만, 그때는 그다지 맥파이와는 차별점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더 부쓰를 다시 만난건 2014년 삼성에서 인턴을 하던 때였다. 원래 하나 밖에 없었던 더 부쓰의 펍이 서초의 삼성타운 인근에 열려 있던걸 보고 무척이나 기뻤던 기억이 난다.


취직을 하느라 그렇게 2년이 더 지났고, 어느새 더 부쓰의 펍이 신논현역 인근에도 하나 더 생기더니 판교에는 브루어리까지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르는 새에 공모도 해서 소액주주들도 모았다고 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주주총회 사진이라는게 올라오기 시작했고, 기회가 된다면 나도 투자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 때쯤에 더 부쓰에서 다시 한 번 10억 미만의 규모로 소액투자를 공모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자신이 있는지 투자설명회도 한다고 했다. 내 입장에서는 놓칠 이유가 없었기에 지난 금요일, 잠깐 시간을 내서 다녀왔다.



투자설명회를 다녀온 느낌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글쎄. 별로 특별한 부분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국내에서 크래프트 비어가 주류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술은 아직까지 '여가'의 수단이기 보다는 '망각'의 수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크래프트 비어 같은 고품질의 술이 잘 팔리려면 술이 안 팔려야 한다.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위해서는 알콜의 양은 제한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 술이란, 사교의 수단보다는 사교의 목적이다. 수단이라면 지갑이 열리지만, 술을 마시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적은 돈으로 더 많은 양의 알콜을 소비하는 것이 효용극대화를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자칭 '혀에 민감한 사람들'이 소주를 가리켜 '싸구려 타피오카 주정을 희석해서 감미료 따위를 버무린 식용알콜'이라 비웃지만, 여전히 소주가 대중적인 인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런 합리적 선택의 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투자설명회에서 더 부쓰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무척 강조했지만, 그건 개도국이 산업화를 하는 시점에 보이는 경제성장률과 비슷하다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장이 작으면 마켓리더의 성장은 눈부시다. 시장의 확대가 곧 마켓리더의 성장과 직결되기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크래프트 비어는 일종의 '스노브 효과'를 얻는 아이템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싶은 사람들에 의해 소비되는 아이템이기에, 평범한 재화에 비해 다소 비싼 가격에도 팔리고 있다고 해석하고 싶다. 문제는 이들 소비자는, 가치가 아니라 단순히 차별화를 위해 소비하기 때문에 그 차별성이 소멸되는 시점에는 얼마든지 다른 재화를 소비하기 위해 시장을 떠나는 것을 감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앞으로 더 부쓰가 어떻게 방향을 잡아나가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런 소비자들에게 올인하는 게 위험부담이 크다는 것은 굳이 내가 강조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부분일게다.



그럼에도 나는 공모가 개시되는 월요일 09시에 공모 페이지를 열어 1분 만에 투자의향서를 제출하고 소액의 투자금을 넣었다. 십 여 분만에 공모가 마감되었다고 하니, 1분 안짝에 입금까지 완수한 나는 아마 넉넉하게 더 부쓰의 주주가 되었을 것이다. 위와 같이 회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투자를 결심한 데에는 대동강 페일에일의 물류 과정에 대한 친구의 전언이 결정적이었다. 맥주를 위한 콜드체인이 전무한 상황에서, 물류밥을 먹는 친구가 괴로워 할 정도로 세심하고 빡빡하게 대동강 페일에일을 들여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이 사람들의 맥주를 위한 이런 정성은 충분히 투자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재무담당하시는 부사장님께서 '투자설명회에 오신 분들의 면모를 보니 이젠 더 이상 맥덕들이 아니시다'며 대중화된 자신들의 위치에 대해 꽤 즐거워 하셨던 것 같은데. 글쎄. 같이 양조하는 동료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더 부쓰의 재무적 가치보다는 맥주를 위한 열정을 이해할 수 있는 맥덕들이 더 모여주는게 아직까지는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뭘 복잡하게 썼지만, 그냥 이게 내가 투자를 결심하게 된 이유의 전부다. 나는 내가 가치를 두고 있는 부분을 충족하는 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고, 그들이 내가 좋게 보는 그 부분을 계속 유지하기를 바랐다.



다시 추억이나 팔아보자면, 2013년의 포스트에 뭔가 종업원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에 대해 '파트너 김희윤'이 남긴 덧글이 있다. 그 파트너는 이번 투자설명회에서 더 부쓰의 코파운더co-founder이자, 최고마케팅책임자Chief Marketing Officer로 소개되었다. 4년의 시간 동안 커진 더 부쓰의 몸집을 실감케 하는 부분이다.



+ 쓰다보니 뭔가 엄청 장황한 느낌인데, 알콜성 치매가 아닐까. 아, 내가 술을 끊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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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방황중

2017. 1. 28. 02:19

작년 중순에서 말까지, 엄청나게 방황했던 시절이 있었다. 회사 가기가 끔찍하게 싫었고, 누구도 내 말을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정말 유치하기가 짝이 없다. 고작 내 편이 없는 것 같다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했으니까. 하긴 꼭 그 '편'이라는게 사람이라는 법은 없다. 나는 내 마음을 어딘가에 두고 싶었다. 미치도록 지루하게 떠다녀야 하는 상황이 싫었고, 어딘가에 안정적으로 두 발을 디딘 채 서고 싶었다. 연말에는 그럴 일이 좀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그럴 줄 알았다.


물론 그건 착각이다. 여전히 멍청하게도, 나는 회사가 나에게 무엇을 많이 해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우스꽝스러운 인용이지만, 이 시점에 곱씹어 볼만한 인용이 있다. 바로 케네디의 취임연설 중 '국가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주었는지를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십시오'라는 부분[각주:1]이 그것이다. 회사가 나의 목표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내 목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는게 여러모로 더 합리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정말 게으르게도 늘 환경이 나에게 맞게 변화해주기를 바라왔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어떠한 형태로든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목표를 얻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틀을 깨부수기 위한 노력. 아웃사이더로 포지셔닝을 해 놓고, 인사이더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낭비를 계속해 왔지 않았는가 싶다. 대니 콜린스가 자작곡을 부르고 싶었지만 결국 '헬로 베이비 돌'을 부르는 것처럼, 익숙함 - 그리고 '다른 이로부터의 사랑' - 에서 떠나려는게 두려웠던게 아닐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상욱씨도 이제 뭔가 하고 싶은 걸 찾아야 하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단편적으로, 회사와 나의 목표를 일치시킬 수 있다면 지금 상황에서 가장 익숙하면서도 편한 선택이다. 근데 그러기는 싫다. 그러면 다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 아니면 회사에 끼워맞춰 살 수 있는가? 어떠한 선택도 하지 않고 살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고민하길 미뤄도 언젠가는 다시 이 고민을 하게 될 것이라면, 빨리 결정하는게 낫지 않을까?


  1. 사실 나는 케네디가 '국가'를 운운하는 것에 의문이 있었다. 이 사람이 애국주의자일 수는 있어도, 국가주의자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궁금해만 하다가 연설문 전체를 보니, 이 문구 뒤에는 '인간의 자유를 위해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을 먼저 생각하자'는 내용이 덧붙여 있었다. 그럼 그렇지. 그래야 내 케네디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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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17년입니다. 직전 글을 쓴 게 12월 말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중순이네요.


요즘은 대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업무에 변동이 있어서 정신이 좀 없기도 하고, 그간 신경쓰지 않았던 일에 관심도 가져보려고 하니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일일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하루 종일 뭘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보면 벌써 내일 출근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 됩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잊혀질 것은 잊혀지고 또다시 새로운 어떤 것은 찾아옵니다. 가버린 것에 연연하지 않고, 오는 것에도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L은 이런 저더러 '그렇게 흙바닥에서 구르는 것 같아도 레벨업은 꾸준히 하고 있다는 거지'라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어쩌면 레벨업보다는 포기가 빨라진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어떤 하나의 관념에 매달리지 않으니 적어도 마음은 편합니다.


올해는, 너무 스스로가 가진 개념에 대해서 골몰하지도, 생각하지도, 표현하지도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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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라는 것, 감정을 짜내어 기호로 표현하는 것이어서 그런지 잉여 감정이 없을 때에는 그럴 법한 문장이 나오질 않는다. 어느 때고 보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보일 때에는 기호수용자의 어떠한 선을 침범하여 넘어가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글의 방향은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문장에 힘이 실리고, 문단이 가지런해진다. 말을 좇는 데에 들어가는 주의력은 글을 좇는 데에 들어가는 그것보다 가볍다. 말은 분위기를 타지만, 글은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글의 수용력은 그것을 만지는 사람의 능력에 철저하게 좌우된다. 기호수용자들에게, 글을 쓰는 사람의 능력은 다이달로스의 미궁과 그 안을 헤메는, 테세우스의 옷자락 끝에 붙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와 같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구분되지 않는 공간을 결정짓고, 가지 않아야 할 길을 가로막으며, 나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그런 것. 글을 쓰는 사람은 그래서 친절해야 하고, 신중해야 하며, 섬세해야 한다.



기호수용자들이 기호를 수용하는 양태는 저마다 제각각이지만, 이른바 술술 읽히는 기호들은 대부분 위안을 얻기 위한 효용을 갖는다. 이를테면, '이 세상에 혼자인 것은 나뿐만이 아니구나'라던가 아니면 '아니 또 이 세상에 이런 막장 인생을 사는 인격체가 (나 말고) 또 있다니'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던가 뭐 그럴 때 말이다. 사실 실념이 환희로 가득찬 사람들은 굳이 나열된 기호에 감정을 싣고 이입할 필요가 없다. 내 인생은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데,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안정적으로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있는데 굳이 남의 기호를 수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장을 쓰지 못한다'는 말은 사실 거짓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문장이 생각을 나누는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한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생각을 나누는 데는 비단 문장만이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문장력이 떨어져서 글을 못 쓴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다른 교감수단에서는 능통할 수 있다. 역으로 문장을 잘 쓰는 사람들이 다른 교감수단을 사용하는 데에 능통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최소한 요즘과 같이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아니하면 바라볼 잠깐의 여유조차 허가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문장'만' 잘 쓰는 사람들이 가장 벽창호같은 자들이다. 해일같이 몰려드는 다양한 표현 속에서 수용을 위해 가장 많은 정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 '문장'이고, 문장만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요새 통 글이 잘 안 나오는 너를 보니, 그래서 더욱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최소한 글에만 집중해야 하는 그런 외로운 시대는 지나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라고 내년 이맘때에는 내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건데... 나는 요새 글이 잘 써진다. 근데 아마 앞으로도 잘 써질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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