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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진보신당인가? - (1)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을 버린 이유 짧은 일생 동안 나는 당적을 두 번이나 바꾼 사람이다. 열린우리당에서 민주노동당, 그리고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으로. 열린우리당에서 민주노동당으로 당적을 바꾼 이유는, 열린우리당이 내가 생각한 것만큼 진보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왜 진보신당이 현재의 한국 상황에 가장 적합한 대안정당인지를 밝히는 내용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 전에 왜 내가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을 버렸는지에 대해서 부족하나마 썰을 풀어본다. 열린우리당의 창당 당시, 나는 그 당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거리에서 민주화와 사회주의적 변화를 부르짖었던 사람들이 구성원의 절대 다수였으며, 지역정당이 아니라 전국정당을 목표로 하였고, 무엇보다도 나름대로 '개혁성 짙은' 노무현이 속한 '여당'이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당..
며칠 째냐... 연 나흘째 현장에 나와 노트북을 붙잡고 있다. 당명을 내걸고 하는 일이라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실수 연발이다. 오늘 저녁에는 집에 들어간다.
6월 5일 12시, 시청 앞에 마련된 농성 부스 현장 지난 6월 5일, 대책위 쪽에서는 72시간 철야농성을 선언했습니다. 이에 호응하여 많은 시민단체들이 시청 바로 앞에 부스를 차려놓고 철야농성 중입니다. 저희 칼라뉴스와 칼라TV 역시 85시간 집중 취재를 선언한 상태입니다. 인권단체의 부스에서는 민변회장을 초청하여, 헌법강의를 여는 한 편 집시법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받고 있습니다. 민가협 어머님, 아버님 이십니다. 젊은 이들도 추운 이 시간에 나오셔서 기꺼이 농성대열에 함께하고 계십니다. '미남, 미녀'라 말씀드리니, 환하게 웃으십니다. 이 분들이야말로, 대한민국 민주화의 산 역사라 할 만 합니다.
휴우... 너무 방자했나 1일 저녁에 있었던 일을 가지고, 어떤 시민분이 글을 올려주셨다. 나를 포함한 당원들의 언행이 공무원의 그것과 동일했다나. 애초에 대중정당이라는 것의 속성을 모르고 참여했던게 후회스럽다. 워낙 사람들을 잘 대하지 못하는지라, 되도록이면 대민업무는 피해야 하는 거였는데... (후회스럽다는건, 지적한 사람이 이상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부족한 내가 나간게 잘못이었다는 의미다.) 인간에 대해 애정을 쉽게 갖지 못하는 것도 분명히 장애라면 장애다.
어떤 나라의 사람들 홍세화 선생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 중에서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거칠지만, '업계용어'를 빌어다 써본다면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제대로 된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다시 일상용어로 순화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처한 상황을 100%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욕망하는 대상에 스스로를 동일시화 한다는 거다. 이를테면, '국개론'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예로 들 수 있다. 달동네 쪽방에 살면서 강남권의 집값 안정을 위한 종부세 제정에 혀를 끌끌찬다던가, 자신은 소득세를 내지 않는 준위의 소득자면서 소득세 인상안에 '세금폭탄'이라며 노무현 정부를 가리켜 빨갱이를 운운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결론적으로 홍세화 선생이 그토록 우려하던 '존재를 배반한 의식'들은 기어이 사고를..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의 결단 연세대학교 총학생회가 두 가지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1. 총여학생회의 폐지 2. 한총련 가입제한의 명문화 조금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이 둘 모두 총학생회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사안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먼저 총여학생회의 폐지의 경우 전체 학생에게 걷은 총학생회비가 여학생들만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부당하며,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본인 견제권이 총여학생회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연대 총학생회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그러한 근거가 폐지를 주장하기에는 어째 좀 부실해 보인다. 먼저 견제는 견제일 뿐이다. 로크가 정의하고, 몽테스키외가 발전시킨 분립론은 기본적으로 균형을 목표로 한다. 즉, 권력을 두 개 내지는 세 개로 나누고 상호간에 견제하도록 함으로써 권력 간의 균형을 도모해 어느 한 쪽의 ..
된장녀는 정말 괴물일까? 22일치 왜냐면에 실린 ‘괴물과 된장녀, 그 공통점 뒤에는’이란 글을 보고 참 반가웠다. 열풍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된장녀 조롱하기’에 대한 거의 최초의 비판적 접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된장녀와 영화 을 비교하여 서술한 것은 정말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포름알데히드와 신용카드, 사회적 약자와 복학생, 뉴스와 자본주의라는 두 주제에서 소외나 일상성, 구매력이라는 알짜말(키워드)을 끄집어낸 것도 좋았다. 그러나 글을 두세 번 읽어보면서 그 둘의 묶임이 조금 불안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 글의 모티프인 ‘괴물’에 대한 필자의 ‘독자적 상징화’로 일반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포름알데히드와 신용카드를 비교서술한 부분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