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부쓰

더 부쓰를 가기 시작한건 2013년부터다. 블로그에 올린 방문기의 일자가 2013년인걸 보니 확실히 그렇다. 당시 더 부쓰는 경리단에서 자라는 크래프트 비어의 새싹이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당시에는 바로 옆의 맥파이의 후발주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니엘 튜더를 언급한 것으로 마케팅 포인트가 잡혔지만, 그때는 그다지 맥파이와는 차별점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더 부쓰를 다시 만난건 2014년 삼성에서 인턴을 하던 때였다. 원래 하나 밖에 없었던 더 부쓰의 펍이 서초의 삼성타운 인근에 열려 있던걸 보고 무척이나 기뻤던 기억이 난다.


취직을 하느라 그렇게 2년이 더 지났고, 어느새 더 부쓰의 펍이 신논현역 인근에도 하나 더 생기더니 판교에는 브루어리까지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르는 새에 공모도 해서 소액주주들도 모았다고 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주주총회 사진이라는게 올라오기 시작했고, 기회가 된다면 나도 투자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 때쯤에 더 부쓰에서 다시 한 번 10억 미만의 규모로 소액투자를 공모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자신이 있는지 투자설명회도 한다고 했다. 내 입장에서는 놓칠 이유가 없었기에 지난 금요일, 잠깐 시간을 내서 다녀왔다.



투자설명회를 다녀온 느낌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글쎄. 별로 특별한 부분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국내에서 크래프트 비어가 주류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술은 아직까지 '여가'의 수단이기 보다는 '망각'의 수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크래프트 비어 같은 고품질의 술이 잘 팔리려면 술이 안 팔려야 한다.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위해서는 알콜의 양은 제한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 술이란, 사교의 수단보다는 사교의 목적이다. 수단이라면 지갑이 열리지만, 술을 마시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적은 돈으로 더 많은 양의 알콜을 소비하는 것이 효용극대화를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자칭 '혀에 민감한 사람들'이 소주를 가리켜 '싸구려 타피오카 주정을 희석해서 감미료 따위를 버무린 식용알콜'이라 비웃지만, 여전히 소주가 대중적인 인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런 합리적 선택의 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투자설명회에서 더 부쓰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무척 강조했지만, 그건 개도국이 산업화를 하는 시점에 보이는 경제성장률과 비슷하다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장이 작으면 마켓리더의 성장은 눈부시다. 시장의 확대가 곧 마켓리더의 성장과 직결되기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크래프트 비어는 일종의 '스노브 효과'를 얻는 아이템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싶은 사람들에 의해 소비되는 아이템이기에, 평범한 재화에 비해 다소 비싼 가격에도 팔리고 있다고 해석하고 싶다. 문제는 이들 소비자는, 가치가 아니라 단순히 차별화를 위해 소비하기 때문에 그 차별성이 소멸되는 시점에는 얼마든지 다른 재화를 소비하기 위해 시장을 떠나는 것을 감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앞으로 더 부쓰가 어떻게 방향을 잡아나가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런 소비자들에게 올인하는 게 위험부담이 크다는 것은 굳이 내가 강조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부분일게다.



그럼에도 나는 공모가 개시되는 월요일 09시에 공모 페이지를 열어 1분 만에 투자의향서를 제출하고 소액의 투자금을 넣었다. 십 여 분만에 공모가 마감되었다고 하니, 1분 안짝에 입금까지 완수한 나는 아마 넉넉하게 더 부쓰의 주주가 되었을 것이다. 위와 같이 회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투자를 결심한 데에는 대동강 페일에일의 물류 과정에 대한 친구의 전언이 결정적이었다. 맥주를 위한 콜드체인이 전무한 상황에서, 물류밥을 먹는 친구가 괴로워 할 정도로 세심하고 빡빡하게 대동강 페일에일을 들여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이 사람들의 맥주를 위한 이런 정성은 충분히 투자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재무담당하시는 부사장님께서 '투자설명회에 오신 분들의 면모를 보니 이젠 더 이상 맥덕들이 아니시다'며 대중화된 자신들의 위치에 대해 꽤 즐거워 하셨던 것 같은데. 글쎄. 같이 양조하는 동료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더 부쓰의 재무적 가치보다는 맥주를 위한 열정을 이해할 수 있는 맥덕들이 더 모여주는게 아직까지는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뭘 복잡하게 썼지만, 그냥 이게 내가 투자를 결심하게 된 이유의 전부다. 나는 내가 가치를 두고 있는 부분을 충족하는 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고, 그들이 내가 좋게 보는 그 부분을 계속 유지하기를 바랐다.



다시 추억이나 팔아보자면, 2013년의 포스트에 뭔가 종업원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에 대해 '파트너 김희윤'이 남긴 덧글이 있다. 그 파트너는 이번 투자설명회에서 더 부쓰의 코파운더co-founder이자, 최고마케팅책임자Chief Marketing Officer로 소개되었다. 4년의 시간 동안 커진 더 부쓰의 몸집을 실감케 하는 부분이다.



+ 쓰다보니 뭔가 엄청 장황한 느낌인데, 알콜성 치매가 아닐까. 아, 내가 술을 끊어야 하나...


'일상記 > 2017'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불어민주당 온라인 당원가입기  (0) 2017.04.06
'Equity for The Booth' 참가기  (0) 2017.02.08
여전히 방황중  (0) 2017.01.28
흐르는 시간, 달라지길 바라며  (0) 2017.01.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