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


- 8월 17일, 퐁피두 미술관


  파리의 2대 미술관을 뽑으라면, 누구든 루브르와 오르세를 꼽는다. 그런데 세번째 미술관을 뽑으라면 선택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파리에 미술관이 많기도 하거니와 그만큼 사람들이 그 외의 미술관엔 무지하기 때문이다. 만일 나더러 하나 꼽아보라면, 나는 퐁피두 미술관을 선택할 생각이다. 미술관의 크기나 컬렉션의 수가 앞서의 두 미술관에 비견될 만한 지는 잘 모르지만, 최소한 미술사의 흐름으로 봤을때 그렇다. 근대 이전의 고전 미술 컬렉션을 자랑하는 게 루브르라면, 오르세는 인상파 위주의 근대 미술 컬렉션을 자랑한다. 당연히 퐁피두 센터는 그 외관만큼이나 모던한 현대 미술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먼저 외관에 대해 썰을 풀어보자. 퐁피두 미술관에 붙은 퐁피두는 전후 프랑스 공화국 제2대 대통령의 이름이다.[각주:1] 샤를 드 골 정부 당시 총리를 지냈으며, 68혁명 후 새로 임명한 총리의 진보적 색채를 거부한 전형적인 보수 정치인이었지만, 문화 정책에 있어서만큼은 꽤 진보적이었다고 알려진다. 파리에 영상, 도서, 음악 회화, 조각 등 모든 분야의 현대 예술품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복합 문화공간을 건설하고 싶었던 조르주 퐁피두는 건축가인 렌조 피아노와 리차드 로저스에게 이 공간의 건설을 맡긴다. 이에 이 두 세계적인 건축가는 건물의 안과 밖을 뒤집어 놓은 듯한 형태의 파격적인 결과를 내놓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조르주 퐁피두 센터다.

  퐁피두 미술관의 컬렉션은 영국의 테이트 모던이나 뮌헨의 Pinakotek der Moderne 만큼의 방대한 크기의 컬렉션은 아니지만, 입과 귀를 즐거워 하는데에는 무리가 없다. 특이할 만한 점은 앞서의 두 현대미술관에 비해 Joseph Beuys의 작품이 좀 많은 편이라는 거다.[각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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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퐁피두 센터의 밖에는 장 피에르 레이노의 금색 빅 팟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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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길을 끄는 것은 콜더의 모빌들과 미로의 그림을 함께 전시해놓은 것이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콜더는 모빌의 창시자이며 미로는 그의 그림에 많은 모빌을 등장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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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르주 퐁피두란 사람과 그의 업적 중 하나를 보면서 또 MB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리 체류 동안 몇 천개의 국정과제를 선별해서 국민에게 보여주겠다는 청와대의 발표를 봤다. 아마도 그 국정과제의 상당수는 경제만능주의의 소산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문제는 집권 8개월째(인수위 시절도 포함)로 접어드는 그의 정치 스타일을 보았을 때, 그러한 경제정책의 대부분이 6, 70년대에나 써먹히던 '수출증대, 내수진작'에 머물 것이란 점이다. 물론 여전히 수출증대, 내수진작과 같은 수요 증대법은 확실한 경제부흥책임에 틀림없다. 많은 국가들이 수출 상품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무역을 통해 먹고 살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같은 외부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게는 수출의 증가가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국내의 수출품들은 수십년째 다변화하고 있지 못하다. 가장 최근의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수출품이라는 게 TV와 휴대폰이다. 그 이전엔 반도체였다. 거의 동일한 때에 발명된 것들이 거의 20년째 주력 수출품의 노릇을 하고 있다. 환장할 노릇이다. 그 외의 선박 건조, 철강과 같은 것들도 8, 90년대에 이미 주력 수출품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한 것들이다. 여전히 필요한 것들이고 그 자체도 아주 발전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어서 기술력이 중요시되는 재화들이지만, 어쨌거나 그 수출품들이 근대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지금 유효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냐의 문제다. 이미 철강과 선박의 경우에는 중국에게 쫓기고 있는 형편이고, 곧 반도체나 휴대폰, TV와 같은 것들도 중국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 것이다. 이럴 때에 우리는 뭘 팔아먹고 살 수 있을까. 유전공학? 우주기술? 그런 것들은 막강한 자본력이 있어야 할 뿐더러, 기본적으로 축적된 기술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자본력이나 기술력 모두, 아직은 미약한 상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문화 컨텐츠는 정부의 지독한 무관심에 비해 그 양이 꽤 풍부한 편이다. 자국어로 영화를 만들고,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별로 없다. 한국의 디자인 수준? 시도를 두려워 하는 기업들 탓에 그렇지, 우리나라 디자이너들도 외국 디자이너들 못지 않은 창의력 넘치는 제품을 지금 이 순간도 창작해내고 있다. 게다가 문화는 앞서의 두 미래지향적 산업에 비해 돈도 많이 들지 않는다. 보존, 보수에 대한 압박이 있긴 하지만 그 자체가 워낙 유니크한 것이기에 독점권도 갖는다. 게다가 반도체나 휴대폰과 같은 제조물과 달리 수만가지 가지치기가 가능하다. 앞서 리뷰했던 보르도의 와인투어가 그 예다. 대체 이런 황금알을 낳는 오리를 두고,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미국의 루즈벨트가 1920년대에 하던 '테네시강 유역 개발 사업(TVA)'[각주:3]의 한국판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 8월 18일, 오랑제리 미술관 그리고 '안녕 파리, 안녕 유럽'


  귀국일 오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어영부영 샤를 드 골로 가겠다 싶어 대강 짐을 싸두고 나왔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오랑제리 미술관에 가면 모네의 수련으로 둘러 싸인 방에 갈 수 있다'는 동행의 말을 듣고, 그 곳으로 직행. 한국 사람들은 잘 안 가는 모양인지, 국내에서 잘 나간다는 그 '큰 지도'에는 설명이 없고 일본인들이 번역해놓은 가이드북에는 있어서 그걸 보고 찾아갔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던게, 오랑제리 미술관은 콩코르드 광장과 튈르리 정원이 마주하는 그 곳에 있어 눈에 잘 띈다는거...

  오르세나 루브르보다 심한 검색을 마치고 들어간 미술관에는 상설 전시실이 딱 두 곳이다. 그것도 두 곳 모두 '모네의 수련 연작 둥굴게 전시하기'라는 같은 포맷을 가지고 있다. 딸랑 그렇게 해두고 몇 유로나 받는게[각주:4] 좀 너무한다 싶었지만, 그런 불만은 전시실로 들어가는 순간 싹 사라졌다.

  보이시는가, 이 안락함이. 빛의 화가들이라 불리는 인상파, 그 중에서도 거두인 모네의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오랑제리 미술관의 전시실에는 인공조명이 없는 대신 자연광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 위 쪽으로 큰 창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들어오는 햇빛을 창을 가린 하얀 천이 전시실 전체로 반사시킨다. 바티칸에 갔을 때도 들은 거지만, 조각이 아름답게 보이는 요인 중에는 그것의 소재나 그것을 조각한 작가의 천재성도 중요하지만 위치의 중요성도 꽤 된다고 한다. 어떤 위치에서 어떤 빛을 받을 때 조각이 특별히 더 예뻐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랑 루브르' 당시에 루브르를 리모델링 했던 건축가도 모나리자가 전시된 방의 다른 작품들을 돋보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조명을 이용하는 방법을 고안했다고 전해진다. 즉, 자칫 모나리자로 쏠릴 수 있는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자연광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빛이 벽을 따라 흐르게 함으로서 전시실에 들어오자 마자 다른 작품들이 영롱한 빛에 둘러 쌓여 있다는 착각이 들도록 했다는 건데 정말 세심한 건축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도 한 번쯤 벤치마킹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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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랑제리 미술관을 나와 동생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 샹젤리제 거리를 걸었다. 물론 '오! 샹젤리제'를 흥얼거리면서. 처음 갔을 때는 개선문에 가까이 가보자 않았는데, 가보니 꽤 웅장하다. 벽면에 의용군과 그들이 부른 노래, '라 마르세예즈'가 조각되어있다고 한다. 참고로 라 마르세예즈는 현재 프랑스의 국가다. (내용이 살벌하다는;;;)

  오늘 산 것들은 프랑스에 나간 된장남, 녀라면 피하지 않는다는 '아가타' 제품들과 '세포라'의 저렴한 매니큐어, '포숑'의 차와 잼, 쿠키, 그리고 세계 최고의 맛이라는 '라 뒤레'의 마카롱. 집에와서 쓰는 여행기이니 달지만, 그걸 받은 동생과 가족이 꽤 좋아라 했고, 뜯어서 먹어본 마카롱과 쿠키는 정말 끝내주게 맛있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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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샹제리제 거리와 개선문, 에펠탑, 루브르와 오르세를 뒤로 하고 21시 20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서 지체한 탓에 '파이널 콜링' 때까지 비행기를 못 탈 뻔 했지만 - 잘못하면 'Mr. 한, 어서 빨리 비행기 탑승하세요'하는 소리 들을 뻔 했다 - 그럭저럭 잡아 타고는, 19일 14시 20분에 한국에 도착했다. 42일간의 여행. 아마도 이 여행은 내 인생을 결정지은 중요한 순간으로 결정될 것이다.

  그나저나 총정리 겸 후기를 남겨야 하는데, 언제나 올릴 지... 새 키보드 사고 올릴까나~
  1. http://ko.wikipedia.org/wiki/%EC%A1%B0%EB%A5%B4%EC%A5%AC_%ED%90%81%ED%94%BC%EB%91%90 참고 [본문으로]
  2. 테이트 모던에는 요셉 보이스의 펠트 양복이 걸려있고, Pinakotek der Moderne에는 요셉 보이스의 작품 몇 점과 요셉 보이스를 담은 앤디 워홀의 작품 두세점이 걸려있다. 사족을 붙이자면, 나는 앤디 워홀을 사랑한다. 그의 작품이 가진 아우라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감각과 그의 작품이 가진 색감들 때문이다. [본문으로]
  3. 루즈벨트가 1923년의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펼친 이른바 '뉴딜정책'은 테네시강 유역 개발 사업(TVA)과 농지 조정법(AAA), 전국 산업부흥법(NIRA)이 그 골격을 이루고 있다. TVA는 말 그대로 테네시강의 유역을 개발하는 일종의 공공사업을 통해 실업 해결과 내수 진작을 노린 정책이며, 농지 조정법은 농산물 생산의 통제를 통해 농산품의 가격을 조정하기 위해 제정되었고, NIRA는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한 편 기업의 카르텔을 묵인하여 말 그대로 산업의 부흥을 꾀하는 법률이다. 자세한 것은 네이버 백과사전 참고. 위키에는 한글로 된 설명이 없다. [본문으로]
  4. 미안하다, 난 사실 뮤지엄 패스로 들어가서 가격은 모른다. 그런데 확실한 건... 입장권이 예쁘다. 그거 받기 위해 일부러 돈 내고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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