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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다운 밤이겠네요 - 5+4 연대의 불참에 부쳐

클라시커 2010. 3. 16. 20:48

  온통 진보신당 소리입니다. 어제 저녁 뉴스부터 시작해 오늘 오전 뉴스, 조간 신문, 정오 뉴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뉴스에서 진보신당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과 분당했을 때도, 총선에서 그닥 좋지 않은 성적을 냈을 때도, 촛불 정국에서도, 하다못해 작년 4월 재보선에서 원내정당에 진입했을 때도 이렇게 각지에서 호명받지 못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물론 그들이 좋은 뜻에서 부르는건 아닙니다. 분열의 주범이라며 힐난하는 목소리가 절대적입니다. 언론들은 수도권에서 한 자리 주지않는다고 진보신당이 투정을 부린다고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저는 진보신당의 당원으로서 협상에 관해 일언반구도 듣지 못했습니다. 협상전략이 노출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에서 말하는 '투정설'이 과연 근거가 있는 소리인지 없는 소리인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 그러니까 민주당이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를 독식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 왜 진보신당이 5+4 연대의 과감한 탈퇴를 선언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니 말해야겠습니다. 마치 후보 분배의 문제가 이번 연대의 모든 목적인양 여겨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연대 협상이 단순히 후보선출방식에 대해서만 다뤘던 것은 아닙니다. 중간합의문이 나온 3월 4일 이후에 야 5당은 정책연합을 위한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4일 중간합의문 중 '각 당이 합의하는 공동정책을 기반으로 한 가치 중심 연합을 이루도록 한다.'는 연합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었습니다. 3월 8일 회의에서는 각 당이 제시한 공약 중 겹치는 부분만을 확인하고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후속 회의를 11일에 하기로 했습니다.


  11일의 회의에서는 이른바 '추가 합의 사항'이 집중적으로 논의되었습니다. 이 날 회의에서 야 5당이 추가 합의가 필요하다고 확인한 정책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 복지: '사회복지세'의 도입
- 교육: 대학 서열 체제 혁파 방안(입시를 자격고사로 전환, 국공립대 통합 전형, 국공립대 공동학위)
- 환경: 환경세 도입, 핵발전소 단계적 폐지
- 취약노동계층(비정규직 등) 대책: 기간제 사용사유제한, 원청 사용자성 인정 법제화, 최저임금제 개선
- 통상: 한미 FTA
- 노동: 교사 및 공무원 노동3권 완전 보장, 산별 교섭 제도화
- 정치: 선거개혁(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 지방 공동정부 운영 방안

  이들 중 환경세 도입과 지방 공동정부 운영 방안을 제외하고는 진보신당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비단 우리당(진보신당)이 주장해서가 아니라, 이들 정책들이 만약 야 5당 연합을 통해 실현될 길이 열렸다면 그 이득을 가장 크게 누릴 수 있는 집단은 그 누구도 아닌 시민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정책에 대해 민주당은 매우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정책연합은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무엇을 주장해야 표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논리였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최근 민주당이 발표한 '뉴 민주당 플랜' 중 취약노동계층을 아우르겠다며 발표한 '기간제 사용의 사유제한 도입'[각주:1] 역시 아직 당론으로 채택된 것이 아니라 말했습니다.


  특히 정당명부비례대표제에 관해 진보신당은 전면적인 도입을 주장했습니다. (국참당은 의원 정수의 50%를 정당명부비례대표제로 채우자는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보편적 복지 개념을 도입하는 것과 함께 정치/선거개혁이 동반되어야 진정 시민의 삶을 더 낫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역시 이에 대해서도 후보단일화를 논의하는 정치협상자리에서나 논의될 수 있는 것이라며 매우 소극적으로 대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민주당은 표면적으로는 시민들의 삶을 더 낫게 하겠다며 선거연합을, 그 방법론으로 정책연합을 강조했지만 이 모든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A당의 후보에서 B당의 후보로 자치단체장, 자치의회의원들이 바뀐다고 해서 시민들의 삶이 질적으로 향상되지 않습니다.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은 A당이냐, B당이냐가 아니라 그들이 내놓는 정책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반MB'만을 기치로 든 연대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이것은 최근 광주광역시의회에서 민주당 광역의원들이 벌인 게리멘더링이 실증합니다. 자신들의 당선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의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바꾸는 전횡을 저질렀지만, 아무도 이것이 갖는 의미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자잘한 실수들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몰아내는게 더 급하다는 이유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글을 쓰려고 자료를 모으다 보니 진보신당을 제외한 야 4당이 합의를 도출했다고 합니다. 축하합니다. 진보신당이 돌아갈지 그냥 제 자리에 남아 마이웨이를 외칠지 모르지만, 만약 합의체가 지속된다면 단순히 누가 후보가 될 것이냐를 두고 싸울게 아니라 어떤 정책이 시민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가져다 줄지를 두고 싸우길 바랍니다. 그리고 야당연대를 지켜보는 여러분도 후보 선출에만 매몰되지 마시고 그들이 내세우는 정책이 어떤지를 함께 평가해주시기 바랍니다.



  1. 기간제한이 없는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하되, 특정 사유에 한해 기간제 노동자(알바, 계약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를 총칭)를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