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記/2015, 미국 동부

3월 8일, 보스턴 (MA) 1일차 - 프리덤 트레일, 그리고 로브스터

클라시커 2015. 7. 24. 23:09

새벽 6시에 일어나 1등으로 아침식사를 마쳤습니다. 시차적응이 덜 되어서이기도 했겠지만, 저를 제외한 룸메이트 5명이 새벽에 들어와 부스럭 거리는 통에 잠을 설친 탓도 큽니다. 둘째날 아침에 잠깐 이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알고보니 보스턴에서 열리는 코믹콘 비슷한 행사에 참가하러 온 일행이었습니다. 나름 한국 내에서 공인받는 준 덕후로서 덕에 대한 담화를 나누어보고자 하였으나, '덕중지덕은 양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더랬습니다.


각설하고, 그렇게 일찍 아침식사를 마치고 유스호스텔을 일찍 빠져나왔습니다. 회색빛 하늘 아래에 폭설로 쌓인 눈들이 까맣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제가 보스턴에 갔던 시기는 기록적인 폭설이 있었던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MIT 친구들이 눈산을 만들어 등반에 성공하고 찍은 자축사진이 나돌던 때입니다.





분명히 보스턴 코먼을 생각하고 걷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바다가 눈에 들어옵니다. 가이드북을 대강 보니 보스턴 커먼은 바다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 싶어 구글 지도를 켜 봅니다. 그제서야 처음에 방향을 잘못 잡은 탓에 아예 반대 방향으로 와 버렸다는 것을 알고는 황급히 방향을 틀었습니다. 한참을 종종걸음 치다보니 웃음이 납니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지만 몸에 밴 급한 성격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걷는 속도를 좀 줄이다보니 미국의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보스턴의 모습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옵니다.





'보스턴 코먼', 우리로 치면 시청광장 쯤 되는 곳입니다. 주청사 앞에 마련된 이 정방형의 공간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며, 또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실외 스케이트링크를 가진 곳이기도 합니다. 원래는 방목을 위한 목초지였던 이곳은, 이후 해적이나 죄수들을 공개처형하는 곳으로 활용되다가 1775년의 그 유명한 렉싱턴 전투 기간 동안에는 영국군의 진지가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에 들어 마틴 루터 킹,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공개연설을 한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코먼이 처음 등장한 1600년대 중반 이래, 근 400여 년간 보스턴 역사의 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와 함께 눈여겨 볼 것은, 보스턴 코먼의 양 끝에 있는 지하철 역입니다. 보스턴이 미국에서 가장 먼저 도시철도를 운행한 도시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 파크 스트리트 역과 보일스턴 역의 구간은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운행된 구간이라고 합니다.





코먼을 걷다보면 바닥에 표시된 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제가 가장 먼저 경험할 '프리덤 트레일'의 표식입니다. 우리나라의 제주 올레길처럼, 보스턴 지역사회 역시 미국의 고도이자 혁명의 정신적 수도라는 자긍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프리덤 트레일'이라는 어트랙션을 운영 중에 있습니다. 말 그대로, 독립혁명과 연관이 있는 도시 내 사적지들을 숙련된 가이드와 함께 돌아볼 수 있는 길입니다.





프리덤 트레일은 보스턴 코먼에서 시작하여, 주 청사, 파크 스트릿 처치, 올드 코너 북스토어, 벤자민 프랭클린이 유년시절에 다녔던 학교, 올드 사우스 미팅 하우스, 구 주청사를 지나 패뉼 홀에서 마무리 됩니다. 시간상으로는 대략 2시간 정도이며, 아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당시 복장을 한 가이드 1인과 함께 하는 여정입니다. 가이드는 굉장히 유쾌하며, 보스턴의 문화유적지를 소개한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간간히 거센 눈보라가 치는 날씨였고, 이에 많은 관광객들이 장갑과 모자로 완전무장을 해야 겨우 따라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만, 손이 시려운 상황에서도 손가락 끝이 없는 장갑을 고수하는 저 늠름하고 잘 생긴 청년을 보십시오.





누군가에게 보스톤은 단순히 클램차우더 수프나 로브스터로 유명한 도시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MIT와 하버드로 대표되는 유명한 교육도시일 것입니다. 그러나 메이플라워 호가 북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이후의 역사, 그리고 한 술 더 떠 미국의 역사를 논하는 데에 있어 보스톤은 빼놓을 수 없는 도시입니다. 미국인들이 그들의 정신으로 삼고 있는 혁명의 발원이 된 도시인 만큼, 한 번쯤은 그 여정을 쫓는 이 트레일을 따라 걸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2015년 7월 기준 스케쥴을 보니, 오전 5회/오후 8회나 퍼블릭 투어가 진행되는군요. 동계에는 아무래도 비수기이다 보니 이보다 횟수가 적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http://www.thefreedomtrail.org 를 참고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딱히 아는 곳이 없어 그냥 도심을 서성입니다. 그러다 배고파서 다시 패뉼 홀로 돌아가 인근의 유명한 오이스터 바에 들어가 이른 저녁을 먹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로브스터인지라, 망설이다가 과감히 70불을 던집니다. 조리방식은 전통적인 방법인 '찜'이었고, 살짝 발라 먹을 버터와 보스턴 맥주계의 양대 산맥 중 한 곳인 새뮤얼 애덤스의 IPA, 사이드 메뉴로는 감자튀김을 시켜봅니다.


사실 맛은 그냥 그랬어요. 이 여행기가 좀 시일이 지나서 적는 탓에 다소 그 감흥이 줄어들어서기도 하겠지만, 기억을 더듬어봐도 특별한 감흥은 없습니다. 많이 쫄깃한 크래미를 먹는 기분이랄까. 갑각류 자체가 가진 감칠맛이랄까 그런 것은 오히려 킹크랩이 더 낫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이 로브스터 찜 외에 로브스터 롤과 같은 다른 방식의 조리법도 많으니 그걸 시도해보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전날의 '후회'가 다소 사그라드는 하루였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시 보스턴의 밤거리를 걸으며, 무슨 상황에서든 당황하기보다 일단 차분히 대응을 고려해보자는 다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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