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記/2022

중문과의 비인기화 소식을 접하며

클라시커 2022. 3. 13. 23:46

며칠 전에 대학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모교의 학과가 학생을 모집하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없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함께했던 다른 친구는 충격적이라는 표현과 함께 매우 씁쓸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는데, 그 자리에서 언뜻 이야기했던 이유로는 중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는 이유가 꼽혔습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제가 입학하던 때에는 중국이란 나라가 금방이라도 미국을 압도하는 수퍼파워가 되고, 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은 마치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거나 혹은 교양인의 언어가 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반면 그 친구와 달리, 저는 중국이라는 대외적인 이유에서만 학과의 부침을 설명하는 것은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외력이 아니더라도 이미 안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과 같이 아무런 내실이 없는 학과라는 생각을 학부시절 내내 했었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의 사례에서 저는 그 생각을 했는데, 하나는 능력있는 교수님을 단지 자교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배척하다가 그를 놓쳤던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자교 출신의 능력있는 선생님을 단지 자신들이 생각할 때에 정파인 고전문학에 관심있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척한 사건입니다. 심지어 그 배척하는 무리 중 한 명은 아버지가 전직 교수여서 그 배경으로 교수하고 있는 주제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협잡질을 하고 있었으니, 상아탑이라 해야 할 학교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고 할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수요가 적어지는 학과가 택할 수 있는 두 가지 정도가 있는 듯 합니다. 하나는 학과를 아예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중어중문학과를 사회과학대로 편입시키고, 중국학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실제 지방의 많은 사립대에서 행하고 있는 행위입니다. 시장에서는 중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 중문학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가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검토해 볼 수 있을만한 사안이었습니다. (할 수 있다는 것이, 꼭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둘째는 아예 철저하게 연구 중심의 학과가 되겠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전제는 울타리를 치지 않는 것입니다. 자교 출신이든 타교 출신이든 철저하게 능력중심, 의지중심으로 뽑아서 중어중문학의 한 획을 긋겠다는 의지로 학교의 위상을 올려놓으면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연구비도 모이게 되고, 명망있는 학자들도 관심있어 하며, 그렇게 되면 다시 학생들이 모이고 이 우수한 학생들이 다시 앞의 연구성과를 내놓아 학교의 위상을 올리는 선순환이 됩니다. 그러나 앞에서 밝혔다시피, 모교의 교수들은 겨우 테넌트 하나 쥐고 완장질 하기 바빠서 열린 마음으로 학문을 대할 깜냥이 되질 못했습니다. (그 밑에서 공부하겠다고 버텼던 애들도 몇 알고 있습니다만, 괜찮은 애들은 지쳐서 일찍 자기 길 찾아서 나갔고 남은 애들도 교수들에게 어떻게든 자리 얻어보려고 잘 보이느라 연구나 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성대 중문과가 건국 이후 최초의 중문과고 어쩌고 합니다. 그러나 오리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오리진을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필귀정입니다.

 

추신: 이런 제게 제 얼굴에 침 뱉는다고 비아냥대는 분이 계시겠지만, 그러시려면 좀 제가 학과 나온 덕 좀 볼 수 있도록 주선 좀 부탁드립니다. 뭘 좀 덕을 봐야 제가 제 학과를 까내려도 아쉬울 것이 있을 법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