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첫 직장에서 맞는 첫 리프레시 휴가 - 회사는 여름에 편중되어 사용되는 '여름휴가'를 없애고 대신 '리프레시 휴가'로 이름을 바꾸어 연중 어느때나 사용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 를 결정한 것은 7월이었다. 나는 당시 도무지 생각과 맞아 떨어지지 않는 회사를 떠나기 일보직전이었다. 한편으로는 그 괴로운 일상을 대차하고자 다짜고짜 응했던 소개팅에서도 차여 몹시 죽고 싶은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쓰고보니 전후관계가 다소 비틀어졌지만) 보다 못한 '누군가'가 내게 같이 여행을 가자고 했다. '리프레시'를 위해서. 그 누군가는 좋은 데 가서 쉬는 것도 좋지만, 한 살이라도 더 늙기 전에 '고생하는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도 동의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스스로를 더 저 나락의 끝으로 내동이쳐 버리는 특유의 변태적인 감성 덕분이었던 것 같다. 어디 한 번 당해보라는 심산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그것에서 살아남으면 상처를 안고 계속 살아가라는 식으로.


처음에 쓰촨[四川]성 지우짜이거우[九寨沟]에서 시작되었던 여행지는 이내 마오타이 주(酒)의 고향인 꿰이저우[貴州]로 옮아갔다가 다시 '동티베트'으로 일컬어지는 쓰촨 성 서부[각주:1]로 고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의 지인 둘이 합류하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를 무척 신뢰하였기 때문에 이들이 내 여정의 일부에 들어오는 것에 큰 의심을 하거나 거절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누군가를 신뢰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신뢰하는 둘이라면 나 역시 그들을 신뢰하고 좋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이후에 계속 이야기 할 것이다.


휴가 결재를 받고 어디 가느냐고 묻는 팀장에게 '중국 산악 지방에 고생하러 간다'고 말했고, 팀원들은 대체 왜 리프레시를 고생하러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젊으니 사서 고생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한국사회에 최적화된 바른 정답을 말했고 그 누구도 그것에 동의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 여행의 시작이 이런 어두운 심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물론 알아줬으면 하는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다시 중국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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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티베트의 상징인 라싸가 위치한 시짱 자치구 외에도 인근의 칭하이 성, 쓰촨 성 등지에도 티베트인('짱족')의 자치주들이 위치하고 있다. 실제 토번제국이 강성했던 시절에는 당을 무척이나 괴롭혔고, 이때에 현재 칭하이 성과 쓰촨 성 일부를 국경으로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의 강제복속 과정에서 기존 티베트 지역의 서부는 시짱 자치구로 갈리고, 동부는 각각 칭하이 성과 쓰촨 성으로 편입되었으므로 이 쪽을 '동티베트'라 칭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본문으로]


  아빠의 휴가로 찾아온 모처럼의 가족여행, 그러나 계획은 하나도 세우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던 차에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는 겸사하여 김해 봉하마을에 다녀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곳에 가는 발걸음이 이토록 무겁지는 않으련만.

  세 시간을 달려 봉하마을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찾은 것은 '아방궁'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애초부터 아방궁이 있었는가. 아무리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행복'하다지만, 이럴땐 제발 보고 믿어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오가는 사람들이 분주한 가운데 한 켠에 사람들이 어떤 것을 두고 빙 둘러 서 있었다. 5월 23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기념물 때문이었다. 그 '아주 작은 비석'을 보기 위해 다가가니 눈에 많이 익은 사람이 서 있었다. 그 사람의 눈은 오늘도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미치게 했는가. 미쳐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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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비석 뒤로 명계남 씨가 서 있다.
서서 쭈뼛거리느라 좀체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와 비석도 만져보시고 자세히들 보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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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객들이 두고 간 헌화들과 '아주 작은 비석'

 
비석 뒤로는 투신장소인 부엉이 바위가 보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위에 서서 있었다. 그곳을 바라본 명계남 씨는 "저 사람들 제발 저기 좀 안 갔으면 좋겠어요. 위험하기도 하지만, 여사님께서 창문 너머 (부엉이 바위를) 보실 때마다 참 좋지 않게 생각하세요."라 말했다. 실제 근처까지 올라가보니 통제를 위해 쳐놓은 그물 패스를 누군가 찢어버려 원하는 사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상태였다. 호기심도 좋지만, 그곳이 사람이 죽은 자리임을 생각한다면... 과연 그러한 행동들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토원까지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는, 휴가를 맞아 찾아온 추모객 겸 관광객의 수가 더 늘어 있었다. 손에 꽃을 든 사람들. 생전에 '노간지' 패션 아이템이었던 밀짚모자를 단체로 쓴 가족들. 담배를 사들고 온 사람들. 노란 옷을 입고 온 사람들... 그들에게 아마도 노무현과 그의 고향인 이 봉하마을은 언제까지나 2009년 5월 23일 이전의 시간으로 머물러 있을 것 같다.






  1. 이미 알고 있겠지만, 차후 이 토지를 매도할 때에 토지의 소유자는 매입금액에서 매도금액의 차에 해당하는 양도소득세를 내도록 되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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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 봉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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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frenchfly.tistory.com 프랑스파리 2009.08.07 17:08 신고

    저도 휴가때 한번 내려가고 싶네요. 잘봤습니다.

    • Favicon of https://blog.philobiblic.com 클라시커 2009.08.07 22:16 신고

      본문에 숨김글로도 썼지만, 황빠들의 존재 빼고는 좋았습니다. 좋다는건... 그곳의 입지나 혹은 시설 이야기가 아니라, 그곳의 분위기였지요. 기회가 되신다면 한 번 쯤은 가보셔도 나쁘지 않으리라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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