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記/2015 이전

시간이 멈춘 공간 - 경남 김해, 봉하마을

클라시커 2009. 8. 5. 22:49


  아빠의 휴가로 찾아온 모처럼의 가족여행, 그러나 계획은 하나도 세우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던 차에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는 겸사하여 김해 봉하마을에 다녀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곳에 가는 발걸음이 이토록 무겁지는 않으련만.

  세 시간을 달려 봉하마을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찾은 것은 '아방궁'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애초부터 아방궁이 있었는가. 아무리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행복'하다지만, 이럴땐 제발 보고 믿어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오가는 사람들이 분주한 가운데 한 켠에 사람들이 어떤 것을 두고 빙 둘러 서 있었다. 5월 23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기념물 때문이었다. 그 '아주 작은 비석'을 보기 위해 다가가니 눈에 많이 익은 사람이 서 있었다. 그 사람의 눈은 오늘도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미치게 했는가. 미쳐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 밖에.




△ 대통령의 비석 뒤로 명계남 씨가 서 있다.
서서 쭈뼛거리느라 좀체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와 비석도 만져보시고 자세히들 보시라"고 말했다.



△ 추모객들이 두고 간 헌화들과 '아주 작은 비석'

 
비석 뒤로는 투신장소인 부엉이 바위가 보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위에 서서 있었다. 그곳을 바라본 명계남 씨는 "저 사람들 제발 저기 좀 안 갔으면 좋겠어요. 위험하기도 하지만, 여사님께서 창문 너머 (부엉이 바위를) 보실 때마다 참 좋지 않게 생각하세요."라 말했다. 실제 근처까지 올라가보니 통제를 위해 쳐놓은 그물 패스를 누군가 찢어버려 원하는 사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상태였다. 호기심도 좋지만, 그곳이 사람이 죽은 자리임을 생각한다면... 과연 그러한 행동들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토원까지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는, 휴가를 맞아 찾아온 추모객 겸 관광객의 수가 더 늘어 있었다. 손에 꽃을 든 사람들. 생전에 '노간지' 패션 아이템이었던 밀짚모자를 단체로 쓴 가족들. 담배를 사들고 온 사람들. 노란 옷을 입고 온 사람들... 그들에게 아마도 노무현과 그의 고향인 이 봉하마을은 언제까지나 2009년 5월 23일 이전의 시간으로 머물러 있을 것 같다.






  1. 이미 알고 있겠지만, 차후 이 토지를 매도할 때에 토지의 소유자는 매입금액에서 매도금액의 차에 해당하는 양도소득세를 내도록 되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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