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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라의 사람들

클라시커 2008. 6. 3. 13:33
  홍세화 선생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 중에서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거칠지만, '업계용어'를 빌어다 써본다면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제대로 된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다시 일상용어로 순화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처한 상황을 100%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욕망하는 대상에 스스로를 동일시화 한다는 거다. 이를테면, '국개론'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예로 들 수 있다. 달동네 쪽방에 살면서 강남권의 집값 안정을 위한 종부세 제정에 혀를 끌끌찬다던가, 자신은 소득세를 내지 않는 준위의 소득자면서 소득세 인상안에 '세금폭탄'이라며 노무현 정부를 가리켜 빨갱이를 운운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결론적으로 홍세화 선생이 그토록 우려하던 '존재를 배반한 의식'들은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자신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어떤 사람을 자신들의 대표로서 내세운 것이다. 그가 내건 공약은 달랑 '경제 살리기' 하나였고, 대체 그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지만 그는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지난 정권 동안 경제가 파탄났다는 주요 언론들의 보도와 그것을 적극 이용했던 어떤 공당의 합작품이었다. (생각해보니, 그 때 그 주요언론들이 지금 이야기하는 '선동질'과 '배후'란 과거의 그들 모습 그 자신이 아니었나 싶다. 그들이 요새 그렇게 이야기하는 '팩트'의 관점에서 보아도 지난 10년간 한국경제의 표면적인 성장률은 매우 양호했기 때문이었다. 혹자는 동일 기간 동안 중국과 인도가 10% 이상 성장했으나, 우리나라는 5% 가량 밖에 성장하지 못했다며 노무현 정권을 '무능한 정권'이라 규정하는데 나는 그에게 '당신이야 말로 무능하다'라고 하고 싶다. 애들은 한창 클 때는 정말 놀라운 속도로 자라지만, 어느 정도 자란 후에는 그 속도가 더디다. 이제 막 성장판이 열린 중국과 이미 그 시기를 지난 한국을 단순비교하는건 초등학생들도 웃을만한 일이다.)

  당연히 그는 그를 뽑아준 '존재를 배반한 의식'들을 배반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평소 그의 언행과 인품, 사상 등 여러모로 따져보았을때 그는 지금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불행하게도 아주 지극히 정상이다. 그의 지지자들이 철썩같이 민 '청계천'이라는 것도 결국엔 그 특유의 오만함과 방자함(어떤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과단성'과 '추진력'이라고도 번역한다.)이 빚어낸 결과였다. 청계천 풍물시장의 상인들을 일일히 찾아다니며 설득했다는 점을 내세워 그가 얼마나 '민주적'이고 더 나아가서는 '서민친화적'인지를 강조했지만, 희한하게도 당시부터 정식점포를 가지고 있지 못한 노점상들은 풍물시장이 임시로 옮겨졌다가 오세훈 시장의 집권 이후 도심 재개발 계획으로 인해 헐리게 된 동대문운동장 주변에서 여전히 투쟁하고 있다. 사실 이명박에겐 그가 목표로 하는 대상의 주류들만이 고려의 대상이었다. 강부자-고소영 내각을 기억하라. 그에게 있어, 당시의 목표는 자신의 정치철학에 걸맞은 사람들을 주변인물들로 삼는 것이었고 때문에 '존재를 배반한 의식'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 - 어떤 사람은 이를 가리켜 '국민감정'이라 번역하기도 한다 - 사람들을 골랐다. 항의하는 '존재를 배반한 의식'들에게 '돈 많은 건 잘못이 아니라, 오히려 능력있는거다.'라고 말하며 대못을 박아가면서. 공공기관장들의 사퇴를 종용한 일은 또 어떠한가? 법에서 정한 임기라는게 있는 상황에서 그는 단지 제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기용하기 위해 법 따윈 깡그리 무시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주변 인물의 기용이지, 법 따위가 아니니까.

  그런데 요새는 이 '존재를 배반한 의식'들의 낌새가 이상하다. 한 두번 차이더니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탄핵을 부르짖고,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상한 일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자신들을 배반한 그'에 대해 80%라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여주었었다. 지도자에 대한 지지율이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변할 수도 있는 노릇이라니. 사실 그때에 그들이 한나라당의 정강-정책에 대해 한 번이라도 더 관심을 보이고, 이명박이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만 더 알았다면 그렇게 미친듯이 열렬한 지지를 보내지는 않았을 거다. 북한사람들이 '김정일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그를 지지한다는 당신들의 말처럼 말이다. 결론적으로 당신들이 세뇌당했다고 여기는 북한 사람들과 당신들은 매우 동일한 위치에 서 있다는 거다.

  나는 그때에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었다. '이번에 한 번 당해봐'라고. 불행하게도 이성적 사고가 불가능하면, 육체적 고통을 통해서만 경험을 획득할 수 있다. 소고기? 이제 그것은 이명박 라운드의 시작일 뿐이다. 모든 것은 '존재를 배반한 의식', 당신들을 향해 그 칼끝을 겨눌 것이다. 이번 기회에 한 번 그 고통을 만끽해보라. 생각없는 행동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