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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총학생회의 결단

클라시커 2007. 3. 27. 00:00

연세대학교 총학생회가 두 가지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1. 총여학생회의 폐지
2. 한총련 가입제한의 명문화


조금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이 둘 모두 총학생회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사안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먼저 총여학생회의 폐지의 경우
전체 학생에게 걷은 총학생회비가 여학생들만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부당하며,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본인 견제권이 총여학생회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연대 총학생회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그러한 근거가 폐지를 주장하기에는 어째 좀 부실해 보인다.
먼저 견제는 견제일 뿐이다.
로크가 정의하고, 몽테스키외가 발전시킨 분립론은 기본적으로 균형을 목표로 한다.

즉, 권력을 두 개 내지는 세 개로 나누고 상호간에 견제하도록 함으로써 권력 간의 균형을 도모해 어느 한 쪽의 권력이 극도로 비대해짐으로서 나타날 수 있는 파행적 사태를 막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견제의 과정에서도,
분립된 권력은 각자의 영역을 최대한 인정하고 그 틀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견제를 시도한다.

입법 권력이 비대해진다고 해서 행정부가 국회를 일방적으로 해산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의원내각제의 경우에는 내각이 의회의 해산권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경우, 의회는 그 반대급부로서 내각의 불신임을 선언하기 때문에
어떤 한 권력 주체가 일방적으로 상대를 녹다운 시키고 혼자만 살아남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권력의 한 부분을 다른 부분의 아래에 복속시킴으로써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연대 총학생회의 '견제론'은
의회를 해산하고, 대통령이 직접 의원을 지목했던 유신헌법에서나 볼 법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연대 총학생회는
자신들이 나서서 일방적으로 총여학생회의 해산을 강요하기 이전에
총여학생회와의 정책적 대결 - 또는 정치적 대결 - 구도를 만들어 그 사안에 대한 정치적 민감도를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총여학생회 또는 총학생회라는 조직체를 통해 혜택을 받아야 할 대상은
어디까지나 총학생회나 총여학생회가 아닌 연세대학교 학생들이므로,
그들 사이에서 정치적 공감대가 형성된 이후에 폐지와 존속을 이야기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까.

또는 굳이 폐지를 이야기할 것 없이,
애초에 학생회비를 걷을 때부터 납부자에게 총여학생회에 대한 재정지원여부를 물음으로서
총학생회와 총여학생회의 재정적 구분을 확실히 해두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총학생회로서는 총여학생회의 예산 집행에 따른 충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총여학생회로서는 학생회비가 공정치 못하게 사용된다는 비판과 총학생회에 대한 재정적 종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 총학생회로서는 총여학생회 폐지의 명분이 이렇게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동시에 현 총학생회가 앞으로 지출비용에 대한 결산 보고를 철저하게 해준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이전에 니들이 결산보고 안하고 삥땅쳤던 것들은 잊어줄게 ㅋ)


한총련의 가입차단을 명문화하는 건에 대해서는,
총학생회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학교 전체가 좌지우지되어서는 안되며
학교의 정치적 미래를 학생들의 민의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총학생회의 의견은 원칙적으로 옳다고 본다.

일단 현행법상으로 한총련이 이적단체이고(물론 빌어먹을 국보법 때문이지만),
그에 소속된 사람들이 범법자의 범주로 편입되는 상황에서
학교 전체를 보았을 때 소수에 불과한 총학생회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학교의 정치적 성향이 결정되는 것은 누가 보아도 합리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서 꼭 짚고 넘어야 할 것은
과연 '민의에 따른 결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민의'에 근접한지에 대한 문제와
이번 건이 학교 내에서의 정치적 입장표현에 대한 족쇄의 구실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정치적 민감도가 형성되지 않은 사안에 대한 투표란 무의미할 수 밖에 없다.
그럴 경우, 투표에 참여하는 대다수가 아무 생각을 갖지 않고 - 또는 편견에 사로잡혀 - 투표장의 문으로 들어서기 때문이다.

민의란 기본적으로 사회구성체의 '의식'을 담아야 한다.
또한 그 '의식'에 대한 형성과정이 필요하고, 그 '의식'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연세대 총학생회는 연세대구성원들의 이 '의식'이란 것을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거수기' 쯤으로나 보고 있는 것 같다.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스스로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남의 학교 이야기를 하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무한한 비판을 환영한다.
뭐, 너희들이 딱히 나한테 할 말이나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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