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記/2015 이전

시차적응이 안된다

클라시커 2008. 8. 23.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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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haikovsky - 1812 Overture Op.49
지휘 : 레너드 번스타인
후반부 3분 30초 분량만 잘라서 업로딩


  유럽에서 돌아오자 마자 해야 할 것들이 마치 벽처럼 내 눈앞에 선다. 개강 준비나 현 정권과의 지지부진한 밀고 당기기 - 물론 MB씨는 내가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 말고도 시차적응이라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여하간 해외 여행 경험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몇 번의 사례로 볼 때 나는 그닥 시차적응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비근한 예로 캐나다에 갔었을 때도 밴쿠버에 도착한 첫 날은 물론이거니와 돌아와서도 그닥 장애없이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다. 시차적응을 제대로 못한 탓에 사흘째 새벽 컴퓨터질 중이다. 하기사 원래도 블로그에 글들을 새벽에 썼었다. 이상하게도 대낮에 맨 정신에서 쓰는 글은 내가 생각해도 별로인데, 졸린 눈을 비벼가며 쓰는 글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착란 상태에서 쓰기 때문일까. 불현듯 '뽕 맞는' 연예인들이 급히 이해가 간다.

  시차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나라와 시각대가 다른 곳에 있다보면 묘한 경험을 한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잠든 사이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이 촛불 집회에 귀기울이지만 그 중 대다수는 자정을 넘기지 못하고 관심의 끈을 놓아버린다. 그들이 의지가 박약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도 생활이 있고 그를 위해서는 잠이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각대가 다른 곳에 위치한 나는 상황이 다르다. 새벽 시각대에 들어오는 연행자들의 속보를 일일히 접할 수 있고, 다음날 인쇄를 위해 각 신문별로 내놓은 '종합' 뉴스들을 비교해보면서 꼼꼼하게 읽어볼 수도 있다. 맨 정신으로 말이다. 무엇보다도 큰 재미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는 거다. 사람들은 흐름에 매몰되면 그 흐름을 읽지 못한다. 아마도 이것은 시각대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기 보다는, 내가 현장에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나는 곧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그들이 지난 12월에 벌였던 만행과 현재 그들이 올림픽을 보며 행하고 있는 행태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이든, 많은 사람이 장기간 가담하게 되는 일은 반드시 탈이 나게 되어있다. 어떤 일이 정당성을 갖느냐의 판단기준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 아주 틀어진 일일 경우, 내부의 자성하자는 목소리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더 오래 갈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에 응답하기 때문이다. 어떤 명분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건 반성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경제라는 밑도 끝도 없는 장밋빛환상에 간도 쓸개도 내주었던 지난 12월이나 어쭙잖은 '메달노래'로 환상을 정당화하는 지금의 민족주의적 광풍과 앞으로의 촛불집회가 차이를 보일 수 있는 지점이, 바로 그 곳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덧 : 아마도 요새는 '못생겼다'는 말을 '훈훈하다'는 표현으로 하는 모양이다. 몇 선수들의 미모에 '얼짱'이란 헛웃음켜게 만드는 호칭으로 찬사를 보내다가, 얼굴은 안되도 '자랑은 스러운' 선수들에게 마지못해 '훈훈하다'는 수식어를 붙여주는걸 보면 말이다. 물론 아름다운 것은 언제까지나 긍정적이다. 맛난 떡도 보기가 좋아야 하고, 치마를 사도 기왕이면 다홍색이면 좋다. 그러나 지금처럼 선수들이 무슨 연예인마냥 얼굴로 칭찬을 받아야 하는건지, 나는 때로 혼란스럽다. 다수의 아이돌들 중 소수만 열성 팬들을 갖는다. 이상하게도 학창시절에 그렇게 아이돌들을 좋아하던 여아들은 머리가 좀 크면 '제가 왜 그땐 그랬는지 몰라요'하며 철 든 티를 낸다. 그 '철 든 여아들'에게 버림받은 아이돌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쉽게 좋아하고 쉽게 버리는 것은, 버려도 새로 살 수 있다는 산업시대가 불어넣은 헛바람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걸까'란 자기성찰을 불가능하게 하는 집단주의적 광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덧2 :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해보고 있다. 누군가와 무슨 이야긴가를 하다가, '너, 걔 좋아하는구나'란 이야기를 들었는데 난 그것에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좋다'는 것에 대해 확고한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좋다'는 것은 그것에 대응되는 영단어마냥 Good에 가까운 동사다. 그렇기 때문에 남발해도 돈은 들지 않지만, 나는 왠지 그런 단어일수록 그냥 소비하기가 싫다. 나는 컴퓨터를 좋아하지만, 때론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밥을 좋아하지만, 역시나 때론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함'과 '안 좋아함'이 반복되는 시퀀스를 정말 '좋다'는 한 단어로서 정의내릴 수 있을까. 사랑이란 것이 원래 서로를 채워주는 매커니즘의 로만틱한 표현이라고 하지만, 아마도 그런 아름다운 정의 역시 '자신없음'을 감추려는 다수 군중의 자기합리화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싫다는 건 참 명확하다. '난 이명박이 싫어' 어쩜 이렇게 명쾌할 수 있는지)

덧3 : 빅벤과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을 같이 배치한 까닭은 빅벤이 속해 있는 건물이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폭탄에 날아가는 영국 국회의사당이기 때문이다. 이 음악에 대한 포스팅도 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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