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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진보신당인가? - (2) 진보신당의 성장 가능성

클라시커 2008. 6. 14. 23:02

  이 글은 2008/06/12 - [시작, 2008] - 왜 진보신당인가? - (1)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을 버린 이유의 후속편격이다. 앞 글에서는 진보신당의 가입 이전의 나의 정당생활에 대해 간략하게 적어두었다. 별 내용은 없지만, 관심이 있으면 읽어보라.




  4월 9일, 진보신당은 믿었던 심상정-노회찬 두 후보의 낙선 · 정당지지율 3% 획득 실패(실제 2.94%)로 한 명의 의원도 내지 못했다. 그들이 버리고 뛰쳐나온 민주노동당의 사정도 좋지 못했다. 물론 수성에 성공한 권영길, 이방호라는 거성을 무너뜨린 강달프[각주:1]의 존재가 돋보이긴 했지만 17대 총선 당시 10석[각주:2]이라는 쾌거를 이뤘던 거에 비교하면 이번 18대 총선의 5석[각주:3]은 진보정당의 입지가 엄청나게 좁아져 있다[각주:4]는 것을 의미했다. 어쨌거나 처참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던 진보신당은 - 지금은 촛불정국 때문에 조금 소외되는 분위기지만 - 재창당을 결의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그 재창당을 대표들과 간부로 구성된 소수의 대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당원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보신당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작은 지도부의 특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수인 일반당원들에게 여타 당들보다 더 넓은 운신의 폭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앞서의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런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열린우리당은 6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한 이른바 '진성당원'들에게 국민경선에 참여할 기회를 주었고, 민주노동당 역시 일정 자격이 되는 당원들에게 당내 긴급 현안들에 대한 투표권을 주었다.

  그러나 진보신당은 당원들에게 그들보다 더 많은 참여기회를 주고 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당원들이 '당직자들에게 주도할 기회를 주고 있'다. 현재의 촛불정국에서 진보신당의 심벌로 자리잡은 '칼라TV'는 당 차원에서 주도한 것이 아니라, 일반 당원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미디어 팀이다.[각주:5] 촬영 장비 공수 및 편집, 스트리밍 서버 제공자 섭외, 진행 자원[각주:6] 등 방송 운영의 핵심적 운영에서부터 진행을 원활하게 하는 자원봉사자까지 온통 일반 당원 천지다. 중앙당에서 해 준 것은 그냥 몇 가지의 금전적, 물질적 도움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버재창당의 경우도 그렇다. '서버재창당'이란, 현재 열악한 수준의 당 홈페이지를 - 지금 상태로는 방문자가 조금만 증가해도 서버가 다운되는 경우가 잦다. 인터넷 시대를 열어가야 할 진보진영에게 이런 현상은 조금 부끄러운 일이다 -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리자는 운동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서버 구입, 웹 디자이너 고용, 컨텐츠 제작 등이 있는데 서버 구입에 필요한 자금은 일반 당원들이 십시일반하여 모으고 있는 상태고 웹 디자인과 같은 부분은 당 내 해당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당원이 어느 정도의 자원봉사를 해주는 식으로 해결했다고 알고 있다. 이 과정에서도 역시나 중앙당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나름 실무자로서 가진 전문적 의견을 개진하기도 전에, 더 전문가인 일반 당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그야말로 '웹 2.0'식의 능동적인 흐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흐름은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다. 중앙당 주도의 연행자 관리&변호 사무는 실질적으로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중앙당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들의 수가 너무 적어서이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중앙당 상근자들을 위해 당원들은 당장 필요한 인원을 파악하고 그것을 업무별로 나누어 당원들에게 참여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칼라TV 스탭들을 위한 '밥나르기' 자원봉사가 이루어졌다. 이 역시, 자금 모금부터 실제 집행까지 오로지 일반 당원의 손에서 생산되었다.

  이러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은 굉장히 이상적인 형태다. 정치가 곧 삶이 되는,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본질적 의미에 가장 가까운 형태의 정치 현상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가 불안정한 상황에까지 치닫게 된 것은 시민들이 '실질적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현실정치에 반영되지 않는 현상이 비일비재해진 탓에 시민들이 패배주의에 젖거나 아니면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갖게 되어, 대중에 의한 대중의 정치라는 민주주의(demos+cracy)가 그 본질을 잃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일반 대중의 씨알이 먹혀들어가는 현상이 진보신당과 같은 '정치적 아이콘'에서 나타나게 되면, 대중들은 자신의 의견이 현실화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고 모처럼 찾아온 그 기회를 놓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일종의 '피그말리온 효과'다. 이런 현상이 우리 정치사에서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다. 유시민이라는 걸출한 논객을 정치인으로 변신시킨 개혁국민정당이 이 부분에서는 진보신당의 선배격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군집화, 거대화된 것이 오늘의 촛불집회다. '배후 없는' 촛불집회가 40여일을 맞게 되는 원동력도 거기에 있다.

  당연히 진보신당에게도 부족한 점은 있다. 원외정당이라는 한계도 있겠지만, 아직 그들이 '공당'으로서 가진 정치적 파워는 미약하다. '원외 제1정당'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는 하지만, 작금의 사태들에 대해 몇 가지의 논평을 내는 것 외에 하고 있는 일은 없다. 이 때문에 가끔 시민들의 항의가 들어오기도 한다. 진보신당이 서민의 삶을 지향하면서도 실제로 하는 것은 없지 않느냐는 논조다. 무조건적으로 '전시 행정'을 늘어놓는 것도 지양해야 할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이렇듯 '하는 일 없지 않느냐'는 소릴 들을 정도로 조용한 것도 문제다. 대중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판단한다. 정말로 '진보신당'이 대중정당을 꿈꾸고 있다면 어느 정도의 제스츄어를 취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앞서의 사례들에서 보았듯, 진보신당은 스스로를 수정하는 훌륭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자정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곧 자가발전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보는 반성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내가 진보신당에 또다른 희망을 가져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왜 진보신당인가?' 연재 종료)

  1. 강기갑 의원을 지칭하는 네티즌들의 용어다. [본문으로]
  2. 지역구 - 2석, 비례대표 - 8석 [본문으로]
  3. 지역구 - 2석, 비례대표 - 3석 [본문으로]
  4.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는 지난 17대 총선부터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다. 유권자는 투표할 때, 지역구 후보에 대한 투표권과 정당에 대한 투표권을 갖는데 이를 통해 얻은 정당 득표율대로 각 정당에 비례대표 당선자 수를 할당하는 제도다. 비례대표 당선자의 수가 8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유권자들이 지난 총선에 비해 그 정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5. http://www.newjinbo.org/board/view.php?id=discussion&url=/board/list.php?id=discussion&search[subject]=on&search[word]=스텝&no=967 [본문으로]
  6. 진중권, 정태인 교수는 현재 일반 당원인 것으로 알고 있다. '헤딩라인 뉴스'의 이명선 앵커의 경우에는 진보신당의 맥이 자신이 가진 신념과 일치한다고 하여 자원한 것으로 알려진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