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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집회, 배후 그리고 이명박

클라시커 2008. 6. 12. 19:21
  정국이 뒤숭숭하다. 80년대에나 보였던 '토끼몰이', '프락치', '사복경찰'이란 단어들이 헤드라인을 돌아다닌다. 더불어 '배후설'도. 연일 계속되는 촛불집회에 대해 경찰청장과 검찰청장은 '배후가 있다'면서 '그들을 색출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라 선언하고 있다. 87년에 태어난 내가, 천장의 모빌을 보던 그때 6월로 돌아온 느낌이다.

  권력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5, 6, 7, 80년대에  그들의 '정치적 선조'가 국민들을 향해 하던 이야기와 똑같다. 지금 그들의 발언들은 해방 이후에 모두 사라졌어야 할 집단들이 그들의 생명을 연장시켜준 독재정권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일종의 오마주인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 '선조들'이 모두 민주사회를 역행하는 일들을 했음이 명명백백히 밝혀진 이 시점에서 그들이 했던 이야기를 똑같이 할 수는 없다.

  배후, 배후하는데 촛불시위의 배후는 나다. 엄밀하게 말해, 나처럼 세련된 용어로 현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썰을 푸는 나같은 '블로거'들이 배후다. 그리고 명확한 가치기준을 가지고 옳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 하에 촛불시위 일정들을 자기가 애정을 쏟고 있는 카페로 옮겨가는 '네티즌'들이 배후다. 어청수 경찰청장이 수백명이 되었건 촛불시위의 배후를 색출해내겠다고 하는데, 그의 예상치는 이미 틀린 것 같다. 당장 수천명으로 고쳐주기 바란다.

  배후를 자꾸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정부의 속내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80년대에 이미 갈아치워진 이전 맞춤법을 여전히 준용하여, '읍니다'가 맞다고 믿고 있는 자가 권력의 정점에 있어서인지 그 똘마니들도 국어 능력중 하나인 문맥 이해 능력이 크게 부족한 것 같다. 쇠고기 고시 반대를 위한 촛불집회는 그것이 이미 내포하고 있듯, '쇠고기 고시'라는 정치적 사안에 '반대'하기 위한 정치적 집회다. '문화제'란 이름을 단 것은, 정부가 얼기설기 만들어놓은 집시법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꼼수다. 다시 말해, 작금의 시위는 비정치적 성격을 띤 정치적 집회다. 그러한 암묵적 합의가 있어서 이명박에 대한 반대, 도로점거 시위로도 자연스럽게 넘어간 것이다. 정말 '문화제'라 생각하고 나온 나이브한 국민들이 적기 때문에.

  집시법? 지금의 집시법은 신고제의 탈을 쓴 허가제다. 아무리 그 의도가 좋아도 경찰이 신고를 받지 않으면 불법집회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사회단체가 집회를 연다고 할지라도 그것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게 불법/합법이 결정되는 것이다. 동일한 시위임에도 서울광장에서 '반핵반김국민연대', '자유총연맹' 같은 노망난 노인네들의 집회가 열리는 것은 허용되고 지금의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것은 불허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반대받는 집단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넌센스다. 그런 사정을 모르고 불법집회라 무조건 안된다고 말하는 나이브한 자들도 넌센스고. 그 우두머리에 그 똘마니라고나 할까.

  김상봉 교수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시위를 하라는 것은 이불 속에 들어가서 만세 부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사실, 우리네 교과서에서 나오는 그 '친절함'은 사실 '멍청함'이다. 왜 파업의 번역이 strike이고, 시위의 번역이 demonstration인지를 생각해 보라. 어륀지를 강조한 정부니 이런 초딩 수준의 영단어 뉘앙스 해석은 충분히 해낼 거라 믿는다.

  해외에서 경찰저지선 넘어 시위하면 우리보다 더 엄격하게 다스린다는 사람들. 미안하지만 당신들이 알고있는건 부분이다. 외국의 시위 현장에서 방패를 본 일이 있는가. 외국 경찰들은 그냥 인간띠를 만들어 제한한다. 물론 그들도 예전에 경찰봉을 든 일이 있었다. 물론 그 다음의 선거에서 집권당은 그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우리처럼 이렇게 불쌍한 전경애들 데려다놓고 방패로 찍고 경찰봉을 매번 휘두르고 테이저건으로 기절시키는 만행을 저질러도 정권이 유지되는 나라는 북한, 쿠바, 중국 빼곤 없다. 국민들이 메조키스트가 아닌 이상 그 정권이 몰락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데,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그런 일이 아직 없다. 그 이유는 우리 국민이 너그럽거나 변태거나 둘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나는 전자라기보다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별로 좋은 나라가 아니다. 20년만에 민주화를 이룩한 탓에 선도적인 그룹만 그 의의를 잘 이해하고 있고 나머지는 그냥 추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진짜 민주국가는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자각하는 나라인데, 앞서도 말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그 수준까진 오르지 못했다. 앞으로 이런 촛불시위가 몇 번은 더 있어야 우리 국민들이 피플파워에 대해 자각할지. 개탄스럽지만 그 성장이 기대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