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15 4

[epilogue] 현체적인 추억 (연재종료)

새벽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L과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거의 내 이야기를 하느라 잠을 못 재워서 일단 L에게 미안하다. L은 이 근래에 내 복잡한 심리 상태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가장 거지같던 시절을 함께 한 사람이고, 그 이후에 내가 어떻게 회복되었는지도 눈으로 본 사람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회복을 바라며, 이 이후에 내가 다시 어떻게 망가질지 걱정하며 보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L은 내게 우선 일상으로 돌아가 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 내가 여행 막바지에 얻은 고민이 좀 없어지지 않겠냐고. 그러나 계속 그 고민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벌써 돌아온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가고 있다. 돌아온 직후인 월화 이틀 간은 L의 조언대로..

[9일차] 9월 10일, 청두

9월 10일 토요일. 이날은 실질적으로 청두에서 보낸 날이었다. 스타벅스가 있고, 버스가 있고, 지하철이 있으며 화장실도 어디에나 있고 무엇보다 차량정체가 존재하는 이 곳. 쓰촨 성의 성도로서 충칭 건설 전에는 중국 서부내륙에서 가장 큰 도시. 면죽관에서의 제갈첨의 패배에 이어, 촉한의 마지막을 알린 성도전투가 벌어진 도시. 이 곳은 그런 곳이었다. L과 K, J는 새벽까지 클럽에 있다 들어왔다고 했다. 나는 상대적으로 일찍 들어왔길래 아침에 일어나 어제 버스 안에서 읽지 못한 소설을 마무리 짓고, 새 책을 펼쳐 들었다. 종이에 비해 읽는 맛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샘들이 있지만, 나는 여행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자책은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늦게 들..

[8일차] 9월 9일, 캉딩-러샨[樂山]-청두

9월 9일 금요일. 이날은 모처럼 여유있는 날이었다. 아침의 소란만 빼면. 새벽 2시에 캉딩에 도착해 터미널 근처의 숙소에서 새우잠을 잤다. 주인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러샨으로 가는 버스가 아침 7시 반에 있다고 했다. 바이두에서 찾은 결과가 6시, 7시, 7시 반의 3개 설로 분분하였으나 동네 사람의 말이므로 믿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L은 불안했는지, 아침에 조금 일찍 나가서 표를 사겠다고 했다. 표가 없다면 플랜을 다시 고민해야 했으므로 그러는게 좋겠다고 했다. 조용한 새벽은 L의 비명으로 깨졌다. 표를 사기 위해 터미널로 갔던 L이 러샨으로 가는 버스 출발시각이 7시 반이 아니라 7시니 지금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눈을 떠 본 시계 속 숫자는 6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20분이었다...

[6일차/7일차] 9월 7일-8일, 써다[色達]-캉딩[康定]

나는 죽음이 또 다른 삶으로 인도한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닫히면 그만인 문이다. ― 알베르 까뮈 9월 7일 수요일, 그리고 9월 8일 목요일 이 날은, 아니 이 날'들'은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 날이었다. 보통 써다까지 가는 사람들은 단 하나, 오명불학원(五明佛學院)을 찾아간다. 어찌나 유명한지 '심지어' 나무위키에도 항목이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온라인에서 찾은 이 곳의 사진을 보고, 마냥 티베트 불교에 대한 환상을 꿈꾸며 이 여행의 목적은 이 곳이라 단언하기도 했다. (놀라운 일이다.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이 역시나 오리엔탈리즘을 가지고 있다니.) 수요일은 오명불학원을 탐방했고, 목요일은 천장(天葬)을 보았다. 다만 나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자세한 이야기와 사진을 내놓지 않을 생각이다. 오명불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