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이 또 다른 삶으로 인도한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닫히면 그만인 문이다.― 알베르 까뮈
9월 7일 수요일, 그리고 9월 8일 목요일
이 날은, 아니 이 날'들'은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 날이었다.
보통 써다까지 가는 사람들은 단 하나, 오명불학원(五明佛學院)을 찾아간다. 어찌나 유명한지 '심지어' 나무위키에도 항목이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온라인에서 찾은 이 곳의 사진을 보고, 마냥 티베트 불교에 대한 환상을 꿈꾸며 이 여행의 목적은 이 곳이라 단언하기도 했다. (놀라운 일이다.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이 역시나 오리엔탈리즘을 가지고 있다니.) 수요일은 오명불학원을 탐방했고, 목요일은 천장(天葬)을 보았다.
다만 나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자세한 이야기와 사진을 내놓지 않을 생각이다.
오명불학원은 관광지가 아니라 수도의 공간이다. 이름에서도 눈치챘듯, 이 곳은 티벳불교를 공부하는 승려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국내 불교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세계 최대의 불교 학원이라는 것 같다. 이를테면 대학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된,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나 영국의 옥스포드, 미국의 앤 아버처럼 말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이 일대를 재개발하며, 3만 7천 명까지 거주했던 이 공간을 5천명 수준으로 줄이려 하고 있다. 명목은 불량한 위생상태 개선 등을 통해 수도에 정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 - 그러면서 기존 불학원 공간 외에 기숙사 같은 공간을 신축하고 있었다 - 하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중국인 - 정확히는 '한족' - 외 기타 국적자의 써다 방문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불교계가 공인한 판첸 라마를 철저한 공산당 인사로 바꿔치운 것이 먼 옛날의 일이 아니다. 이쯤되면, 이들의 최종 목적은 구태여 말로 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
오명불학원은 이런 맥락 속에서 소비되고 있다. 매일 한족들은 자차나 버스로 몰려와 특유의 시끄러움과 함께 사진을 찍고 그것을 너도나도 자랑하기에 바쁘다. 웨이보를 하지 않는 자가 없고, 웨이신으로 동영상을 찍어 친구에게 보내지 않는 이도 없었다. 신기하다며 법복을 입고, 야경을 찍겠다며 야간에 거주지를 헤멘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니나, 적어도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라면 최소한의 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에게서는 타 문화에 대한 어떠한 이해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저 이 풍경을 소비하기에 바쁜 한 떼의 유커의 모습만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생각이 더욱 확고해 진 것은 9월 8일의 천장(天葬) 중이었다. 비록 윤회사상의 일부로, 오늘의 죽음이 끝이 아닌 것이 이들의 믿음이고 그렇기에 장례풍습이란 것이 우리처럼 무작정 슬퍼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렇다고 할지라도 가시는 길에 사진 못 찍어 안달난 이들처럼 셔터를 연신 눌러댈 필요 따윈 없지 않았던가. 그것도 '제발 찍지 말아주세요'라고 정중하게 써 있는 표지판을 앞에 두고 말이다. 심지어는 잘 보겠다고 담을 넘어 갔다가 장례 관계자에게 큰 소리를 듣는 자들도 있었다.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며 숫자 '8'과 '6' 따위의 미신에 일억금도 아깝지 않게 내다버리는 위인들이, 어째서 다른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그렇게 세속적이고 멍청한 모습을 보였는지 나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생경한 체험을 했다는 기쁨보다 이 멍청이들과 함께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이 너무 부끄럽고 짜증났다.
그렇기에 이 날의 '아름다운' 기억을 당신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다. 사진도 정말 여행 내내 찍은 것 중 베스트 컷만 남았지만 차마 내 손으로 이 곳을 다시 '관광지'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다.
생각보다 늦게 끝난 천장 때문에 8일은 밤을 새워 캉딩으로 달렸다. 아저씨는 중간에 쉬었다 갔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일정상 그럴 수 없었다. L은 이렇게 된 거 못 본 설산을 보기 위해 해라구로 가는게 어떻냐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거기서 헤어질 생각이었다. 오랜 고민이었다. 꼭 함께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구태여 죽상을 하며 모든 분위기를 나쁘게 만들기보다 나 혼자 떨어져 나오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 나쁜, 아니 마지막 날까지 기억의 한 구석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날이었다. 이 날, 나는 여기서 완전히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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