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

9월 3일 토요일.


이 날의 기억은 그다지 좋지 않다. 우선 호텔에 들어간지 세 시간도 되지 않아 일어나야 했다. 청두부터 첫 목적지인 캉딩까지는 장거리버스로 대략 4시간 이상 소요될 것이었기에, 짧은 기간 동안 압축적으로 시간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보다 빠른 탈것이 필요했다.


캉딩공항으로 떠나는 비행기의 시간은 오전 7시. 쓸데없이 꼼꼼하기로 소문난 중국의 항공보안검색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었다. 잠을 제대로 잔 것인지도 모르게 일어나 다시 공항으로 떠났다. 아직까지는 초반이니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고.


한 시간을 날아 내린 캉딩 공항은 해발 4,300미터에 위치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공항이라고 했다.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탈의실과 의무실. 그땐 몰랐지만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올라왔을 때에 겪어야 할 두 가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중국의 4대 화로라 불리는 청두와는 다르게, 캉딩의 기온은 한 자리수로 내려갔다. 짐을 찾고 서둘러 가방에서 후리스를 꺼내 입었다.


공항을 나섰더니 자기 차를 타라는 호객꾼들의 아우성이 빗발친다. 인근의 대도시인 캉딩 현이나 혹은 중간 경유지인 신두차오[新都橋]를 제시했지만, 우리는 설산을 보기 위해 상목거로 가야 했다. 목적지를 말하니 수많은 호객꾼들이 다 떨어져나가고 단 한 명만 남았다. 젊은 청년이었다.


상목거까지의 가격은 편도 1,000위안이 조금 넘었던 것 같다. 대략 20만원 정도 되는 건데, 그는 돌아올 때에 빈 차로 돌아와야 하니 그 정도는 충분히 받을만하다고 주장했다. 이럴 것 같아 한국에서부터 차량을 수배해야 했지만, 나와 L 모두 막판에 서로 바빠 그럴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했다. 상목거까지는 정규 교통수단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기도 했고, 또 넷이 나누면 어찌되었든 큰 돈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바이두 지도를 꺼내 루트를 보여줬더니 파란 색으로 표시된 비포장도로를 제외하면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분명 이때에 후회했어야 했다.


상목거 까지의 길은 좋지도 않았다. 사실 나는 이때까지 이 곳에 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독일이나 일본의 도로를 달릴 때처럼 끝없이 펼쳐지는 (한국과는 다른) 풍광이 있지도 않았다. 가끔 티베트인들의 건물이 보이긴 했지만, 우리로 치면 흔히 시골 길가에서 보이는 슬레이트 지붕을 쓴 초라한 집 정도라 특별히 무슨 차별성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덩치 때문에 앞에 탄 나로서는 3시간 반을 뜬 눈으로 보내야 했는데 - 그것이 조수석에 탄 자의 의무라 생각하기 때문에 - 이런 사실들 때문에 그 시간은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 지루함도 간선도로까지였다. 지루함은 이내 불안함으로 바뀌었다. 성도(省道, 우리로 치면 '지방도')에서 갈라져 나와 상목거로 들어가는 길은 모두 비포장 도로였다. 청년의 차는 올해 뽑은 세단이었다. 크기는 우리나라 기준 경차와 준중형차의 사이. 이 차가 비포장 도로를 달린다는건 사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금만 길이 나빴다 치면 길 가운데의 낙석이 차량의 바닥을 긁었다. 비가 왔는지 진창이 이어졌고, 어떨 때는 차가 나가지 못해 나를 제외한 뒤 셋이 내려야 겨우 지나가는 일도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때 그의 차는 마치 10년 정도 탄 차량 같았다.


우리가 묵은 곳은 상목거의 민가였다. 난방이 되지 않았고, 수압은 낮았으며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단 한 명도 불평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유일한 여성이었던 J가 몹시 싫어할 줄 알았는데 그 역시 단 한 마디도 나쁜 소리를 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 때문에, 나중에 나는 L에게 J의 기특함에 대해 장광하게 말한 바 있다. (물론 이는 비뚤어진 젠더관념의 산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L은 도착하자마자 설산을 볼 수 있는 즈메이야커우[子梅垭口]에 가고 싶어했다. 민가를 운영하던 이가 차편을 알아봐주겠다고 했지만, 구할 수 없어 다음날에야 출발하게 되었다. 그렇게 상목거 민가에서의 조용한 오후가 지나갔다. 민가에서 간단히 차려준 식사는 장족 고유의 음식이었다. 야크 젖으로 끓인 차에서는 시큼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났고, 치즈에서는 이제까지 맛보지 못한 농후한 맛이 났다. 개인적으로 유제품은 잘 먹지 못했던 지라 골골대며 밀가루 빵만 먹었다. 이때까지도 나는 이곳에 내 휴가를 사용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저녁에는 비가 왔다. 밤새 올 것 같아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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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1 - [1일차] 9월 2일, ICN-CTU

2016/09/11 - [prologue] 그렇게 다시 중국으로 갔다


[1일차] 9월 2일, ICN-CTU

2016. 9. 11. 20:33

9월 2일 금요일.


이 날은 거의 하루종일 서비스 관련 보도자료를 작성했다. 회사에 대언론 창구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이걸 내가 왜 쓰고 있어야 하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튼 뭐 그랬다.


글을 쓰는 건 일이어도 즐겁다. 현상이 나의 언어로 번역되어 타인의 논리구조에 들어가고, 타인이 제대로 이해하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일이다. 여행과는 큰 관계가 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진작에 말과 글을 다루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해외영업이니 경영이니 하는 것들에 억지로 관심을 가지며 스스로를 속여왔던 날들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저녁 8시 출발 비행기라, 오후 5시 45분에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인천공항행 직통열차를 타야 했다. 팀장께 양해를 구하고 30분 일찍 회사를 나섰다. 이미 아침에 회사에 오면서 50리터짜리 가방에다 등산화를 신고 간터라 팀장도 어느 정도 짐작을 하셨을거다. 반차를 써도 됐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이것도 내 복이다.


아슬아슬하게 기차를 타고 공항에 가는데 거래처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분명히 9월 첫 주에 휴가가 잡혀 있으니, 급한 건이 있으면 미리 좀 달라고 그렇게 부탁하며 신신당부했건만 이런 식이다. 차주까지 물건을 받아야 하는데 문제가 없겠냐고 묻는다. 노력은 해보겠으나 장담할 수 없다고 했어야 했지만, 또 멍청하게 '문제없도록 하겠다'고 실실 웃으며 말했다. 이 일을 물려주고 떠난 선임자는 내게, '해달라는 대로 다 해 주지 마세요. 착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라 당부했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본인부터 그렇게 모질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바보같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그랬기에 그녀가 참 좋았다. 9개월 정도, 아니 파트를 옮긴 이후니 대략 6개월 정도 밖에 시간을 공유하지 못했지만 그녀가 떠날 때에 매우 아쉬워 했던건 모두 다 그녀의 품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공항에 들어와 라운지로 향했다. 인터넷도 대략 되지 않는 오지로 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휴대폰과 간단히 웹 서핑을 하기 위한 LTE라우터 외에는 네트워킹이 가능한 장비를 일체 지참하지 않았다. 짐도 줄여야 했고. 다행히도(?) 회사 업무망은 어디서든 동일한 환경을 제공하도록 가상머신에서 구동되고 있었기에, 라운지 내 컴퓨터에 앉아 간단히 거래처의 급한 부탁을 처리했다. 시간이 없어 미처 다 하지 못한 일은 다른 팀의 선배에게 부탁했다. 사실 응당 부재시에 업무를 처리할 대행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회사는 '사람이 적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어서 백업할 사람이 없다. 이건 한 번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다.


탑승시간이 임박하자 여행을 함께 가자고 한 '누군가'에게 어딘지 묻는 전화가 계속 왔다. 라운지에서 일하고 있고, 곧 가겠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바쁜 사람이다. 나와 함께 같은 회사에서 인턴을 했지만, 둘 다 전환이 되지 못했었다. 다행히 그는 다른 회사에 잠깐 다녔다가 결국에는 인턴을 했던 회사에 입사를 했다. 누군가는 그를 부러워 하는 내게 늘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매일 새벽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한다고 했다. 이번 여행이 무계획에 가깝게 진행된 것도 그의 부재가 컸다. 원래 시작부터 그렇게 하자 - 빡빡하게 계획에 매달리지 말자 - 고 합의하긴 했지만, 내심 그도 나도 두려웠는지 막판에 뭔가를 찾아서 막 던져 놓긴 했었다. 사실 상대적으로나 - 절대적으로나 - 그에 비해 여유가 많았던 내가 그를 도왔어야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짜증 한 번 내지 않은 그에게 고맙다. 집에 돌아와 이렇게 여유있게 여행을 회상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공헌이 지대하다. (이런 매우 뻔뻔하게 보이지만 말이다.)


15분 전에 게이트에 갔다. '누군가'와 그의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친구를 'K'라고 부를 생각이다. 누군가도 'L'이라 지칭하자.


K의 첫인상은... 글쎄. 그는 까무잡잡하고 자그마한 친구였다. 기억나는건 눈이 선했다. 말씨도 나긋나긋했다. 그리고 열흘의 여행을 마친 후에 나는 K의 팬이 되었다. 그는 여행기간 내내 단 한 번도 찡그린 적이 없다. 여행기간 중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그는 그 상황을 좋게 이해하려고 했다. 어떤 사안이 던져졌을 때 먼저 위기로 판단하고 분석부터 하는 나와는 달리 그는 그야말로 '이 역시 지나가리라'며 유연하게 넘는 친구였다. 여행 끝까지 얼굴 붉힐 일이 없을 수 있었던 것은 K의 덕이 컸다.


비행기가 떴다. 지루한 3시간 여가 흘렀다. L과 K 외에 여행을 함께 하기로 한 L의 또다른 친구는 직항편이 아닌 베이징 경유편으로 청두[成都]에 온다고 했다. 원래 J - 이제 그를 J라고 부르자 - 의 비행기는 우리보다 일찍 도착해야 했지만, 중국의 공항이 언제나 그렇듯 연착 때문에 우리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불안했는지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자신이 도착했다는 한 마디를 보내기 위해 하루치의 데이터 무제한 로밍을 신청했다고 했다. 중국 국적기가 발착하는 제2터미널 게이트에 갔는데 까만 치마를 입고 손에 롯데면세점 봉투를 든 자그마한 아가씨가 사뭇 초조하게 서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저 사람이 아니냐고 L에게 물으려는 찰나, 그 아가씨가 외마디 비명을 터뜨렸다. 그가 J였다.


J의 첫인상은, 솔직히 말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 순간의 기억이 모두 날아가버린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유독 이성에 대해 이미지를 구축하지 못하는 내 자질의 부족함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그는 어른스러웠다. 그리고 열흘 동안 나는 그 어른스러움의 은혜를 많이 입었다. J에 대해서는 첫인상을 논하는 것보다 열흘 동안 내가 그를 보며 느꼈던 것들을 쓰는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L과 K, J 모두 배울게 많았다. 공자께서 이르시듯 삼인행이면 필유아사다. [子曰三人行必有我師焉] 삼인 중 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부터 배우라는 뜻이지만, 이 셋은 모두 선한 스승이었다. 아무 목적도 없이 떠난 여행에서 행복하게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 한편으로는 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해서 되돌아 볼 수 있었던 것은 - 이 셋의 덕이 컸다.


다음날 일정을 위해 호텔에 들어가 새우잠을 청했다. 이제 정말 내일부터 긴 여정이 시작될 것이었다. 청두의 고도는 487미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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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1 - [prologue] 그렇게 다시 중국으로 갔다


프랑크푸르트의 숙소에서 편안히 자고 일어나니, 어제 일이 꿈만 같다. 거의 24시간 동안의 이동. 나도 코펜하겐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갈 쯤엔 거의 죽을 듯이 피곤해했는데, 같이 간 엄마는 오죽했을까 싶다. 그래도 잘 주무시고 아침에 좋은 컨디션 보이시는걸 보니, 아직까진 괜찮으신 모양이다.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를 오는 길은 SAS 베이징 경유편을 이용했다. 베이징과 코펜하겐에서 두 번이나 환승하는 비행편이기 때문에 나도 출발 전에 많은 정보를 검색해서 도움을 받았는데, 경험한 입장에서 검색해서 얻은 것들과 내가 실제로 경험한 여정의 차이를 간단히 서술한다.

첫번째 차이는 인천공항 아시아나카운터에서 있었다. SAS가 국내 취항을 하지 않은 항공사이기 때문에, 이 항공사의 비행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가까운 베이징이나 도쿄로 먼저 이동해야 한다. 이때 아시아나를 비롯한 스타얼라이언스 계열의 항공사와 대한항공 등을 이용할 수 있는데 내가 검색해 봤을때는 아시아나나 에어차이나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체크인 시 인천부터 프랑크푸르트 까지의 전 여정을 발권한다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달랐다. 아시아나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하니, 짐만 최종목적지인 프랑크푸르트까지 연결해주고 SAS 보딩패스는 첫번째 SAS 탑승공항인 베이징 쇼우두공항에서 받으라고 했다.


베이징에서 환승을, 긴장할 필요 없다

일단 쇼우두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입국신고서를 쓰라고 나눠주는데, 환승고객은 작성할 필요가 없으니 안 받아도 된다.

스타얼라이언스 계열의 경우 대부분 3터미널에 도착하고, 대한항공의 경우 2터미널이 도착 터미널이다. 그런데 SAS는 3터미널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대한항공의 경우, 터미널 간 이동을 반드시 해야하는데 터미널 간 이동 셔틀버스가 입국장 바깥에 있다는게 함정이라면 함정. 따라서 인천-베이징 대한항공 탑승자의 경우에는 일단 입국심사대를 거쳐 입국장 바깥으로 나왔다가 3터미널로 이동한 후 SAS 카운터에서 보딩패스를 발권받고 다시 입국심사를 받아야 한다.[각주:1] 따라서 SAS로 환승할 생각이라면 애당초 예약부터 이를 감안하는게 좋을 것 같다.

인천-베이징 대한항공 탑승자의 베이징 공항 SAS 환승 관련 포스트 : http://j.mp/iEsbpt

인천-베이징 구간의 스타얼라이언스 계열 이용자의 경우, 일단 비행기에서 내리면 한글로 '환승'이라 써 있는 팻말이 있다. 이를 쭉 따라가다보면 국제환승자를 위한 전용 입국심사대가 있는데, 그 전 쯤에 환승센터라고 작은 카운터가 있다. 보딩패스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여기에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짐표를 제시하면 나머지 베이징-코펜하겐, 코펜하겐-프랑크푸르트 구간의 보딩패스를 발권해 준다.


베이징 쇼우두 공항에서 환승을 위해 기다리던 중 찍은 사진

▲ 베이징 쇼우두 공항에서 환승을 위해 기다리던 중 찍은 사진



이제 이 보딩패스를 받고, 국제선 환승객 전용 입국심사대를 거치자. 중국의 관(官)들이 무뚝뚝하거나 불친절한거야 원래 유명하니 굳이 언급하진 않는다. 내 경우에는 별 것을 묻진 않고, 다만 베이징까지 타고 온 비행기의 편명을 묻고는 사진촬영을 하더니 보딩패스와 여권에 입국도장을 찍어줬다. 말하기 귀찮은 사람들은 그냥 여권과 보딩패스, 그리고 이티켓을 함께 제출하면 될 것 같다.

입국심사대 뒤 편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바로 보안검색대를 마주한다. 보안검색대 초입에 데스크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다시 여권과 보딩패스를 제출해야 한다. 환승이라 그런지 매우 까다로운 보안검색을 거치는데, 내 경우엔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 가방 안에 든 것을 모두 꺼내서 다시 스캔을 하기도 했다. 애바카스나 토파즈 같은, 항공 예약 및 발권 프로그램(CRS) 홈페이지에 가면 "베이징 환승편의 경우 체류시간이 최소 3시간 이상 되도록 발권하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아마도 이렇게 까다로운 보안검색 탓이 아닐까 싶다.

보안검색대를 거치면 이제 베이징 출국장과 연결이 된다.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와 중국 패스트푸드, 피자헛 등이 있고 별로 살 것도 없어보이는 면세점이 몇 개 있다. 이제 여기서 기다렸다가 코펜하겐 행 비행기를 타면 되는거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 3시간은 기다려야 할텐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쇼우두 공항 3터미널 전역에서는 와이파이가 무료다. 키오스크에서 여권을 스캔하면 최장 3시간까지 이용가능한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발급해준다.[각주:2]

이래저래 보내다보면 이제 코펜하겐 행 여객기의 탑승수속을 알리는 방송이 들려올 것이다. 이제 다시 출발하자.


코펜하겐에서 환승, 근데 이거 너무 간단하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북구의 영역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비행승무원들이 한국 국적기처럼 모두 묘령의 여인인 것은 아니다. 더러는 남자도 섞여 있다. 대부분의 탑승객들은 방금 전의 나처럼 이 점을 꼭 짚고 넘어가는데, 사실 이건 한국과 북구가 가진(엄밀히 말하면 유럽이 가진) 전통적 성역할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그리고 물론 한국의 성 인식은 매우 고리타분하고 후지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각주:3] 항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무조건 묘령의 여인이어야 할 이유는, 더욱이 획일화되고 타율적인 미의 잣대에 의해 특정 수준 이상으로 인가받아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비행기를 타고 가다보면 거의 2시간 간격으로 먹을게 제공되는데, 먹을 수 있을때 먹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된다. 내부의 안내 책자를 보니, SAS의 경우 국제선은 비알콜음료와 먹을거리는 무료로 제공되지만 알콜음료는 유료로 제공되지만 유럽 내 항공편의 경우에는 먹을거리와 비알콜음료가 유료로 제공된다고 하니 말이다.


비행 중 콕핏에 장착된 카메라로 바깥을 구경할 수 있다.Apple | iPhone 3GS | Normal program | Average | 1/15sec | F/2.8 | 3.9mm | ISO-160 | No flash function | 2011:06:08 17:52:14

▲ 비행 중 콕핏에 장착된 카메라로 바깥을 구경할 수 있다.



코펜하겐 이후 환승편에 대한 안내는 비교적 잘 되는 편이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도 내부 스크린을 통해 수 번 환승편에 대한 안내(출발시각, 탑승게이트)를 해주고, 비행기에서 내려도 공항 곳곳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환승편에 대한 안내를 접할 수 있다. 역시 환승구역을 알리는 팻말을 따라 걷다보면 보안검색을 거치고, 이후 입국심사까지 받으면 환승 준비 완료. 입국신고서는 요구하지 않으므로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 앞서 베이징 공항에서 한 것의 반복이기 때문에 쉽게 느껴질 것이다.

코펜하겐 공항은 굉장히 작다. SAS의 주요 거점 공항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내부 시설은 꽤 알차게 들어서 있는 편이다. 공항 자체가 작기 때문에 카페테리아의 테이블 배치도 굉장히 효율적으로 되어 있고, 게이트 간 이동경로도 꽤 준수하게 설계되어 있다. 북구 특유의 실용성이 눈에 띈다고 하면 오버일지도 모르지만, 내겐 그렇게 느껴졌다. (아마 코펜하겐으로 오는 동안 내내 '노르딕 모델'을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코펜하겐-프랑크푸르트 구간의 탑승장. 사람이 많이 서 있다. 전체적으로 작은 느낌이다.

▲ 코펜하겐-프랑크푸르트 구간의 탑승장.



프랑크푸르트에서 숙소로 가자

자, 이제 목적지 프랑크푸르트다. 집에서 나온 시각을 생각해보니 벌써 24시간 동안의 이동. 가격 때문에 이 항공편을 선택했지만, 차라리 나처럼 스트레이트로 올 거라면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환승을 한 번만 하거나 아니면 직항편을 타는게 이후를 생각하면 훨씬 수월할 것 같다. 물론 SAS 최고의 장점은 편도당 1회에 한해 중간기착지에서의 스탑오버가 무료라는 것이니, 유럽 오는 김에 코펜하겐도 들러봐야겠다 싶은 사람들은 코펜하겐에서 며칠 묵은 후 다시 이후 최종목적지로 간다면 훨씬 덜 피곤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비행장 중간에서 내려 터미널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 버스 입구와 하선을 위한 계단이 보인다.Apple | iPhone 3GS | Normal program | Average | 1/20sec | F/2.8 | 3.9mm | ISO-80 | No flash function | 2011:06:08 21:13:57

▲ 비행장 중간에서 내려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솅엔협약 때문에 코펜하겐-프랑크푸르트 구간은 마치 국내선처럼 운영된다고 하고, 그 때문인지 하선은 비행장 가운데에서 했다. 우리나라 지방공항에서 국내선 탑승하면 하는 것 같이 말이다. 내려서도 따로 입국심사같은건 받지 않아도 됐다. 짐을 찾기 위해 배기지 클레임(Baggage Claim)이라 적힌 팻말을 따라 나가다보니 S-Bahn과 연결된 공항 로비로 나와 당황했는데,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게 맞다고 한다. 한 층 내려가면 짐을 찾을 수 있는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고 있고, 이걸 챙겨 세관구역을 지나치면 이제 완전한 도착이다.

다시 한 층 내려가면 프랑크푸르트 시내로 가는 S-Bahn을 탈 수 있다. 유레일이나 독일 패스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혹은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개시하지 않았다면 탑승 플랫폼에 있는 자동판매기를 통해 표를 구입하면 된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부족한 점이 있다면 덧글로도 답변할테니 많이많이 질문해주시라. 
  1. 짐은 아마 연결이 될 것 같은데, 이건 인천 출발 때 대한항공 카운터에 물어보면 될 것 같다. 연결이 안된다면 짐을 찾고 SAS 카운터에서 보딩 패스 발권시 다시 부쳐야 하는 수고가 뒤따르겠지. [본문으로]
  2. 노파심에서 이야기하지만 아마도 이를 통해 접속한 기록은 모두 중국 당국이 보관하게 될 것이다.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적힌 영수증에도 선명하게 'real name'이 적혀 있다. [본문으로]
  3. 사실 아저씨들 이야기 중에 "아시아나가 아직까지 대한항공에 밀리는 이유"로 "대한항공 승무원들이 아시아나보다 인물이 낫다"는 것도 있으니 할 말은 다 한 셈이다. [본문으로]


  출국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은 간단하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이야기하면 비행기표, 여권, 돈, 자신감만 있으면 열흘 정도의 여행은 우습게 다닐 수 있다. 그 기간을 40일로 늘려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만, 돈을 아끼기 위해 옷가지와 같은 몇가지가 추가될 뿐이다.



(1) 여권 발급

  여권의 경우에는 8월부터 기존의 종이여권이 전자여권으로 바뀜에 따라 대리발급제도가 폐지되었다. 이 말인 즉슨, 이전에는 가족이나 여행사를 통해 내가 직접 가지 않아도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게 안되고 본인이 직접 신분증을 들고 지방자치단체를 방문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여전히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법정대리인이나 2촌 이내의 성인 친족이 대리 발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2010년 1월을 기해서 12세 미만의 경우에만 대리신청을 받는다고 한다. 자세한 사항은 외교통상부의 해외안전여행사이트(http://www.0404.go.kr/passport.php)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2) 환전

  환전. 중요한 문제다. 특히나 지금처럼 환율변동성이 높은 시점에는 어떤 타이밍에 환전을 하느냐가 여행 전체를 좌우한다. 아무래도 물가가 비싼 나라이기 때문에, 높은 환율로 환전을 했을시에는 현지에서 활동의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환율을 일반인이 예측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우리는 낮은 환율에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현찰수수료[각주:1]를 많이 우대받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많은 여행객들이 자주 이용하는 현찰수수료 우대방법은 외환은행이 운영하는 '환전클럽'(외환은행 홈페이지, http://www.keb.co.kr)이 있다. 환전클럽에는 일종의 '공동구매'의 메커니즘이 적용된다. 1) 일정 인원 이상이거나, 2) 일정 금액 이상일 때 최대 50%까지 현찰수수료를 우대해 주는 것이다. (물론 USD, JPY, EUR과 같은 주요통화에 한해서다. 기타통화의 경우에는 낮은 우대율이 적용된다.)

  환전클럽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이유는 우대받기가 쉽기 때문이다. 많은 은행들이 모두 비슷한 정도의 환전우대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지만, 대개 파격적인 우대를 받기 위해서는 파격적인 액수의 돈을 환전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이 체감할 정도로 많은 우대를 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외환은행에서는 그런 맹점을 공동구매 시스템의 도입을 통해 어느 정도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에 다른 은행들도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 참여자가 얼마 되지 않아 역시나 실질적인 혜택을 보기는 어렵다. 현재 외환포털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 외환은행이기 대문에 그만큼 빠른 시일 내에 혜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외에 각 은행마다 지점별로 제각기 마케팅의 일환으로 파격적인 우대를 해주기도 한다. 일례로 우리은행 성균관대 지점에서는 청약저축 홍보를 하면서 80% 환율 우대권을 끼워넣어 준 적도 있다.



(3) 비행기표

  비행기표를 구매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여행사에 들러 구매하는 방법과 직접 손품을 팔아 인터넷 상에서 구매하는 방법. 사실 둘 모두 동일한 항공사들로부터 가격 데이터베이스 제공받아 사용하므로 가격에는 별 차이가 없다. 다만 맨투맨이 아니란 점에서 인터넷에서 구매하는 것이 조금 쌀 뿐이다. 여행사야, 상담원이 친절하게 응대해 줄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인터넷 상에서의 항공권 구입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인터넷 상에서 항공권을 구매할 때는 두 가지를 유의해서 보아야 한다. 유류할증료 및 TAX와 경유/직항 여부다.


1) TAX

  몇몇 항공사의 경우에는 비행기표 가격 자체는 저렴하지만, TAX와 유류할증료가 비싼 경우가 있다. 온라인 여행사의 경우 대체적으로 항공권 가격을 기준으로 정렬하므로, TAX와 유류할증료를 보지 않고 그저 항공권 가격을 기준으로 구매할 경우 오히려 아랫 목록에 있는 것보다 비싸게 사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을 보자.

  인천에서 런던으로 가는 항공권을 검색해 보았다. 제일 저렴한 항공권은 간사이공항을 거쳐가는 일본항공 거다. 1인기준 511,500원인데 다른 항공사의 항공권들이 6, 70만원 정도 하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저렴한 가격이다. 그런데 이것만 보고 사면 반드시 낭패를 보게 되어 있다. 눈을 옆으로 돌려 TAX를 클릭해 보자.




  TAX가 886,300원이다. 항공권 가격이 511,500원 이었으니, 실제로 이 항공권을 구입하려면 1,397,800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래쪽으로 목록을 내려서 다른 항공사의 항공권을 찾아보자.

  대만을 거점으로 삼고 있는 에바항공의 타이페이 경유편이 검색되었다. 미확정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항공권 가격이 728,000원이다. 이전 JAL과 비교하면 대략 20만원이나 비싸다. 그렇다면, 이 항공권의 TAX는 어떨까?





  에바항공의 TAX는 JAL의 거의 절반값인 466,900원이다. 그러니까 에바항공의 항공권을 구입하면 728,000원 + 466,900원 = 1,194,900만 지불하면 되는 것이다. 항공권의 가격은 20만원이나 비쌌지만 TAX까지 포함하고 보니 무려 20만원이 저렴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항공권을 살 때에는 항공권 그 자체 가격만 볼 것이 아니라, TAX까지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2) 경유 or 직항

  대체적으로 국적기인 아시아나, 대한항공의 경우에는 직항편이고 그 외 타 국가를 거점으로 한 외국항공사의 경우에는 경유편이다. 직항편이 경유편에 비해 좋은 점은 중간에 타국의 공항에서 시간을 지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기내에서 한국말이 통한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직항편은 경유편에 비해 대체적으로 항공권 가격이 비싼 편이다. 반면, 경유편의 경우 중간 기착지에서 며칠 묵을 수 있는 이른바 '스탑오버'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쉽게 말해, 유럽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오사카의 간사이 공항이나 도쿄의 나리타 공항을 들러서 온다면 나리타나 간사이에 도착해 바로 인천행 비행기를 타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 도착해서 며칠 여행하다가 인천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다. 즉, 한 번 여행을 떠나서 두 곳을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물론 스탑오버를 위해서는 추가비용을 내야하며, 몇몇 항공사의 경우에는 경유편이라 하더라도 스탑오버를 제공하지 않는 곳도 있으니 구매 전에 꼭 확인해 보아야 한다.


  더불어 인터넷 상에서 판매되는 특가 항공권의 경우에는 날짜 변경이나 취소 시에 일정 금액의 수수료를 물어야 한다. 게다가 종종 마일리지를 절반만 주거나, 아예 주지 않는 항공권도 있다. 제값을 주고 산 항공권의 경우 이런 일이 거의 없다는 걸 생각하면, 과연 특가가 특가인지 고민해봐야 할 것도 같다.


※ 버짓Budget

  버짓, 저가항공은 말 그대로 저렴한 항공 교통수단이다. 특가 행사를 할 때에는 런던 - 파리 간 항공권이 TAX를 제외하고 단 1유로라니, 얼마나 싼 지 이해가 될 것이다. 버짓의 등장으로 유럽인들의 주말이 바뀌었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 버짓이 저렴한 이유는 승객 수송료 외에 모든 것이 유료기 때문이다. 20kg 미만의 손가방 한 개 외의 짐을 부치는 데에도 돈을 내야 하고, 심지어 기내식을 먹을 때도 돈을 내고 먹어야 한다. 게다가 중심공항이 아니라 변두리 공항을 이용하기 때문에 도시로 들어올 때 불편한 점도 있다.[각주:2] 그러나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경쟁업체 때문에 버짓 항공사들은 피나는 비명을 지르고 있고 덕분에 소비자들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또한 유럽의 기차표 가격이 해마다 오르고 있어, 점점 버짓과 가격차가 줄고 있다. 이미 런던 발 유럽 본토행을 꿈꾸는 여행자들은 유로스타보다 버짓을 많이들 이용한다고.

  버짓의 경우에는 일찍 예약할수록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유럽여행 계획이 비교적 확실한 사람이라면 일단 만사 제쳐두고 버짓 항공권을 구매하는 것이 이익이다.




(4) 짐싸기

  여권을 발급받고 환전을 하고, 비행기표를 샀으면 이제 출국 준비의 90%는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부터 준비해야 할 것은 당연히 짐을 싸는 일이다. 얼추 짐을 싸는 방법에 대해서는 시중의 모든 가이드 북이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니,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1) 가방

  먼저 가방. 요새 대세는 캐리어다. 바퀴가 있다는 장점 때문에 가방의 무게를 땅에게 전가할 수 있어 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캐리어의 경우 배낭에 비해 높은 편의성을 자랑한다. 유럽의 기차역들이 낡아, 플랫폼까지 들고 걸어가야 한다는 단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유럽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점점 캐리어를 위한 편의시설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새로 지은 역사 대부분은 에스컬레이터를 가지고 있으며, 최근에 지어진 역사의 경우에는 마트에서 볼 수 있는 무빙워크를 지었거나 아예 엘레베이터만 가지고 있는 역사도 있다. 지은지 오래된 역사들도 짐을 나르기 위한 컨베이어 벨트를 장착하는 곳이 늘어나서 예전처럼 캐리어를 들고 높은 계단에 좌절해야 할 일이 적어졌다. 게다가 동양여성들의 경우에는 계단 앞에서 난처해 하는 제스츄어만 취하면, 주변의 서양남성들이 들어다 올려주는 센스를 발휘하므로 힘들 일이 별로 없다. (대신에 동양남성들은 인기가 없다는 거.) 다만, 캐리어를 가지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경우에 캐리어를 세워둘 공간이 마땅치 않아 현지인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 있다는 점과 캐리어 자체의 부피 때문에 작은 크기의 코인락커를 사용할 수 없어 비싼 돈을 주고 큰 크기의 코인락커를 써야 한다는 점을 단점으로 들 수 있겠다.

  반면 배낭의 경우에는 높은 기동성을 자랑한다. 숙소를 구하지 못해 정처없이 시내를 활보하게 되더라도 배낭은 늘 내 등에 딱 붙어 있기 때문에 짐 높을 곳을 찾아야 하는 그런 귀찮음이 없다. 게다가 의외로 부피도 적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뒷사람만 조심하면 민폐를 끼칠 염려가 없다. 무엇보다 '배낭여행'이라는 클래식함을 만끽할 수 있으며, 현지인들에게 '나는 배낭여행객이에요'라는 인상[각주:3]을 줘 약간의 어드벤티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게다가 크기도 짐 싸는 법에 달라져서 캐리어보다 많은 짐을 넣어도, 잘 만 싸면 부피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장시간 동안 질 경우 허리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점이나 체력이 고갈되었을 때도 어쩔 수 없이 지고 가야한다는 점과 기본적으로 잠금장치가 있는 캐리어와 달리 별도의 잠금장치를 구매해야 한다는 점이 배낭의 단점으로 지적된다.

  이 두 종류 가방의 장점만 모은 것이 바로 끌랑인데, 생각보다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아직까지의 중론이다.

  개인적으로는 다음에 다시 유럽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그 때는 캐리어를 이용할 생각이다.


2) 노트북

  여정 동안 짊어지고 다닐 만큼의 열정이 있다면, 반드시 가지고 가야 할 물품 중 하나다. 대다수의 호스텔의 경우 유료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민박집의 경우에도 사람 수에 비해 컴퓨터의 수가 적은 경우가 많아 사용하기에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현지 숙박시설이 무선인터넷을 무료나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어, 노트북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꽤 자유롭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 인터넷이 사용불가능한 환경이라 할지라도 기차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할 때에 게임을 한다거나 음악을 듣는 등의 용도로도 쓸 수 있다. 초고속 열차의 경우에는 대개 탁자가 있는 좌석에 콘센트가 있어 전원 사용에도 어려움이 없다. 실제로 나 역시 이번 여행에 노트북을 대동하였으며, 덕분에 현지에서 살아있는 여행기를 작성해 올릴 수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많은 외국 배낭여행객들도 노트북을 가지고 다녔다. 혹시 여행을 위해 노트북을 산다면 - 물론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 UMPC나 12인치 이하 노트북을 구매한다면 좋은 선택이 되리라 생각된다.

  다만, 분실 및 파손의 위험이 있고 노트북 무게가 만만치 않으며 (가벼운 것도 대략 1kg 선) 현지에서 노트북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소유자가 고칠 능력이 없다면 그대로 짐이 되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아이템 중 하나다.


3) 복대

  누군가 복대를 여행필수품라 하던데, 경험해 본 바 그러한 찬양은 좀 오버다. 요새는 복대보다 목걸이형 지갑이 더 선호되는 것 같다. 굳이 복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몸에서 가장 가까운 데에 보관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느 것이든 괜찮다. 중요한 것은 복대냐 목걸이형 지갑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내 소지품에 신경을 쓰고 있느냐의 문제다. 유럽의 소매치기들은 자기 소지품에 신경 쓰는 사람의 지갑을 털지는 않는다. (어디든 그렇지만 -ㅅ-)


4) 주머니칼

  있으면 편리하고, 없어도 되는 존재다. 오히려 있는 것이 불편할 때도 있다. 유럽의 많은 관광지들이 공항 보안대 검색 수준의 소지품 검사를 하기 때문에 종종 주머니칼은 재검색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5) 신발

  현지에서 이성을 낚는다거나 혹은 패션쇼를 할 사람이 아니라면 운동화 한 켤레면 충분하다. 그러나 나는 꼭 코디에 맞춰 바꿔 신어야 겠다는 사람은 본인 능력 여하에 달렸다. 나는 크룩스 한 켤레로 40일을 다녔다. 크룩스는 여러모로 편리하지만, 정작 발 건강에는 별로였다. 여행 말기의 내 발은 걸레 수준이었다. 발은 찢어져서 욱신거리고, 때는 박혀 지워지지도 않았다. 때문에 어지간하면 양말+운동화 조합이 최고로 편한 여행을 다닐 수 있는 테크트리 되시겠다. 참고하시라.


6) 비상약품과 렌즈용품

  필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밴드, 후시딘이나 마데카솔과 같은 상처치료용 연고, 종합감기약, 소독약, 지사제다. 특히나 물갈이를 심하게 한다면 지사제는 반드시 가지고 가야 한다.

  렌즈의 경우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렌즈를 끼고 다녔다. 특히나 한국인들이 멋쟁이여서 그런 것 같다. 물론 현지의 단백질제거제나 식염수의 가격은 꽤 비싸다. 그러니 고런 것들은 챙기는 게 낫다. 기내 반입범위인 1000ml를 생각해서 잘 분배하여 가지고 타시라.


7) 여행회화책

  여행회화책은 머리에 집어넣으면 된다. 그것도 그냥 영어회화책이면 된다. 얼추 영어회화면 역이나 관광지와 같은 주요지점에서 살아남는데 지장이 없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는 물론이거니와, 영어 안 통하기로 악명높은 프랑스에서도 여행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주요지점에는 영어가능한 직원들을 배치하고 있다. 양코쟁이들의 말이 싫다면, 일본어도 괜찮다. 일본어는 유럽에서 동양 최고의 언어다. 어떤 박물관에든 일본어로 된 브로슈어와 오디오가이드가 있고, 많은 곳에 일본어가 유창한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다. 심지어 관광지 주변의 레스토랑에서도 일본어가 통할 정도다.
  잠깐 딴 이야기를 할 텐데,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하면 단순히 '일본의 경제력이 높아서'라고만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그런 생각이 MB식 사고방식이다. 모든 것을 경제로 치환하는 단순한 사고방식. 서양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애착을 갖는 것은 일본의 경제력이 높기도 하지만 그들이 자국 외의 문화시설에 투자하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몇 번 이야기했지만, 영국의 내셔널갤러리에는 일본의 노무라 증권이 지어준 전시실이 있고(일본관이 아니다.) 폼페이 발굴에는 일본 자본이 투입됐다고 한다. 약간 벗어나지만, 일본이 UN에 내는 분담금 역시 세계 수위권이다. (그것 때문에 일본이 자꾸 안보리 이사국이 되고 싶어하는거다. 생각해 봐라, 돈 많이 내는데 자리 하나 안 주면 누가 좋아하겠냐.) 그저 돈돈돈하면서 눈 앞의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서 타국은 차치하고서라도 자국의 문화산업에 투자 하나 안 하는 어떤 나라랑은 꽤 비교되는 나라다.


  오늘 포스팅은 여기까지. 빠진 게 있으면 지적바란다. 궁금한 게 있어도 문의 바란다.
  1. 현찰수수료란, 환율표를 보면 여러가지 항목이 있는데 그 중 '매매기준율'과 '살 때 환율'의 금액차를 일컫는다. 국제외환시장에서 거래의 기준으로 삼는 환율이 매매기준율이고, 거기에 각 은행마다 현찰수수료를 붙여 살 때 환율을 이루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전시 수수료 우대'라는 것은 이 매매마진율을 얼마나 깎아주느냐를 의미한다. [본문으로]
  2. 외곽 공항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이미 시중의 가이드북들이 잘 설명하고 있다. 나는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 각 국가별 포스팅 때 보충할까 한다. [본문으로]
  3. traveller와 별도로 배낭여행객을 지칭하는 backpacker란 단어가 있다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 어디서나 배낭여행객은 '돈이 없지만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이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배낭여행객 중 다수가 학생이란 데서 종종 정많은 현지인들에게 인심을 얻기도 한다. 누구든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많은 것을 얻어가려는 사람에게 박수를 쳐 주지 않겠는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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