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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記/2016, 쓰촨-동티베트

[2일차] 9월 3일, CTU-KGT-상목거(上木居)

9월 3일 토요일.


이 날의 기억은 그다지 좋지 않다. 우선 호텔에 들어간지 세 시간도 되지 않아 일어나야 했다. 청두부터 첫 목적지인 캉딩까지는 장거리버스로 대략 4시간 이상 소요될 것이었기에, 짧은 기간 동안 압축적으로 시간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보다 빠른 탈것이 필요했다.


캉딩공항으로 떠나는 비행기의 시간은 오전 7시. 쓸데없이 꼼꼼하기로 소문난 중국의 항공보안검색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었다. 잠을 제대로 잔 것인지도 모르게 일어나 다시 공항으로 떠났다. 아직까지는 초반이니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고.


한 시간을 날아 내린 캉딩 공항은 해발 4,300미터에 위치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공항이라고 했다.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탈의실과 의무실. 그땐 몰랐지만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올라왔을 때에 겪어야 할 두 가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중국의 4대 화로라 불리는 청두와는 다르게, 캉딩의 기온은 한 자리수로 내려갔다. 짐을 찾고 서둘러 가방에서 후리스를 꺼내 입었다.


공항을 나섰더니 자기 차를 타라는 호객꾼들의 아우성이 빗발친다. 인근의 대도시인 캉딩 현이나 혹은 중간 경유지인 신두차오[新都橋]를 제시했지만, 우리는 설산을 보기 위해 상목거로 가야 했다. 목적지를 말하니 수많은 호객꾼들이 다 떨어져나가고 단 한 명만 남았다. 젊은 청년이었다.


상목거까지의 가격은 편도 1,000위안이 조금 넘었던 것 같다. 대략 20만원 정도 되는 건데, 그는 돌아올 때에 빈 차로 돌아와야 하니 그 정도는 충분히 받을만하다고 주장했다. 이럴 것 같아 한국에서부터 차량을 수배해야 했지만, 나와 L 모두 막판에 서로 바빠 그럴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했다. 상목거까지는 정규 교통수단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기도 했고, 또 넷이 나누면 어찌되었든 큰 돈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바이두 지도를 꺼내 루트를 보여줬더니 파란 색으로 표시된 비포장도로를 제외하면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분명 이때에 후회했어야 했다.


상목거 까지의 길은 좋지도 않았다. 사실 나는 이때까지 이 곳에 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독일이나 일본의 도로를 달릴 때처럼 끝없이 펼쳐지는 (한국과는 다른) 풍광이 있지도 않았다. 가끔 티베트인들의 건물이 보이긴 했지만, 우리로 치면 흔히 시골 길가에서 보이는 슬레이트 지붕을 쓴 초라한 집 정도라 특별히 무슨 차별성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덩치 때문에 앞에 탄 나로서는 3시간 반을 뜬 눈으로 보내야 했는데 - 그것이 조수석에 탄 자의 의무라 생각하기 때문에 - 이런 사실들 때문에 그 시간은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 지루함도 간선도로까지였다. 지루함은 이내 불안함으로 바뀌었다. 성도(省道, 우리로 치면 '지방도')에서 갈라져 나와 상목거로 들어가는 길은 모두 비포장 도로였다. 청년의 차는 올해 뽑은 세단이었다. 크기는 우리나라 기준 경차와 준중형차의 사이. 이 차가 비포장 도로를 달린다는건 사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금만 길이 나빴다 치면 길 가운데의 낙석이 차량의 바닥을 긁었다. 비가 왔는지 진창이 이어졌고, 어떨 때는 차가 나가지 못해 나를 제외한 뒤 셋이 내려야 겨우 지나가는 일도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때 그의 차는 마치 10년 정도 탄 차량 같았다.


우리가 묵은 곳은 상목거의 민가였다. 난방이 되지 않았고, 수압은 낮았으며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단 한 명도 불평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유일한 여성이었던 J가 몹시 싫어할 줄 알았는데 그 역시 단 한 마디도 나쁜 소리를 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 때문에, 나중에 나는 L에게 J의 기특함에 대해 장광하게 말한 바 있다. (물론 이는 비뚤어진 젠더관념의 산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L은 도착하자마자 설산을 볼 수 있는 즈메이야커우[子梅垭口]에 가고 싶어했다. 민가를 운영하던 이가 차편을 알아봐주겠다고 했지만, 구할 수 없어 다음날에야 출발하게 되었다. 그렇게 상목거 민가에서의 조용한 오후가 지나갔다. 민가에서 간단히 차려준 식사는 장족 고유의 음식이었다. 야크 젖으로 끓인 차에서는 시큼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났고, 치즈에서는 이제까지 맛보지 못한 농후한 맛이 났다. 개인적으로 유제품은 잘 먹지 못했던 지라 골골대며 밀가루 빵만 먹었다. 이때까지도 나는 이곳에 내 휴가를 사용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저녁에는 비가 왔다. 밤새 올 것 같아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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