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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르게 슬펐던 여행

클라시커 2009. 9. 3. 00:16

  지난 20일부터 며칠 휴가를 내고 홋카이도에 다녀왔다. 원래는 아빠 휴가 일정에 맞추어 다녀올 생각이었지만, 불행히도 내 연가 문제 때문에 실현될 수가 없는 계획이었다. 첫 번째 시도가 불발된 이후, 남은 아쉬움은 우리로 하여금 무모한 시도를 하게 했고 결국 그 시도는 결실을 맺었다. 본의아니게 다른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따'를 당한 아빠에겐 그것이 달콤한 과실은 아니었겠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무모하게 무작정 떠난 여행. 그래도 그 선택은 결국 잘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비록 3박 4일이라는 짧은 기간을 효율적으로 살려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보진 못했지만, 최소한 돌아와서 왜 나라의 힘이 강해야 하는가 정도는 다시 생각하게 됐으니까 말이다.

  왜 나라가 강해야 하는가? 그 생각의 시작은 의외로 단순했다. '삿포로 시내에서 마주친 일본인들은 왜 다수가 영어를 잘 하지 못할까?' 하는 의문이 그 시발이었다. 그랬다. 도넛 가게에 들어가 이게 무슨 말이냐 영어로 물었을때, 종업원은 한국에서라면 대여섯살박이 어린애도 단박에 뱉어낼 '스위트 포테이토'란 단어를 몰라 옆 친구에게 물어가며 대답해주었다. 삿포로 시내에서 빠지지 않는 비즈니스 호텔의 프론트 직원도, 나와 드문드문 영단어만을 구사해 겨우 의사소통이 될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맞닥뜨리는 판단은 일종의 우월감이다. 선진국이라는 일본 사람들이 겨우 이 정도의 생활회화도 구사하지 못한다는 현실에서 오는 우월감. 그러나 생각을 한 번만 더 하면 그 우월감은 열등감으로 급변한다. 그들이 영어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 언어의 영향으로 발음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굳이 영어를 구사할 필요를 못느끼기 때문이다.

  좁게 유럽의 사정만 떠올려봐도 어떤 박물관 · 미술관을 들러봐도 꼭 일본어로 된 안내책자나 오디오 가이드를 구비해놓고 있었고, 많은 도시의 여행자 안내소에서 일본어로 대응할 수 있는 직원이 존재했던 기억이 난다.  세계 어딜 가도 일본어는 엄연한 세계 공용어 중 하나로 대접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이 굳이 불편하게 영어를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지는 않을 거다. 결국에 '나는 3개 국어를 합네, 4개 국어를 합네' 등의 자랑들은 강하지 못한 나라의 시민들에게나 의미가 있는 것이지 이미 주류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는 거다. (물론 그들 중에서 타국의 언어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이 정부 들어서, 국가경쟁력 강화 위원회다 뭐다 꾸려놓고 한글의 전파에 애쓰겠다며 호들갑을 떠는 분위기가 있다. 물론 대중은 자국의 문화가 수출된다는 허황된 망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고. 물론 시작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것이지만, 지금처럼 미약한 성공을 마치 대단한 것인듯 되는양 부풀리는 이 국수적인 분위기는 결국에 사업의 성공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게다가 그 접근이 정말로 한글의 특이성을 알리겠다는 원론적인 접근이 아니라, 이 정부가 그들이 말하는 소위 '조국 선진화'에 무슨 침이라도 덧발랐다는걸 알리기에 급급하다는 게 눈에 뻔히 보이기에 더 못마땅할 뿐이다. 우리는 조금 더 진중한 지도자를 뽑을 수는 없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