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공간 - 경남 김해, 봉하마을

  아빠의 휴가로 찾아온 모처럼의 가족여행, 그러나 계획은 하나도 세우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던 차에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는 겸사하여 김해 봉하마을에 다녀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곳에 가는 발걸음이 이토록 무겁지는 않으련만.

  세 시간을 달려 봉하마을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찾은 것은 '아방궁'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애초부터 아방궁이 있었는가. 아무리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행복'하다지만, 이럴땐 제발 보고 믿어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오가는 사람들이 분주한 가운데 한 켠에 사람들이 어떤 것을 두고 빙 둘러 서 있었다. 5월 23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기념물 때문이었다. 그 '아주 작은 비석'을 보기 위해 다가가니 눈에 많이 익은 사람이 서 있었다. 그 사람의 눈은 오늘도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미치게 했는가. 미쳐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 밖에.


△ 대통령의 비석 뒤로 명계남 씨가 서 있다.
서서 쭈뼛거리느라 좀체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와 비석도 만져보시고 자세히들 보시라"고 말했다.

△ 추모객들이 두고 간 헌화들과 '아주 작은 비석'

  비석 뒤로는 투신장소인 부엉이 바위가 보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위에 서서 있었다. 그곳을 바라본 명계남 씨는 "저 사람들 제발 저기 좀 안 갔으면 좋겠어요. 위험하기도 하지만, 여사님께서 창문 너머 (부엉이 바위를) 보실 때마다 참 좋지 않게 생각하세요."라 말했다. 실제 근처까지 올라가보니 통제를 위해 쳐놓은 그물 패스를 누군가 찢어버려 원하는 사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상태였다. 호기심도 좋지만, 그곳이 사람이 죽은 자리임을 생각한다면... 과연 그러한 행동들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토원까지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는, 휴가를 맞아 찾아온 추모객 겸 관광객의 수가 더 늘어 있었다. 손에 꽃을 든 사람들. 생전에 '노간지' 패션 아이템이었던 밀짚모자를 단체로 쓴 가족들. 담배를 사들고 온 사람들. 노란 옷을 입고 온 사람들... 그들에게 아마도 노무현과 그의 고향인 이 봉하마을은 언제까지나 2009년 5월 23일 이전의 시간으로 머물러 있을 것 같다.

1. 없어져야 할 사람들

  정토원에 오르니 낯익은 사람의 이름이 보였다. '황우석'. 노무현 집권기 중 최대 성과가 될 뻔했던 이 사건은 결국 최악의 스캔들로 남고 말았다.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봉하마을 여기저기에 퍼져 있으면서 황우석 교수의 연구재개를 위한 서명들을 받고 있었다.

  뭐 그들이야 거진 '빠' 소리를 듣고 있느니 온전한 취급은 못받겠다마는 나를 더욱 분노하게 한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논거로 삼는 것이 다른 것도 아닌 '월간 조선'이란 점이었다. 집권 5년 내내 그를 괴롭혀 마침내는 그에게 선택을 강요한 그 찌라시 발행사의 글이 뭐가 그리 자랑스럽다고 그의 집 주변에 저렇게 펼쳐 놓았던 걸까?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저들이 노 대통령의 정신을 기려 온 것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해둬야 할 거다. 이명박 씨가 그나마 개신교 근본주의자니 망정이지, 만약 이 정권에서 줄기세포 연구가 노무현 정부 때처럼 허가된다면 제일 먼저 배를 바꿔탈 사람들이 저들이다. 더욱이 저들이 보였던 - 사실은 과거 당신들이 보였던 - 당시의 그 '교주 열풍'은 죽은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에게 여전히 말하고 있는 민주주의와는 전혀 거리가 있었던 행위들이었다. 현재의 '노빠'들이 추후에 부화뇌동이란 모욕을 얻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할 부분이 이 지점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일은 쉽다. 그러나 그 사람의 사상이나 열정까지 온전히 좋아하는 일은 어렵다. 전자는 겉만 지향하지만, 후자는 겉과 속 모두를 지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노빠들이여, 소탈한 노무현을 좋아할 것이 아니라, 왜 그가 그러한 소탈함을 몸에 배게 하려 노력했는지도 좋아해 달라.



2. 아방궁의 진실

  봉하마을을 다녀온 사람들이 모두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자, 아방궁은 어디에 있을까"란 말이다. 이는 전형적인 '프레임'인데, 이 말을 지어낸 사람이 한나라당의 전 원내대표였던 홍준표였고 이 말을 적절히 잘 써먹은 집단이 바로 조선일보를 위한 찌라시들이었다.

  자, 이 말이 거짓말이었음을 먼저 직감한 여러분. 누군가 이후에도 '봉하마을 아방궁' 찾으며 말도 안되는 사실을 말할 때는 다음 수치들을 기억하라.

  노대통령 사저가 위치한 경상남도 진해시 진영읍 본산리 30-6번지의 2009년 공시지가는 ㎥당 16만 3천원이다. 반면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 그 일가들이 거주하고 있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41-2외 4필지의 2009년 공시지가는 ㎥당 197만원이었다.

  토지등기부등본 상에 기재된 노대통령 사저의 크기는 2층 구조로, 지하 430.46㎥(약 130평) · 1층 372.59㎥(약 113평)이다. 반면 조선일보 방씨 일가가 머무르고 있는 흑석동 집은 3층 구조로, 지하실 89.26㎥(약 27평), 1층 319㎥(약 97평), 2층 323.97㎥(약 98평)이었다.

  이 두 주택의 개별주택가격을 보고 싶었으나, 이는 소유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다 하여 대략 공시지가와 두 주택의 가장 큰 평수를 곱해 주택가격을 알아볼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노대통령 사저의 가격은 7천여 만원(지하실 크기*공시지가)이었고, 방씨 일가네 집 가격은 6억 4천여 만원(2층 크기*공시지가)였다. 7천만원 대 6억원. 이게 뭐 게임이나 되는가.

  등기부등본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2억여 원에 정승영 씨로부터 매입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 공시지가로 따지면 4억여 원에 해당하는 토지를 2억여 원에 매입한 것에 대해 특혜 논란이 일 법도 하지만, 대한민국의 세법이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니 좀 더 두고 볼 문제다.^[각주:1]

1. 이미 알고 있겠지만, 차후 이 토지를 매도할 때에 토지의 소유자는 매입금액에서 매도금액의 차에 해당하는 양도소득세를 내도록 되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