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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하십시오? 용서하십시오?

클라시커 2011. 4. 21. 23:22
문득 진보 정당들은 왜 친노와 함께 하기를 꺼려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논리가 있는가도 곰곰히 고민해봤는데, 내가 아는 범주에서는 아직까지 딱히 그럴싸한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가령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권'이며, '노동자를 적대한 정권'이므로 반성하기 전까지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주장을 보자. 지금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는 과거다. 물론 과거의 행적이 미래를 예견하는데 큰 영향은 미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미래가 될 수는 없다.

사실 이 주장에서 가장 낯간지럽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바로 "반성하라"는 부분이다. 반성을 요구하는 주체는 피해를 입은 당사자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 피해자들을 충분히 대표할 수 있는 대표성을 띄어야 한다. 그런데 '반성'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피해자들도, 그 피해자들을 대표할 수 있는 대표성도 없다. 아니, 도리어 그 피해자들과 그 피해자들을 대표할 수 있는 대표성을 가진 집단 - 민주노총 - 은 종종 자신들을 핍박한 사람들에게 힘을 싣자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이들의 '반성하라'라는 목소리가 얼마나 힘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확실하고 합리적인 연대 '방법'은 사안을 놓고 집단들이 합의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수락과 거절에 모두 사용될 수 있다. 가령 테이블에 결선투표제 도입과 비례대표제 70% 이상 도입, 비정규직 사용요건 명시 등의 안건을 올려놓고 각자 찬반을 밝히는거다. 나온 결과를 보고 '도저히 이 부르주아 새끼들과는 못해먹겠다'는 판단이 들면 연대를 거부하고, 아니면 하고. 사실 이렇게만 한다면 수락할 때나 반대할 때나 모두 명분 하나는 죽이게 서지 않나. 물론 그에 앞서 이 사안에 대한 합의는 꼭 이행한다는 - 내부에서 다른 말이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 나름의 단속질이 필요하겠지만 말이지.

누구나 다 이야기할 수 있는 이 합리적인 방법이 공론화가 되지 않는 것은, 일부러 이 문제의 쟁점화를 회피하는 노회한 보수정당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이 문제를 선뜻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우리의 책임이 더 크다.

이거 뭐 결국 하나마나한 이야기만 하고 말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