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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지 못해 미안해!

클라시커 2011. 6. 2. 21:08
나는 어제 '그대, 잘 가라'란 제목의 글을 써 올린 바 있다. 그런데 오늘 하루종일 오가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특히 이 글을 읽고나니 내가 너무 졸렬했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나름의 사과문 겸 반성문을 쓸까 한다.

나는 왜 협상안에 분노하는가. 생각하고 보니 그럴듯한 이유가 없다. 아마도 민노당에 대한 일종의 '습관적 분노'가 아닐까 싶긴 하다. 물론 변명하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내가 신당에서 당원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벽'을 여기서도 또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벽'에 대해 구차하게 부연하자면,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신당의 지도부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촛불집회 때도 쏟아지는 제안들을 소화하지 못했고, 이후의 국면에서도 적극적인 당원들의 요구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이 분위기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합의문을 게재한 신당 공지사항에 달린 어떤 당원의 덧글, '회의록 올려달라는 요구에는 2-3일이나 미적거리다가, 당 망한다고 하니 즉시 올리네'. 그 자체였다.

당원들의 요구에는 꽤 늦은 대응을 하다가도, 이상하게 대표가 하는 일에는 무리없이 착착 진행되는 집행부였다. 노 대표 때는 물론이고, 조 대표 때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어보인다. 늘상 대표와 비서실, 사무총장과 기획실이 중심이 되는, 전형적인 대표 직계 체제로만 움직여왔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이들이 그동안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지며 일해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다구리 당하는 노심조가 08년에 민노당을 탈당하며 말했듯, 그들은 (적당히 타협했다면 겪지 않았어도 될) 풍찬노숙의 시대를 보냈다.[각주:1]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그동안의 수고에 대해 심심한 감사를 전해도 그다지 낯뜨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민노당과의 협상을 거부할 수는 없게 된 형국이 되었다. 신당 자게에서도 누누히 나왔듯, 민노당의 입장에서 볼때 신당은 그다지 아쉬운 협상대상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부채는 다달이 늘어나고, 지지도는 지지부진하니 아마도 가만 놔뒀어도 당은 없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여튼 모두들 감사하다. 이 당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설프나마 '한때는 나도 진보정당의 당원이었다'라 말할 수 있는 시절을 만들 수 있었겠나. 이 당에서 많은 좋은 분들을 만났고, 적어도 어떤 사람과 일을 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을 믿고 일해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가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 그 점에서 내게 진보신당은 전혀 1.7% 짜리 기억이 아니다.

더불어 앞으로는 할 수 있는 일에만 매진하고 싶다. 아마 내가 땀내나게 뛰었다면 당이 이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나는 항상 관전자의 위치에서 냉소적으로 말하기에만 바빴던 모양이다. 어리석게도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지금이 되어서야,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을 땀내나게 해봐야겠다는 오기가 든다. 지구는 둥그니까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웃으면서 만나자. 아디오스!
  1.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복당과 함께 이 셋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이 셋이 나서지 않았다면 분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물론 각자의 판단에 따라 민노당을 떠났으니 이들이 그래야 할 의무는 없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셋, 아니 노와 심의 결단은 분당의 중요한 촉매제가 되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