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제 '그대, 잘 가라'란 제목의 글을 써 올린 바 있다. 그런데 오늘 하루종일 오가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특히 이 글을 읽고나니 내가 너무 졸렬했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나름의 사과문 겸 반성문을 쓸까 한다.
나는 왜 협상안에 분노하는가. 생각하고 보니 그럴듯한 이유가 없다. 아마도 민노당에 대한 일종의 '습관적 분노'가 아닐까 싶긴 하다. 물론 변명하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내가 신당에서 당원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벽'을 여기서도 또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벽'에 대해 구차하게 부연하자면,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신당의 지도부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촛불집회 때도 쏟아지는 제안들을 소화하지 못했고, 이후의 국면에서도 적극적인 당원들의 요구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이 분위기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합의문을 게재한 신당 공지사항에 달린 어떤 당원의 덧글, '회의록 올려달라는 요구에는 2-3일이나 미적거리다가, 당 망한다고 하니 즉시 올리네'. 그 자체였다.
당원들의 요구에는 꽤 늦은 대응을 하다가도, 이상하게 대표가 하는 일에는 무리없이 착착 진행되는 집행부였다. 노 대표 때는 물론이고, 조 대표 때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어보인다. 늘상 대표와 비서실, 사무총장과 기획실이 중심이 되는, 전형적인 대표 직계 체제로만 움직여왔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이들이 그동안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지며 일해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다구리 당하는 노심조가 08년에 민노당을 탈당하며 말했듯, 그들은 (적당히 타협했다면 겪지 않았어도 될) 풍찬노숙의 시대를 보냈다.1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그동안의 수고에 대해 심심한 감사를 전해도 그다지 낯뜨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민노당과의 협상을 거부할 수는 없게 된 형국이 되었다. 신당 자게에서도 누누히 나왔듯, 민노당의 입장에서 볼때 신당은 그다지 아쉬운 협상대상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부채는 다달이 늘어나고, 지지도는 지지부진하니 아마도 가만 놔뒀어도 당은 없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여튼 모두들 감사하다. 이 당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설프나마 '한때는 나도 진보정당의 당원이었다'라 말할 수 있는 시절을 만들 수 있었겠나. 이 당에서 많은 좋은 분들을 만났고, 적어도 어떤 사람과 일을 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을 믿고 일해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가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 그 점에서 내게 진보신당은 전혀 1.7% 짜리 기억이 아니다.
더불어 앞으로는 할 수 있는 일에만 매진하고 싶다. 아마 내가 땀내나게 뛰었다면 당이 이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나는 항상 관전자의 위치에서 냉소적으로 말하기에만 바빴던 모양이다. 어리석게도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지금이 되어서야,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을 땀내나게 해봐야겠다는 오기가 든다. 지구는 둥그니까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웃으면서 만나자. 아디오스!
나는 왜 협상안에 분노하는가. 생각하고 보니 그럴듯한 이유가 없다. 아마도 민노당에 대한 일종의 '습관적 분노'가 아닐까 싶긴 하다. 물론 변명하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내가 신당에서 당원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벽'을 여기서도 또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벽'에 대해 구차하게 부연하자면,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신당의 지도부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촛불집회 때도 쏟아지는 제안들을 소화하지 못했고, 이후의 국면에서도 적극적인 당원들의 요구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이 분위기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합의문을 게재한 신당 공지사항에 달린 어떤 당원의 덧글, '회의록 올려달라는 요구에는 2-3일이나 미적거리다가, 당 망한다고 하니 즉시 올리네'. 그 자체였다.
당원들의 요구에는 꽤 늦은 대응을 하다가도, 이상하게 대표가 하는 일에는 무리없이 착착 진행되는 집행부였다. 노 대표 때는 물론이고, 조 대표 때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어보인다. 늘상 대표와 비서실, 사무총장과 기획실이 중심이 되는, 전형적인 대표 직계 체제로만 움직여왔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이들이 그동안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지며 일해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다구리 당하는 노심조가 08년에 민노당을 탈당하며 말했듯, 그들은 (적당히 타협했다면 겪지 않았어도 될) 풍찬노숙의 시대를 보냈다.1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그동안의 수고에 대해 심심한 감사를 전해도 그다지 낯뜨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민노당과의 협상을 거부할 수는 없게 된 형국이 되었다. 신당 자게에서도 누누히 나왔듯, 민노당의 입장에서 볼때 신당은 그다지 아쉬운 협상대상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부채는 다달이 늘어나고, 지지도는 지지부진하니 아마도 가만 놔뒀어도 당은 없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여튼 모두들 감사하다. 이 당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설프나마 '한때는 나도 진보정당의 당원이었다'라 말할 수 있는 시절을 만들 수 있었겠나. 이 당에서 많은 좋은 분들을 만났고, 적어도 어떤 사람과 일을 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을 믿고 일해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가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 그 점에서 내게 진보신당은 전혀 1.7% 짜리 기억이 아니다.
더불어 앞으로는 할 수 있는 일에만 매진하고 싶다. 아마 내가 땀내나게 뛰었다면 당이 이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나는 항상 관전자의 위치에서 냉소적으로 말하기에만 바빴던 모양이다. 어리석게도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지금이 되어서야,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을 땀내나게 해봐야겠다는 오기가 든다. 지구는 둥그니까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웃으면서 만나자. 아디오스!
-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복당과 함께 이 셋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이 셋이 나서지 않았다면 분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물론 각자의 판단에 따라 민노당을 떠났으니 이들이 그래야 할 의무는 없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셋, 아니 노와 심의 결단은 분당의 중요한 촉매제가 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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