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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망할 놈의 정치, 이 망할 놈의 선거제도

클라시커 2012. 3. 13. 23:24
진통당과 민통당, 두 통합당만의 선거연대인 이른바 '두통연대'가 성사되었다. 두 당이 어떤 이유에서 급하게 녹색당이나 진보신당 같은 다른 야당들을 따돌림시키면서 자신들만의 밀실논의를 '야권연대'란 보기에 그럴싸한 허울로 포장을 치려 드는지는 결과에서 아주 명쾌하게 드러났다.

'두통연대' 합의문에 따르면 가장 낡고 위험하며 즉시 폐쇄해야 할 핵발전소, 고리1호기가 있는 부산 해운대기장을과 후쿠시마 핵참사 이후 신규 핵발전소 부지로 발표된 경북 울진 · 봉화 · 영덕 · 영양 지역구에서 진통당 후보가 용퇴하거나 아니면 진통당이 무공천을 한다고 한다. 아주 '공교롭게도' 이 지역에서 후보등록을 한 민통당 소속 후보들은 '찬핵 세력'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결론만 말한다면, 강령에서든 정책으로든 입으로는 '탈핵'을 말하고 있는 진통당이 현실에서는 다른 지역구를 얻기 위한 욕심에 눈이 멀어, '찬핵 후보'를 밀어주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한 셈이다. 역시나 '두통연대'라는 이름답게 아주 '골 때리는' 결과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아무리 강조해봐야 결국 쓰잘데기 없는 외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유권자들은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이명박'이라는 껍데기를 깎아내리기에 바빠, 이 밀실논의를 받들어 모시기에 급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이런 일을 처음 목격하는 것은 아니다. 다들 잘 알고 계시'겠'다시피, 비판적 지지의 망령은 87년 대선에서의 '백선본' 드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에 '민노당 찍는 표는 다 사표'라고 주장하신 어떤 분의 이야기도 있었고 말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는 지지하지만 정작 투표장에서는 '될 만 한'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전략적 투표'를 행사하고 있다. 언론에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났듯 '두통연대'의 최대 목표가, 인민의 삶을 낫게 하기보다는 '1:1 구도를 만들어 새누리당을 쳐부수는 것'이라는 사실은 선거에서 '전략적 투표'가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매 선거마다 '나의 정치적 선택'을 '대세'에 눌려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정치적 자살자'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일까? 다름아닌 선거제도 때문이다. 그 사람이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를 봐야하는 현재 남한의 1위 다수대표제 아래에서는 그 후보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더 나아가서는 그 당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다. 단 한 표라도 상대보다 적으면 말짱 꽝인 상황인데, 저 사람과 저 사람이 소속된 당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따위가 대체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정치에 대한 불신만 높아간다. 선거의 모든 과정이 후보나 당의 됨됨이나 혹은 정책에 대한 검증을 할 여유를 주지 않고, 그저 진영논리에 의한 '단판 승부'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판단이다. 우리가 투표를 하는 본질적인 까닭은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함이지, 단순히 정치인들의 승부사적 기질에 놀아나기 위함은 아니지 않던가? 그런데 지금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우리가 흔히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라고 부르는 혼합의석식 비례대표제(Mixed-Member Proportional system)는 우리가 선거에 참여하는 '본질적인 까닭'을 현재의 1위 다수대표제보다 훨씬 더 많이 충족시켜준다. 정확하게까지는 아니지만 유권자의 의사라고 할 수 있는 정당지지도와 의석점유율을 어느 정도 맞춰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거제도가 현재의 1위 다수대표제에서 혼합의석식 비례대표제로 바뀐다면, 조직표와 돈이 판치는 현재의 정치문화가 정책 중심으로 완전히 바뀔 수 있는 동시에 정치인들의 추접한 사표론에 휘둘려 나의 소중한 정치적 견해를 포기할 이유도 사라진다. 소수의견을 갖는다는 이유만으로 투표할 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거나, 혹은 소수의견을 갖는 사람들에게 '네 의견은 어차피 죽어버릴 의견[死票]이니 그냥 될 사람 밀어주자'는 말이 공공연히 나도는 것은 얼마나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인 모습들이란 말인가?

물론 혼합의석식 비례대표제가 모든 정치문제를 해결하는 만능키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정치적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방편이라는 평가는 받고 있다. 더욱이 저 이데아 세계에 있을 것만 같은 이상적 제도가 아니라 실제로 독일과 뉴질랜드, 프랑스(프랑스는 약간 수정된 혼합의석식 비례대표제지만) 등 몇몇 현실국가들에서 사용되고 있는 제도다.

이렇게 현실성도 어느 정도 검증된 최선의 대안이 자꾸만 외면받는 것은, 바로 이 제도를 도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이 훼손될까 두려워 이 제도의 도입을 주저하기 때문이다. 선거구 획정도 개발괴발 하는 참인데, 선거제도 개혁에는 얼마나 소극적이겠는가? 따라서 이제 이 제도의 도입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주체는 우리 밖에 없다. 아쉬울 때는 늘 '민주주의의 주인공'이라 등 떠밀리는 우리, 인민들 말이다. 비록 전광석화처럼 이 제도를 단번에 도입할 수는 없겠지만, 올해를 시점으로 우리가 우리의 목소리를 남 눈치보지 않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땅을 만들어 가자. 구태의연한 두 정당 사이에서 갈등하지 말고 진짜로 우리의 삶을 지금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더 많이 발전시킬 수 있는 정치주체들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그 땅 말이다.

덧 : 본문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두통연대의 합의문 말미에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정치제도의 개혁'을 하겠다는 구절이 있다. 진통당이 단순히 민통당과 야합하여 정치적 들러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이 주장하는 대로 '힘 있는 진보'가 될 수 있을지는 그 구절의 실현 여부에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늘 이 약속이 지켜질 것인지 지켜볼 것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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