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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記/2020

그 즈음의 기억

아침에 실시간 생중계는 못 보고, 좀 지나 녹화본으로 추도식을 보다가 펑펑 울었다. 노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으로 썼던 '상록수' 연주 장면에 여러 사람들의 노래를 합쳐 함께 부르는 식으로 재구성을 한 비디오 때문이었다.

 

요즘 일이 많긴 했다. 어렵게 취직해서 5년 동안 열심히 공들였더니, 대표이사가 제깟놈 연임해야겠다며, 위기극복 시나리오 만드느라 없는 위기설 만들어가며 무급휴직 운운하는게 서럽기도 했고, 올 초부터 아프셨던 외조부가 며칠 전부터 떠나가실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헤어지고 나서 몇 번 한 소개팅에서 잘 될 것 같았는데 거절도 당하고 해서 힘든 5월이었다. 그렇잖아도 퍽퍽 울고 싶었는데 - 웃기게도 - 별 이유가 없어서 못 울던 차였는데, 기타 치는 노 대통령을 보고 콧등이 시큰했다가 많은 사람들이 한 뜻으로 한 사람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게 못내 감동적이었던 모양이다.

 

 

내 군번은 2009년 5월이다. 2006년에 재수, 2007년에는 삼수를 해서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1년여 정도 겨우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재검을 받고 논산에 입소했다. 5월 십 며칠이었던 것 같은데, 4급 보충역이어서 4주간 기초군사훈련만 받으면 되는지라 훈련소 내에서도 사회에 대한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곧 집에 갈 애들이라 그런지 바깥 소식이 닿는 조교나 간부도 별 말을 전해주지 않았었다.

 

입소한지 3주차쯤 됐나. 일요일 종교활동을 마치고서 생활관으로 들어오는데 같이 입소한 동기들이 '노무현이 죽었다,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를 않았다. 그 사람은 절대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TV 앞에서도 삐딱하게 서서 한 손 주머니에 찔러넣고 이야기하는 사람이고, 검사들 앞에서도 '이쯤되면 한 번 해보자는 거죠?'라고 물어보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수사를 받고 싸우면 싸웠지 고작 스캔들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실이었다.

 

 

뭐랄까. 노무현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중학교 시절에 노무현의 연설을 보고 반해 버렸었다. 광주였던가, 목포였던가 거기서 진행된 경선투표에서 남도의 아들인 한화갑을 제치고 당당하게 바람을 일으키던 모습을 보고는 더 열광하게 되었었다. '이 사람이야말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이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후보다'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작 중학생이 뭘 얼마나 안다고 그랬을까 싶지만... 여튼 그때는 그랬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의 내가 내놓는 소위 '전망'이라는 것보다, 그때 내놓았던 생각들이 실제로 맞아 떨어진 적도 많았고 더 나았던 것 같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 수록 더 배워간다는데, 나는 어째 퇴화중이다.)

 

대통령 취임식에 응모해서 당첨도 되고, 처음으로 서울에 혼자 올라와 여의도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 지하철 역에서 택시를 타고 국회의사당까지 갔었던 것 같다. 택시 아저씨가 멀찍이 국회의사당을 보며, '학생 저기 가는 거야?'라고 물어서 엄청 신나하며 답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사당 한 켠의 내 자리에 앉아 멀찍이서 그의 대통령 선서도 지켜봤다.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아 급히 산 일회용카메라로 사진도 찍었었는데 그 사진들이 어딨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이후에 그의 행보는, 글쎄. (지금은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자들에 의해 형편없이 방해되었으리라 짐작하지만,) 당선 초의 기대에 못 미쳤던 것 같다. '왼쪽 깜빡이를 켠 신자유주의자', 고등학교 시절에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이다. 그의 탄핵 시도 즈음에 만들어진 열린우리당에 가입했다가, 나는 당적을 민주노동당으로 전환하였고 내 생각보다는 어느새 그들의 생각에 더 많이 동조하게 되었던 것 같다. [각주:1]

 

이명박 당선 즈음까지 나는 노무현에 대한 날 선 시각을 포기하지 않았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죽고 나서도 별로 바꾼게 없다. 노무현이나 유시민 같은 속칭 '참여계' 인사들은 내게 애플 같은 존재였다. 어떤 실천이나 비전없이 그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들. 이미지로만 정치하는 사람들. 진보를 참칭하는 사람들. 그래서 심상정이 경기도지사 후보를 멋대로 사퇴하고, 한 번 쪼개졌던 진보정당이 또다시 쪼개져 통합진보당이 될 즈음에도 이 때의 시각에서 'YS 못지 않은 야합에 동의하는 나쁜 사람'이라고 심상정을 면전에서 비난한 적도 있었다. [각주:2]

 

 

그가 죽은 이후에

광화문에서 광우병 집회를 하느라 근 40일을 집에 안 들어가 본 적도 있고, 독재자의 딸인 박근혜가 당선됐을때는 혼자 울면서 술도 마셨고, 영화관에서는 레미제라블 영화를 보다가 '두 유 히어 더 피플 싱'을 뻑뻑 울면서 따라 부르기도 했고, 시린 손 호호 불며 그 겨울 매주 주말밤에 나가 탄핵 피켓도 들어봤고, 헌법재판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낭독하는 탄핵 판결문을 회사에서 숨죽여 듣다가 '파면한다'는 부분에서 혼자 소리지르다 팀장님께 한 소리도 들어봤으며, 유세에 온다고 해서 회사 마치고 광화문으로 뛰어가 잘 생긴 문 후보와 눈도 마주쳐 봤으며, 지방선거에서 지역구도가 깨지는 모습도 목격하고, 여자친구에게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여보기도 했고, 민주계 정당이 180석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는 것도 보았다.

 

그렇게 11년이 흘렀더라.

 

 

'노빠'였던 시간보다 '노까'로서, 속칭 '입진보'로서 보낸 세월이 더 길지만 이제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1. 사실 지금도 나는 그가 박근혜 당대표에게 제안한 '대연정' 구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자발적으로 국무총리에게 대통령의 권한을 이양했듯, 그렇게라도 지역주의를 타파하고자 하는 생각이었을텐데... 결국 그것이 YS의 삼당합당이나 DJ의 전노 사면과 같은 결과를 내지는 않았을까? [본문으로]
  2. 근데 이건 지금 생각해도 엄청 잘 한 일이잖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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