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記/2008, 유럽

8월 6일, 독일 베를린 - 어처구니가 없다

클라시커 2008. 8. 7. 06:06

  체코 나드라지 홀레쇼비체에서 10시 36분 기차를 타고 15시가 조금 넘어 베를린 중앙역에 도착했다. 체코에서 가지고 있는 유로 현찰을 모두 코룬으로 환전한 터라, 가진 건 딸랑 동전 몇 푼 뿐이었다. 내가 잘 몰라서겠지만, 베를린 중앙역 근처에는 인포메이션 센터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간절히 찾는 아멕스 지점이나 씨티은행 ATM도 없기 때문에 그냥 호스텔로 들어갔다.

  체크인을 하려면, 잔금을 치뤄야 한다. 가진게 여행자수표 밖에 없어서, 되냐고 물었더니 안된다고 한다. 체크카드로 결제해봤더니 잔액이 모자라 결제가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엄마 카드를 빌려 결제.

  대강 방을 정리하고 나가려고 생각하니,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다. 일단 나가려면 교통티켓을 끊어야 하는데 - 베를린 웜뱃은 U-bahn 위에 있다 - 그걸 끊을 돈조차 없던 거다. 하는 수 없다. 피곤하기도 하고 그냥 호스텔에서 죽치고 있기로 했다. 돈이 없어서 여행을 못하다니 비참한 일이다. 맑스의 이름을 딴 거리가 당당하게 있는 나라에서 자본에 종속되었다는 사실은 좀 웃기기도 하고. (이건 순전히 농담이다. 요새 별 걸 다 불온서적으로 하던데, 이런 농담때문에 귀국하자마자 대공분실로 가고 싶지는 않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ㅅㅂ)




  쓸 말도 없고 하니, 프라하에 다녀온 소감이나 간략하게 적어보자. 일단 여러 동행들과 함께 다닌 탓에, 내 색깔을 제대로 낼 수 없었던 점이 조금 아쉽다. 아마도 나 혼자 다녔다면 바츨라프 광장에 서서 '프라하의 봄'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거다. 스메타나 박물관에 찾아가서, '나의 조국'을 쓴 스메타나의 영감에 대해 생각해봤을 거고 프란츠 카프카 거리에 서서 그 거리를 헤매던 프란츠 카프카를 상상했을 거다. 물론 동행들과 함께 다녔기 때문에 체코의 전통음식이나 전통맥주를 맛볼 수 있었지만, 물리적 배부름 이외에도 정신적 배부름을 가질 수 있었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욕심을 내본다. (그렇다고 동행들과 함께 한 여행이 나빴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체코의 벨벳 혁명의 과정을 보면, 지금의 한국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민단체가 모여 현 정권의 퇴진을 요구했다거나 그 중심에 많은 시민들이 있다는 점이 그렇다. 물론 체코의 당시 정권은 무력을 통해 민중을 억누르고 집권한 독재정권이었고, 한국의 현 정권은 절차적 정당성을 가진 - 그러나 결론적으로 대중독재에 의해 집권한 - 정권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누가 나에게 '한국은 80년대의 서울의 봄을 넘어, 2000년대의 새로운 서울의 봄을 맞을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미 맞았다'라고 말하고 싶다. 정권이 무너지지도, 그렇다고 시민의 열망이 반영된 지도자가 선출되지도 않았지만 나는 다수 시민이 자신이 정치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각성했다는 것 만으로도 한국 정치사에 있어서 큰 진전을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정권 수립 이후에 늘 권력의 주변부에 놓여있던 '주인들'이, 처음으로 중심부에 발을 들여놓았고 권력을 긴장시켰다는 점은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시위가 자꾸 반미로 흘러가는데, 개인적인 신념에는 꽤 부합하는 흐름이지만 거국적인 시각으로 봤을때 이것은 좀 길게 보지 못한 경솔한 행동이 아닐까 한다. 촛불시위가 잦아드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느냐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