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記/2008, 유럽

8월 8일, 독일 베를린 - 나는 통일국가의 분단국가인(人)

클라시커 2008. 8. 9. 05:20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날. 오늘은 베를린 장벽을 키워드로 베를린을 뒤져보기로 했다. 해서 첫번째 코스는 당연히 장벽이 남아있는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웜뱃이 위치한 로자 룩셈부르크 거리에서 트램으로 20분쯤 거리에 위치한 곳이다. 상당수의 볼거리들이 구 동독지역에 몰려있기 때문에, 현재 대다수의 숙소들이 구 동독 쪽에 있다고 한다. 웜뱃 역시 마찬가지.

  누군가 평양에 간 소감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을 물었을 때, 대로변에 위치한 집단주택이었다고 한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집 > 아파트 단지 > 대로의 과정을 거치는 남한과 달리, 집 > 대로로 직행하는 북한의 가옥구조는, 개인을 사회에 편입시키려는 권력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 글을 읽었을 때에는 꽤 맞는 해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유럽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니, 어디든 집단가옥의 경우에 정문이 대로와 맞닿아 있다는 걸 발견했다. 우리가 단지를 대로와 집을 구분짓는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들은 집 > 골목 > 대로의 구성을 취하고 있는 거다. '단지'라는 구분 단위는 아마도 한국만의 특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기사 물론 골목과 대로는 꽤 차이가 난다. 아마도 그 글의 글쓴이 역시, 골목과 대로를 구분지어 생각했을 것이다.

  구 서베를린 지역과 달리 구 동베를린 지역의 건물들은 모두 거대한 장방형 콘트리트 구조물들로 되어있다. 그것은 아마도 권력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공산주의가 추구했던 효율적인 공간이용을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둘은 꽤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이질적이다. 만수궁이나 김일성 대학같은 건물들은 거대하지만, 그다지 효율적일 것 같지는 않다. 어쨌거나, 가옥들은 인민의 균등한 삶을 위해 동일한 건축자재를 통해 동일한 크기의 창문과 동일한 크기의 대문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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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램에서 내려 조금 걷다보니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라 적힌 장벽의 흔적이 보인다. 나는 다른 쪽에서 왔지만, 베를린 동역 방향에서 봐도 괜찮다. 시작부분은 꽤 오래된 작품들이고, 베를린 동역 쪽에 있는 장벽은 2006년에 새로 그린 것들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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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름이 끼치는지. 이 키스를 가리켜 '형제키스'라고 한다. 이른바 사회주의적 동지애를 표현하는 극렬한 방식 중 하나인데, 동독 건설 30주년을 맞아 동독을 방문한 소련의 서기장 브레즈네프와 당시 동독의 수상이었던 호네커가 나누는 찐한 형제키스를 풍자해놓은 것이다. 물론 사회주의권에서 이 형제키스는 일반적인 것이지만, 호네커의 이 키스는 유독 찐하다고 하다. 호네커의 재임 당시 동독을 방문했던 사회주의권 인사들이 모두 이 키스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 키스에 대해 폴란드의 독재자였던 야루젤스키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와의 키스는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어쨌거나, 호네커란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나는 영화 <타인의 삶>을 생각한다. 호네커에 대한 신랄한 풍자성 농담을 건네다 우편국 직원으로 격하되는 그 귀여운 정보부 직원이 기억나서다. 베를린을 다니면서 영화 속 분위기를 느껴보려고 했지만, 베를린 사람들도 그런 기억을 가지고 싶지 않아서 그런지 구 동독 지역에서도 그런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다. 슈타지의 행각을 모아놓은 슈타지 박물관을 가볼걸 그랬나보다. 어쨌거나 정말 여운이 남는 마지막 장면.


'nein, das ist fuer mich' (아니요, 이건 저를 위한 거에요.)


  비즐러를 연기했던 배우 울리쉬 뮤흐는 작년에 위암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이제나마 알았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표하며, 동시에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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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끝이 찡한 것은 내가 민족주의자이기 때문일까. 전 세계에서 몇 남지 않은 분단국가에 사는 원주민인 나는, 어찌되었건 통일이 된 나라의 '자랑스러운 상처'를 보고 부러웠다. 우리도 언젠가 휴전선 철책을 전세계인들에게 관광상품으로 내놓을 수 있을거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체크 포인트 찰리'. 베를린 장벽이 존재할때 연합군 진영의 검문소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찰리'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C를 말하는 암구호. A는 알파, B는 브라보, C는 찰리, D는 델타... 이런 식으로 알파벳을 말함으로서 무전통신에서 헷갈리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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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도 봤지만, 여기에서도 미 군복과 프랑스 군복을 입은 남자 둘이 사진을 찍고 돈을 요구한다. 한편에서는 구 서독, 구 동독, 구 소련의 입국도장을 찍어주고 10유로를 받고 있다. 감회가 남다르다면 찍어도 좋을듯.

  독일의 또다른 아픈 기억, 유태인 학살의 기억을 돌아보려 유태인 박물관에 갔다. 이 곳은 그 상징성 이외에도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한 혁신적인 디자인의 건물로도 유명하다. 이전까지 리베스킨트는 그의 설계가 너무나도 독창적이고 난해해서, 현실화 될 수 없었기에 '페이퍼 아키텍쳐'라는 비웃음을 들었어야 했다. 베를린의 유태인 박물관은 그에게 그 꼬리표를 뗄 수 있도록 한 첫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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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의 도시, 베를린을 느껴보기 위해 필하모니를 찾았다. 세계 3대 필하모니에 속하는 베를린 필하모니는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존재로 더 유명해졌다. 우연찮게 빈의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빈 필 당시의 카라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볼 수 있었는데, 역시나 그는 고전음악계의 제임스 딘이었다. 어쩜 그렇게 카리스마 있고 멋진지... 그런 카리스마 때문인지 사람들은 카라얀이 지휘하고 베를린 필이 연주한 베토벤의 교향곡을 최고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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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필이 위치한 거리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슈트라세'. 기가 막힌 네이밍 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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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도 좀 남아 티어가르텐을 걷다가 만난 전승기념탑. 비록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모두에서 진 독일이지만 그렇다고 전승의 역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기념비는 프러시안 시대에 벌어진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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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Hbf. 2006년 월드컵을 맞아 기존의 초 역을 대체하는 중심역으로 개관하였다. 현대적인 외관과 시설이 꽤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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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완주 후 만난 베를린 동역 내 맥카페. 밀크커피를 시키니 초콜렛 하나와 저렇게 큰 타셰에 하나 가득 따라준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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