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記/2008, 유럽

8월 14일, 프랑스 파리 - 오! 샹젤리제

클라시커 2008. 8. 15. 07:48

  에펠탑이 가장 예쁘게 보인다는 곳, 사이요 궁에 갔다. 에펠탑 앞에 있는 쎄느강을 건너면 바로 위치한 궁인데,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설치된 궁이라고 한다. 파리에는 만국박람회를 위해 설치된 건물들이 참 많다. 에펠탑만 하더라도 박람회를 위해 구스타프 에펠이란 건축가가 지은 것이고, 에펠탑의 근처에 있는 알렉산드르 3세 다리 역시 만국박람회 당시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하다못해 모네인지 마네인지가 - 맨날 헷갈린다 - 자신의 살롱에다 내건 그림이 평론가들로부터 '인상적이다'란 소리를 듣게 된 것도 만국박람회 때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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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요 궁에서 조금 걷다보면, 개선문이 보인다. 파리에는 현재 세 개의 개선문이 있는데 하나는 루브르 앞에 있는 카루젤 개선문이고 하나는 샹제리제 거리의 시작점에 서 있는 이것이며, 다른 하나는 라 데팡스 근처에 세워진 신 개선문이다. 참고로 카루젤 개선문은 나폴레옹에 의해 이탈리아로부터 공수된 대리석으로 지어진 것인데, 포룸 로마눔과 콜로세움 사이에 세워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을 가져가려다 실패한 나폴레옹이 이를 그대로 본따 지은 것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파리의 이 개선문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은 김일성은 평양의 한복판에 세계에서 제일 큰 개선문을 짓게 된다. 독재자의 권력욕이 어떤 식으로 발휘되는가에 대한 적절한 예들이라 하겠다. (우스갯소리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떼어가려던 나폴레옹이 또라이라면, 그것보다 더 큰 개선문을 지은 김일성은 생또라이란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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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선문은 샹제리제 거리의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크게 펼쳐진 샹제리제 애비뉴에는 세계적인 명차 회사와 명품 제작사의 부띠끄 숍이 늘어서 있다. 역시나 명품점에는 한국인과 중국인이 득시글거리는데, 중국인은 사는 반면 한국인은 쳐다만 본다. 느꼈겠지만, 나는 별로 명품을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냥 '좋은 제품'을 사겠다는 소비자로서의 당연한 권리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나는 얼마짜리 빽을 샀는데, 넌 뭐냐?'는 천박한 과시욕의 발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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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선문을 나와 걷다보면, 튈르리 정원과 연결된 콩코르드 광장을 만나게 된다. 튈르리 궁의 전소로 인해 튈르리 궁부터 개선문에 이르는 수백m의 거리가 한 눈에 들어오게 된다. 프랑수아 미테랑은 이런 포인트를 놓치지 않았고 '그랑 루브르'란 계획을 통해 협소하고 제한적인 전시공간이었던 루브르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뒤바꿔놓았다. 논란을 뒤엎고 루브르의 명실상부한 상징이 된 유리 피라미드 역시 '그랑 루브르' 프로젝트 기간 중 건설된 것이다. 놀랍게도 이 모던한 건축물은 90년대도 아닌, 80년대 말에 완공되게 된다. 지금봐도 꽤 모던한 이 작품은 전혀 루브르 궁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데, 그것은 건축가 야오 밍 페이의 세심한 배려 덕이었다. 루브르 궁의 건축비례를 피라미드 건설에 있어서도 사용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이 사례는 한 사람의 대통령, 그리고 그의 후원을 받은 한 사람의 건축가가 얼마나 위대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적절한 사례다. 우리나라에도 추부길이 있다고 말하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추부길과 야오 밍 페이는 엄연히 다르다. 외운 걸 읽는 카세트 테이프가 창의적인 아티스트와 비교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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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이 광복절이라고 한다. 국내 일각에서는 '건국절'로 바꿔부르자는 의견이 있다고 하고, 그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2MB도 그러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그런데 분명히 우리나라의 정부는 1919년에 성립한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헌법 전문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미 1919년에 수립된, 정통성 있는 정부를 외면하고 단지 이승만의 국부로서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한 그 똘마니들의 주장대로 하는 2MB의 현재 모습은, 3.1절 발언에 이어 그가 얼마나 역사의식이 전무한가를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라고 하겠다. 역사의식이 있어야 그것을 반추해보고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해 볼 수 있게 된다. 현재 상황을 알아야, 미래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애초에 주춧돌부터 없으니 이 정부는 미래가 없는 정부가 될 수 밖에 없다. 뭐 어쩌겠는가. 똑같이 미래는 보지 못한채 눈 앞의 돈만 쫓던 개들의 지지를 받았는걸. 물론 토사구팽 되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