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記/2008, 유럽

8월 13일, 프랑스 파리 - 루브르 박물관과 우리네 문화유산

클라시커 2008. 8. 14. 04:13

  파리에 왔으니 루브르에는 가봐야 할 것이다. 원래는 파리 변방을 수호하는 요새였던 것을, 국왕들이 거처로 삼다가 박물관으로 바꾼 것이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이라고 한다. 물론 이 곳의 많은 컬렉션들은 대다수가 다른 나라로부터 약탈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유럽의 많은 큰 박물관들은 전리품으로 컬렉션을 채우고 있다. 이 곳 역시 마찬가지로 나폴레옹이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약탈해 온 문화재들로 성을 채운 것이 시초라고 한다. 본디 문화라는 것은 힘과 연관이 없다. 팍스 로마나의 뒤를 이어,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영광을 물려받은 미국의 문화가, 그 정치적 힘에 비해 실질적으로는 문화적 가치가 하등 없는 잡탕인 것이나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가 피정복지인 그리스의 문화에 복속당했던 사실은 그러한 실례이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현실을 본다면 문화재를 통한 관광수입은 원래의 주인이 아닌 약탈자들이 더 많이 챙기고 있다. 멀게는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을 들 수 있겠고 가깝게는 일본을 들 수 있겠다. 국보급 청자가 우리나라보다 일본에 더 많다는 사실은, 우리 역시도 열강들에게 그들의 문화 유산을 약탈당한 이라크나 이란, 그리스, 터키인들과 같은 주변인임을 일깨운다. 물론 우리는 스스로를 주인공이라 생각하지만, 세상은 넓고 우리는 생각보다 보잘 것 없다.

  패배주의라고? 가지고 있는 것도 온전히 써먹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패배라는 말도 아깝다. 유럽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공통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은 너무 보잘 것 없는 것 같아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은 꽤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선조들의 역사가 가치가 없다는 게 아니다. 문화적 양식없는 근대화, 무조건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천박한 사회 풍조로 대변되는 '빨리빨리-대충대충' 문화는 수많은 선조들의 숨결을 부수고 깨뜨리고 없애버렸다. 한국인의 역동성, 근면성으로 상징되는 '경부고속도로'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무식하고 잔인함의 산 증인이다. 적은 예산으로 지어야 했던 탓에 무조건 효율성만을 앞세우는 건설이 되다보니, 고속도로는 산세가 아름답기로 이름난 한반도의 허리를 잘랐고 그것이 지나가는 길에 있던 모든 것들을 의미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나는 경부고속도로를 지으면서 발굴된 문화재란 것을 본 기억이 없다. 풍납토성은 어떠한가? 몇 남지 않은 한성백제의 증거로서 고고학적 가치가 어마어마한 그 유적지는, 아파트를 지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건설회사와 그 아파트를 팔아 돈을 벌어야 한다는 땅투기꾼들의 훼방으로 인해 몇 년째 발굴이 지지부진했다. 천민자본주의다. 전형적인 천민자본주의다.

  이딸리아나 그리스만 가봐도 수많은 유물 때문에 역학조사를 하느라 길 하나 내는 것, 지하철 하나 개통하는 것도 10년이 넘게 걸려 이루어진다. 나는 우리 한반도에도 이들 나라만큼이나 수많은 유물들이 땅 속에서 잠자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네 조상들은 좁은 땅덩어리를 잘 다독여서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고, 맛있는 것을 더 먹기 위해 뱃속을 게우면서까지 안달을 떨었던 로마 귀족들 만큼이나 사치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멋과 풍류라는 것을 뼛속 깊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물 한 잔 따르는 주전자, 벼루에 물 뿌리는 연적, 제사지낼 때 쓰는 향로에 우리처럼 그렇게 미학적 신경을 써서 만드는 민족은 얼마 없다. 오죽했으면, 조선자기를 하늘로 본 왜인들이 임란 때 수많은 도공들을 붙잡아가 극진한 대접을 하면서 정착을 시켰겠는가. 그런데 그런 조상들이 일궈놓은 텃밭을 우리는 갈지 못한다. '별 볼 일 없는 우리 문화재'는 돈 밖에 좇을 줄 모르는 천박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원석을 가지고서도 연마하여 세공하지 못하는 기술자는 바보다. 그런 바보는 욕을 먹어도 싸다.
  (그런 점에서 그 때 그 고속도로를 지었던 자가 또다시 대운하를 운운하는 것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21세기의 경제적 자원은 삽질이 아니라 문화다. 나라면 삽질할 돈으로 세계 곳곳에 있는 큰 박물관들에 한국관을 짓거나, 아니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유산들을 사서 유럽의 박물관들 못지 않은 박물관을 지을 것이다. 당장은 돈이 되지 않을 것이지만, 잘 키운 나무를 외면할 사람은 없다.)


  참, 중요한 이야기를 하느라 곁가지를 빼놓을 뻔 했다. 되도록이면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6유로를 주고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자. 어떤 여행사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오디오가이드 MP3 파일을 많이 다운받아서 가지고 다니는데 물론 그것도 훌륭한 방법이긴 하다. 그러나 루브르의 오디오가이드는 단순히 작품의 내력을 설명하는 것을 지나, 그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역시 제안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인들의 훌륭한 미적 감각으로 구성한 '코스별 설명'은 마치 내가 루브르 박물관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속으로 들어가 함께 취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박물관 학예사들의 쉬우면서도 자세한 설명과 그것을 오롯이 녹여놓은 번역은 가히 이제까지 다녀 본 박물관의 오디오가이드 시스템 중 최고라고 할 만하다. 작품에 대한 소개 말고도, 이미 그 자체가 문화재인 루브르 박물관의 역사에 대한 2시간 30분짜리 프로그램도 있으니 꼭 따라가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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