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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 역시 덤덤할 수 있을까 - 성 정체성에 대해

클라시커 2008. 10. 2. 18:14



  요새 네이버 웹툰에서 와난 씨의 '어서오세요, 305호에!'를 꽤 열심히 보고 있다. 이성애자들이 갖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을 꽤나 잘 뒤집어놓는 만화인데, 보면 볼수록 어쩜 이렇게 차분하게 말을 풀어놓는지에 감탄하고 터부시 되었던 이야기를 이렇게 친근감있게 풀어놓는 작가의 용기와 능력에 또 감탄한다.

  이번주 미녀들의 수다에는 왕비호가 나왔는데, 브로닌이 '게이 같습니다~'를 연발해서 꽤 웃었던 기억이 있다. 짧은 핫팬츠와 딱붙는 하트표 면티셔츠, 눈가에 짙게 그은 아이라인이 브로닌이 알고 있는 동성애자의 이미지에 부합했던 모양이다. 웃고 즐기는 분위기로 흘러가자 브로닌은 또 이렇게 말했다. '나 게이 친구 많습니다~' 시쳇말로 무척 쿨했다.

  NBC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로앤오더 : 성범죄 전담반'의 에피소드 중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동성애를 질병이라 생각했던 정신분석학자는 그의 아들이 동성애 행위를 하자, 애인을 벽에 박아 죽이고는 아들마저 학대했다. 그 에피소드 중에는 미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꽤 많은 시각들이 등장한다. 레위기의 한 구절를 들먹이며 동성애자를 저주하는 가톨릭 신부에서부터 - 여담이지만, 남녀의 교합이 아무리 신의 뜻이라 해도 에피소드 속 신부처럼 저주를 일삼는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차원에서 마땅히 파문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소아성애자의 대다수가 동성애자이며, 이성애자보다 성행위기 더 폭력적이라고 주장하는 정신과 의사들까지. 나름 관대하다는 미국 사회에서도 동성애자의 처지가 이렇다는 걸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어쨌거나 인상깊었던 것은, 성 정체성을 찾은 아들의 말이었다. 에필로그에서 검사가 이어지는 공판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커밍아웃을 하게 되므로 앞으로 힘들 것이라 하자,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난 두렵지 않아요.'

  동성애자에 대한 생각을 늘어놓아보라면, 물론 A4용지 한 장도 넘게 늘어놓을 수 있다. 나는 분명히 스스로의 정치성인 좌파적 신념에 의거해 성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인정을 이 사회가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논지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늘 동성애자 - 사실 이게 그들을 지칭하는 '옳은' 용어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역시나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 와의 대면을 위해 이와 같은 시나리오를 생각해두지만 그것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존재에 대한 인식이 없는데 그들에 대한 식견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내뱉는 '시나리오'는 단순한 '좌파적 쿨함'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이론으로만 되는 것은 아닌데, 어찌 사고실험으로만 그들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맥락에서 차라리 김정현의 좌충우돌은 현실적이다. 만화를 보면서 그를 부러워 하는 것은 아마도 나에게 그런 용기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가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적어도 '포비아'는 아니더라도, 막상 만나보면 꺼릴 것이라는 것. 내겐 만화 속 김호모도 귀엽고, 하다못해 '퀴어 아이'로 등장해 요즘은 전 프로그램을 누비고 다니는 스타일리스트 카슨도 정말 사랑스럽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이 '객관적 상관물'이기 때문이다.



  진보신당의 성정치 기획단장 최현숙 씨를 만나봤지만, 무감각했다. 거기에서 '아, 내가 이렇게 쿨한 사람이구나'라 생각할 뻔 했지만, 단지 그 사람도 객관적 상관물이어서였을 거다. 아마 국내 최초로 커밍아웃을 한 홍석천 씨를 실제로 만나봐도 그럴 거다. 객관적 상관물은 아무리 만나봐도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상징이다.


  그나저나 '너 동성연애자지?'란 추궁에 '내가 야동을 얼마나 좋아하며, 섹스에 탐닉하는 보통 남성임'을 자랑하려 드는 사람을 종종 본다. 왜 폭력에 폭력으로밖에 대응하지 못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