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27

몇 가지 도상에 관한 몇 가지 코멘트 -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보고 (시안)

한양대의 임지현 교수는 역사상 모든 독재 정권이 다 대중의 암묵적 동의하에 건설되었다는 ‘대중독재론’을 펼친 바 있다. 애초에 이 영화를 접하게 된 것은, 순전히 브이가 지니고 있는 대중관이 이 임지현의 대중독재론과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은 이런 시시껄렁한 나의 잡학적 호기심에서 발동했다. 줄거리 미래,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2040년 영국. 규범을 벗어났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어디론가 끌려가고, 거리 곳곳에 카메라와 도청 장치가 설치되어 모든 이들이 통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평온한 삶을 유지한다. 어느 날, ‘이비’라는 소녀가 위험에 처하자 어디선가 한 남자가 나타나 그녀를 구해준다. 재빠른 칼놀림, 명석한 두뇌와 모..

왜 계속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지 따져 묻지 마라

유럽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아테네에서 만난 형과 델포이를 함께 간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국제정세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되었다. 그 형님 말씀이, 푸틴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했다. 잠자던 불곰이었던 러시아를 다시 깨운 사람이기 때문에 대통령 임기 후에 총리직을 수행하게 되었으니, 그렇지 않냐는 거였다. 뭐, 따지고 보면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런데 가관이었던 것은 그 말 뒤에 이어진 이야기였다. "푸틴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본 러시아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푸틴을 총리에 옹립한거야. 교수님이 이야기 해 주신 건데, 실제로 푸틴 임기 전에 각 사회단체와 국민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푸틴에게 또다시 권력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생각한 묘안이 바로 총리 임명이라 하더라고. 역시 큰 ..

'불온서적을 판매합니다' - 대학생들의 발칙한 커밍아웃

9월 4일과 5일 양일간, 종로구 명륜동에 위치한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캠퍼스에서는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성균관대 학생모임'(이하 '학생모임')의 주최로 '불온서적 판매전'이 열렸습니다. 학생모임 측은 학내 대안도서관인 '김귀정 생활도서관'(이하 '생활도서관')과 국방부가 지난 7월에 발표한 불온서적 23종 외에 추가로 60종을 선정했고,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의 처지를 생각해 준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 '풀무질'의 도움으로 정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도서들을 판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생모임과 생활도서관 학생들이 선정한 인문사회과학 서적들. 손문상 씨의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이 눈에 띈다.  '불온서적 판매전'의 기획의도를 묻자. 학생모임 측은 '새로운 저항방식을 고민하던 차에 나온 아이디..

'호국불교'란 수식어가 난 왜 이렇게 어색하지?

더위와 올림픽으로 인해 식었던 광장을 불교계가 다시 달구고 있다. MB정권의 막되먹은 종교 편향 행위에 인내심이 다한 불자들이 거리로 나서 '정교분리'와 '국교없음'을 명시한 헌법을 준수하라며 MB에게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누리꾼들은 소강상태로 접어든 촛불집회의 불씨를 불교계가 되살리고 있다고 칭찬하며, '역시 호국불교다'란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 '호국불교'란 수식어가 참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투쟁의 과정에서 한 명의 '내 편'을 얻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전쟁이란 것도 멀리서 바라보면 결국 세력싸움이기 때문에, 내 편을 더 많이 갖는 사람이 대부분 이기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내 적의 적은, 곧 나의 동지'라는 전쟁격언도 있을까. 그런데 이런 말..

꿈이었을까 - '선진국'과 '선진화'의 넓은 간극

잠자리에 들려고 누웠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됐다. "내가 며칠 전까지 정말 유럽대륙을 헤매고 있었던 걸까? 설마 꿈은 아닐까?" 무거운 짐을 매고 낑낑거리며 기차를 탄 일이나 교과서 속에서만 보던 고대의 유적 · 유물들을 실제로 본 일, 그리고 다른 나라나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 술 한 잔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일들이 정말 꿈 속 일처럼 여겨진다. 수없이 드나드는 기차와 거기서 내리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크지는 않지만 현대적이면서도 실용적인 건축물들, 거리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공산당이 버젓이 활동하는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 이건 나에게는 꿈이었다. 내 국적지(國籍地)의 현실은 냉혹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느낀 것은 선진국과 선진도약준비국 간의 문화적 · 정치적 ..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신앙보다는 이성을 따르는 것이 옳다며 '과학인'을 자처하더니 드디어 '돌아온 탕아'가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반은 그렇고 반은 아니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유럽에서 확실하게 배운 것이 한 가지 있다. 영미권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성경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 남들이 뻔히 다 알고 있는 이야길 뭐하러 하냐고 묻는다면 민망하겠지만, 그들의 수많은 행위들이 생각보다 많이 성경구절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게 이번 여행의 성과였다. (하다못해 인종차별까지 성경 속 구절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전해진다. 물론, 성경 구절을 통해 그들의 악행을 합리화했을 거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궁금한 사람은 창세기 9장 18절부터 29절까지를 참고하라.) 더욱이 내가 이해하고 ..

시차적응이 안된다

Tchaikovsky - 1812 Overture Op.49 지휘 : 레너드 번스타인 후반부 3분 30초 분량만 잘라서 업로딩 유럽에서 돌아오자 마자 해야 할 것들이 마치 벽처럼 내 눈앞에 선다. 개강 준비나 현 정권과의 지지부진한 밀고 당기기 - 물론 MB씨는 내가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 말고도 시차적응이라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여하간 해외 여행 경험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몇 번의 사례로 볼 때 나는 그닥 시차적응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비근한 예로 캐나다에 갔었을 때도 밴쿠버에 도착한 첫 날은 물론이거니와 돌아와서도 그닥 장애없이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다. 시차적응을 제대로 못한 탓에 사흘째 새벽 컴퓨터질 중이다. 하기사 원래도 블로그에 글들을 새벽에 ..

8월 17일, 퐁피두 미술관 - 8월 18일, 오랑제리 미술관

- 8월 17일, 퐁피두 미술관 파리의 2대 미술관을 뽑으라면, 누구든 루브르와 오르세를 꼽는다. 그런데 세번째 미술관을 뽑으라면 선택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파리에 미술관이 많기도 하거니와 그만큼 사람들이 그 외의 미술관엔 무지하기 때문이다. 만일 나더러 하나 꼽아보라면, 나는 퐁피두 미술관을 선택할 생각이다. 미술관의 크기나 컬렉션의 수가 앞서의 두 미술관에 비견될 만한 지는 잘 모르지만, 최소한 미술사의 흐름으로 봤을때 그렇다. 근대 이전의 고전 미술 컬렉션을 자랑하는 게 루브르라면, 오르세는 인상파 위주의 근대 미술 컬렉션을 자랑한다. 당연히 퐁피두 센터는 그 외관만큼이나 모던한 현대 미술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먼저 외관에 대해 썰을 풀어보자. 퐁피두 미술관에 붙은 퐁피두는 전후 프랑..

8월 14일, 프랑스 파리 - 오! 샹젤리제

에펠탑이 가장 예쁘게 보인다는 곳, 사이요 궁에 갔다. 에펠탑 앞에 있는 쎄느강을 건너면 바로 위치한 궁인데,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설치된 궁이라고 한다. 파리에는 만국박람회를 위해 설치된 건물들이 참 많다. 에펠탑만 하더라도 박람회를 위해 구스타프 에펠이란 건축가가 지은 것이고, 에펠탑의 근처에 있는 알렉산드르 3세 다리 역시 만국박람회 당시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하다못해 모네인지 마네인지가 - 맨날 헷갈린다 - 자신의 살롱에다 내건 그림이 평론가들로부터 '인상적이다'란 소리를 듣게 된 것도 만국박람회 때였다고 한다. 사이요 궁에서 조금 걷다보면, 개선문이 보인다. 파리에는 현재 세 개의 개선문이 있는데 하나는 루브르 앞에 있는 카루젤 개선문이고 하나는 샹제리제 거리의 시작점에 서 있는 이것이며,..

8월 13일, 프랑스 파리 - 루브르 박물관과 우리네 문화유산

파리에 왔으니 루브르에는 가봐야 할 것이다. 원래는 파리 변방을 수호하는 요새였던 것을, 국왕들이 거처로 삼다가 박물관으로 바꾼 것이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이라고 한다. 물론 이 곳의 많은 컬렉션들은 대다수가 다른 나라로부터 약탈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유럽의 많은 큰 박물관들은 전리품으로 컬렉션을 채우고 있다. 이 곳 역시 마찬가지로 나폴레옹이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약탈해 온 문화재들로 성을 채운 것이 시초라고 한다. 본디 문화라는 것은 힘과 연관이 없다. 팍스 로마나의 뒤를 이어,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영광을 물려받은 미국의 문화가, 그 정치적 힘에 비해 실질적으로는 문화적 가치가 하등 없는 잡탕인 것이나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가 피정복지인 그리스의 문화에 복속당했던 사실은 그러한 실례이다. 그러나 어찌되었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