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記/2015 이전

미용실은 옮기면 그 미용실은 못간다

클라시커 2010. 12. 19. 00:57
그러고보면 '단골'이란 개념이 무색해지는 업종이 있는데, 미용실의 경우가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워낙 '미'라는게 세월에 인색하고, 더군다나 타협이란게 없다보니 속칭 '요즘 스타일'이란걸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잘 다니던 미용실을 바꿔야 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맘에 쏙드는 스타일을 연출해주던 선생님이 다른 곳으로 가시는 경우에는, 더더욱 말이다.

그런데 재밌는건, '동네 미용실 어디가 싸고 잘 한다더라'는 소리를 듣고 다른 곳에 한 번 가게되면 설령 처음 가본 미용실이 늘 다니던 미용실보다 머리를 잘 만지지 못하더라도, 이전 미용실을 가기가 조금 멋적다는거다. 한 달에 한 번 이발하던 내가, 어느 한 달을 거르면 미용실 원장님이 내가 딴 데로 샜다는걸 분명히 눈치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좀 미안하다는거지. 아, 물론 일반적인 이야긴 아니고 내 얘기다.[각주:1] 그리고 사실은 이게 오늘 말하려는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연결짓기 위해 애써 억지를 부릴 수밖에 없다.

지겹게 이야기했지만, 나는 지난달 말 즈음에 진보신당을 탈당했다. 그리고 방황하는 처지다. 같은 시기에 탈당을 하신 분들 중 일부는 사회당으로 가셨지만, 어째 나는 그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이건 또 내가 열린우리당에서 민주노동당으로, 그리고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으로 적을 옮길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탈당계를 작성한 세 경우 모두, 전에 몸담던 곳에 큰 실망과 회의를 가지고 뛰쳐나온 것은 동일하지만 이번에는 지난 두 번처럼 아예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복당하진 않을 것이다. 이유는 앞서 적은대로 '실망과 회의' 때문이지만, '미용실을 바꾼 사람의 마음'으로 설명하면 될까. 그러나 그런건 안될거다. 그러니까 이 글은 처음부터 망한 셈.





가장 책망해야 할 것은 다름아닌 나 자신이다. 나는 그 긴 정당세월에서 대체 무얼 해왔나. 그저 몇 명의 정치인에게 눈이 멀어, 손 벌리면 돈이나 좀 가져다 쥐어주는 허접한 팬이었을 뿐이다. 그런거로 세상이 바뀌나? 안 바뀐다. 비록 현재 상황이 공식적인 정치행보를 할 수 없는 처지라고는 하지만, 그건 핑계고. 분명히 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별 고상한 이유를 다 갖다 붙여대며 한 명의 투사가 된듯 행동했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았고, 그건 모두 내 잘못이다. 한국 진보정당 운동한다는 사람들의 허접한 의식구조는 그 다음의 문제겠고.
  1. 여긴 내 블로그니까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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