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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을 투쟁 수단으로 삼는 시대

클라시커 2010. 11. 1. 02:08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되며, 자살로 인해 목적이 달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

- 2003년 11월 5일, 노무현 대통령,
10월 29일에 발표한 대정부담화의 부족함을 지적하며, http://bit.ly/9hFB8u


구미 KEC 파업과 관련해, 사측과 협상 중이던 민노총 금속노조 구미지부장이 분신했다고 한다. 얼굴? (전신?)에 2.5도 화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기도가 열려 고비는 넘겼다고 하는데, 모쪼록 치료가 잘 되어 무탈하시기만을 바랄 뿐이다. 문제는 주변 사람들인데, 공장 안의 최일배 씨(민노총 경북본부 구미지역 조직부장)는 진보신당 김은주 부대표와의 통화에서 "결단을 하겠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http://bit.ly/bN2wF6) 원만하게 사태가 해결될 수 있었던 기회가 사측과 공권력의 만행으로 수포로 돌아간 적이 빈번하다보니, 어제 일에 대한 심적 동요가 심각한 모양이다. 더 이상의 인명손실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분신 소식을 전해 듣고 있자니,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이 한 저 발언이 생각나 옮겨본다. 이 발언 이후에 꽤 격앙된 반응들이 줄을 이었었는데, 나는 노무현이 나쁜 의도로 저런 말을 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아니 정확히 이야기해서는 그러리라고 '믿는다. 위에 건 링크에서, 마지막에 대변물론 뒤이어 나온 발언들 ("민주노총은 더 이상 노동운동을 하는 곳이 아니다" http://bit.ly/cHaKfU, "폭력시위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http://bit.ly/dDow5k)을 고려하면 아득하기가 구만리지만 말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는데 왜 여전히 분신하냐" (http://bit.ly/bSGVye)는 식의 힐난들 - 물론 이건 일부고, 안타까움이 대부분이지만 - 에 대해서는 조금 분노해야겠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변했다'라고 말하지만, 노동'시장'만을 놓고 보면 그 변했다는 세월들이 어디로 갔나 싶을 때가 많다.

단적으로 근로기준법만 해도 1956년부터 1997년 폐지되기까지는 11차례, 신법을 제정한 1997년부터 올해까지는 22차례 밖에 개정되지 않았다. 22번이라는 횟수가 꽤 많아보이고, 또 그만큼 노동관련법이 개선되었으리라 기대하겠지만 그렇지는 않은듯 싶다. 예를 들면, 98년 2월 20일에 법률 제5510호에 의해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경영상 긴박한 사유'로 '경영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사업의 양도·인수·합병'을 볼 수 있다는 조항(제31조)를 넣어 구조조정을 합법화하기 위한 개정도 있었다. 또 노동법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목되는 '제3자 개입금지'는 80년에 삽입된 이래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고 한다. 물론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비정규직법') 등의 노동조건의 개선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관련법률 제정이나 '주당 노동시간의 감소', '월차유급휴가의 사용촉진' 등을 명시한 조항의 삽입 등으로 인한 개정이 있기도 하였으나, 그런건 22차례의 개정 중 단 너댓건 밖에 되지 않는다. (나열된 순서대로 05.1.27 법률 제7379호, 06.12.21 법률 제8074호, 03.9.15 법률 제6974호) 나머진 관련법률의 명칭이 바뀌었다거나, 노동부가 '고용노동부'로 바뀌었기 때문이라던가, 아니면 '법률이 읽기 어렵기 때문'이라던가 하는 이유로 개정된 것들 뿐이다. 그러니까... 근로기준법만 놓고 따져보면, 13년간 노동자의 처우는 별로 개선되지 않은 셈이다.

물론 사회는 500여년 전보다는 훨씬, 10년 전보다도 훨씬 진보했다. 하지만 사용자들이 '수퍼 갑', 노동자들은 '만년 을'인 상황은 왜 여전한걸까. 사람들이 목놓아 부르며 그리워하는 지난 민주정부 때나, 역시 사람들이 '과거로 회귀한다'며 저마다 질타하기를 서슴지 않는 현 정부에서나 말이지. 나는 이런걸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 높은 크레인 위에서 목을 멘 김주익이 남긴 유서 중 일부를 인용하며 글을 끝맺는다.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다. …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만 21년, 그런데 한 달 기본급 105만원. 그중 세금들을 공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팔십 몇 만원. 근속 년수가 많아질수록 생활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할텐데 햇수가 더할수록 더욱 더 쪼들리고 앞날이  막막한데, 이놈의 보수언론들은 입만 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니 노동자는 다 굶어죽어야 한단 말인가."

- 2003.10.17.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 유서 중에서


덧 1. 간혹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당연히 돈 주는 사람이 갑이지, 그럼 누가 갑을 해요?"라며 되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알아둬야 할 것은, 노동자들이 '그냥' 사용자에게 임금을 챙겨가는건 아니란 사실이다. 노동자들(가계)은 '노동'이란 자본을 사용자(기업)에게 제공하고 그 댓가로 '임금'(소득)을 가져간다. 그리고 가계는 다시 그 '임금'으로 사용자가 시장에 내놓은 상품을 구입(지출)한다. 가계의 지출은 기업에게 수입으로 돌아오고, 다시 기업은 그 수입을 토대로 가계에 임금을 지불한다.  이런걸 가리켜 경제의 순환이라 하고,  굳이 학부 수준의 경제학 교과서까지 갈 필요 없이,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첫 단원에 나오는 이야기다. 모르면 가만히라도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을, 이런 때 쓰는 것이련가. 정당한 노동쟁의를 탄압하는 사용자보다 더 나쁜 건 말이다. 저기서 파업하는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지들도) '을'인 주제에 '갑'의 논리를 펴는 놈들이다. 나는 솔직히 너넨 좀 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르면 가만히라도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덧 2. 글을 계획없이 쓰다보니, 중간에 끼워넣을 데가 없어 그냥 지나쳤다. 분신에 대한 개인적 호오를 밝히라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 내게 말한 것처럼 '신체훼손을 통한 투쟁을 영웅시하거나 숭배하여 그렇게까지 절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선택하게 만드는 엄숙주의적 문화는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이지 않나'라고, 나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동네 문제다. 그 엄숙주의를 깨려고 사용자들이나, 그 사용자들에게 권력을 제멋대로 이양한 정부가 파업을 탄압하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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