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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은 인민의 삶을 낫게 할 수 없다

클라시커 2011. 5. 8. 22:22
며칠 전 MBC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사랑'을 봤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고 어두운 삶을 살았다가 결국 임신한 채로 수감, 교도소 내에서 아이를 낳아기르던 (그리고 지금은 출소해 시설에서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어떤 여성의 이야기였다. 그의 인생보다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의 아이가 '한부모 자녀'란 이유로 받고 있던 육아기관 지원금이었다. 비록 시설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해 얻은 임금으로 아이와 살 방 한 칸을 마련하는 꿈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이 '지원금'은 큰 도움이라고 나레이션은 말한다.

물론 튼튼한 안전망 구축 대신 몇 푼의 돈을 쥐어주는 것으로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혹자들은 말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측면이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에게 지금 현재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그 '돈 몇 푼'이지, 숭고한 '보편적 복지'라는 말 따위가 아니라는 것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

이러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대체 진보정당의 '새로운 출발'이 무슨 소용이며, '대연합'이라는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소위 대연합을 주도하겠다는 어떤 단체는 전면에 '복지'를 내걸고, '복지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있다고 '이야기'만 들었지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그 복지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없다. 진보대연합이라거나,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말하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몇몇 제 세력들이 한 깃발 아래 모여 덩치만 키울 수 있다면 만사가 형통할 것처럼 말한다.

사람이 모이면 힘이 생기고, 힘이 생기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관철'할 수 있다는거야 이 세계의 비정한 현실이자 이치이긴 하다. 하지만 이들이 '권력'이란 것의 최변방에서만 머물렀던 것도 아니다. 비록 적은 수긴 했지만 몇 석의 의원석을 얻었고, 다른 정당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액수였지만 '세비'란 것을 받으면서 빚내서 정치하겠다는 부담도 좀 덜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정치'의 내용은 이전의 배곯던 시절에 비해 재미도, 감동도 없고 질도 크게 떨어진 것 같다.  원외에 있을때 그렇게 '가열차게' 주장했던 부유세 신설이라든지, 무상급식 조례안 제정이라든지 하는 나름 신선한 이야기들은 사라졌고 진보정치세력의 모든 정치기획은 선거와 표 동원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이명박의 집권과 분당 이후에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자신들을 '진보'라 칭하는 모든 세력들의 입에서는 담론이란 것 자체가 안개처럼 사라져버렸다. 더 이상 그 누구도 소수자 문제나 인권과 같은 '나부랭이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진보' 정치세력들은 한국 사회를 지금보다 더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정치기획을 할 시간에, '어떻게 하면 의석 하나를 더 얻을까'나 '어떻게 이명박 정부를 때리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만을 고민하고 이에 '진보' 언론들은 덩달아 춤을 추고 있다. 한심한 일이다.

비전도 주지 못하고, 그저 합치는 것 이외엔 미땅한 기획도 없는 정치세력보다는 돈 몇 푼이 더 현실적인 도움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대로라면, 진보정당은 절대 인민의 삶을 낫게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