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記/2015 이전

뚜껑은 열렸나

클라시커 2011. 9. 7. 00:09
뚜껑이 열렸다. 3분의 2를 얻지 못하는 수. 사람들은 '그러니까 진즉 당원총투표로 해야 하지 않았냐'라고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나오는 그런 말들은 그냥 죽은 자식의 불알을 만지는 일 뿐. 다른 방법이 있는데 하지 않아 아쉽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모름지기 사안을 두고 다투는 사람들이 어떤 방법이든 도출된 결론에 수긍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시점에는 그런 믿음조차 없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미 대세는 통합으로 기울어진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정치를 '힘을 얻는 것'이라 정의하고 실행할 때에, 여러 모로 통합을 하는 것이 정의한 '정치'를 실천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맞다. 대의원들 역시 그런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의 결과가 바로 '과반의 찬성'일 것이다. 여기까지는 나와 노, 심, 조 셋이 공유하는 지점인 것 같다.

다만 이 이후의 해석은 나와 그들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복당파가 '매직넘버 10'을 얻지 못한 이유가, 매우 폐쇄적이고 상층부 중심주의로 흘러간 - 그리고 전혀 신당 사람들의 의지와 상관 없이 - 협상 때문이라고 본다. 한참 당내 의사소통이 벌어지고 있을 즈음에 당대표였던 조승수는 '무슨 일이 있어도 9월까지 통합해야 한다'는 등, 매우 조급한 발언으로 당 사수파들의 지적을 받았는데 이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요건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조승수는 협상의 대표였고, 모름지기 대표란 대표하고 나선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조정된 것을 바탕으로 협상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역시 이해당사자 중 하나이기 때문에 자신의 정견을 발표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을 협상장에서까지 관철할 권리는 없다.

나는, 당대회에서 끝까지 찬성표를 던지지 못한 사람들이 이 부분을 문제삼았으리라 생각한다. 즉, 이번에 부결된 통합안은 '절차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에' 부결된 것이지, 통합 그 자체에 대한 부결은 아니라 해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지금 이 시점에서 흐트러진 당의 매무새를 가다듬은 후 다시 통합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 심, 조는 결국 '당외 투쟁'을 선언했다. 복당을 선택한 사람들 중에서도 탈당하겠다는 사람들과 탈당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혼재한 가운데, 이들의 거두 격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감히 탈당을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못먹어도 고'를 외치는 것으로 봐서는 통합의 싹수가 아예 없다고 보는 것 같지는 않은데, 굳이 외곽 조직을 만들어 협상력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들은 이를 '민중의 염원'이라 할지 몰라도 역사적으로는 매우 좋지 않은 전례로 남을 것이다. 항상 세가 커지는 것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인데, 이미 내용은 없고 껍데기만 남은 상황이다. 새로 내용을 채울 수도 있지만, 굳이 이 껍데기를 고수하겠다고 한다. 더욱이 이들에게 승복을 거부한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지금 당장은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이 이어지겠지만, 결국 이 일은 나중에 이들의 운신의 폭을 줄이게 될 것이다. 결국 자신들에게 높은 충성도를 보였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이들에 비해 충성도는 낮다.)

다른게 아니라 이것이 적전분열이다. 충분히 자신들이 가진 정치적 자산을 토대로 결과에 대한 '유리한 해석'을 이끌어 내 당 전체를 무기로 협상장에서 싸울 수도 있는데, (내 판단으로는) 매우 근시안적인 선택이 재분열을 낳고 있다. 신당과 민노당이 분당될 때는 '낡은 진보 청산'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셋에게 아직 때가 아니란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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