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랬다. 이기심이 없었다면 세상은 발전하지 못했을 거라고. 사람들이 사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 자신이 꿈꾸는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 바로 그것 때문이다. '요즘은 애들이 돈만 밝힌다', '주변을 돌아볼 줄 모른다'며 혀를 끌끌차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내용이 어쨌거나 자신의 지향을 향해 분투하고 있음은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해 곰곰히 생각해본다. 과연 내 지향은 무엇인가. 내가 생각을 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나는 언제나 주류에 편입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꽤 멋진 일(?) 같았고, 한동안은 스스로가 '비주류'이라 굳게 믿으며 자랑스러워도 했던 것 같은데, 요 몇 년 새 그런 생각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니 애당초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참 꿋꿋하게 해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논쟁의 시작
저런 생각에 취해 있던 벌거숭이 시절이다. 친구들과 함께 잠깐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우리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자'는 결론을 낸 적이 있다. (어찌나 호기로운지!) 그런데 그 방법에 대해 이견이 났는데, 나는 '아래에서 변혁을 노래하자'고 주장했고 다른 친구는 '성 내에서 가교를 내려 성을 무너뜨리자'고 주장했다. 그 친구는 '일단 안에 들어가서 문을 여는 것이 빠르고 효율적이다'는게 논거였고, 나는 '일단 체제에 편입된 자가 문을 열어줄 거란 확신을 가질 수 없으며, 엘리트 중심보다는 인민 중심 체제를 세우는 것이 비록 느리지만 견고할 것이다'라 응수했던 것 같다. 물론 그 때의 생각이다.
이제 그 이야기를 나눈지도 어언 7년이 다 되었고, 지금 생각하면 당장의 남조선 사회에서는 그 친구의 방법이라도 일단 차용하는 것이 조금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조금씩 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성문을 열겠다'는 친구들을 완전히 믿을 수가 없다. 단적으로 남조선의 역사를 통틀어 그렇게 한 전례를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일제강점기를 전후해 '마이너리티를 생각하는 몇몇의 엘리트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세상이 미쳤기 때문인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한 사람의 '지사'로 기억될 뿐이지 세상을 뒤엎은 '혁명가'로 기억되지는 않고 있다.
귀찮을 때는 경험적 증거를
반면 애당초부터 아래에서 시작해 세상을 조금씩이라도 바꾸는 사람들은 많다. 전태일이 그랬고, 김진숙이 그렇고, 가깝게는 내 친구 공현이 그렇다. 함께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아, 학교의 비합리한 조치에 여러모로 이의를 제기하던 공현은 이제 어엿한 중견 활동가가 되어 책이며 강연을 다니는 등의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물론 '김상곤이라는 엘리트 관료가 말을 꺼냈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라는 게 비로소 현실화 될 수 있지 않았느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공현이 학교를 졸업한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가 일을 시작하면서 해왔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들의 활동에 의한) 맥락이 있었기 때문에 김상곤이라는 엘리트 관료가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할 법 하다.
어쨌거나 그래서 내 경우에는 어떻냐면. 나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전히 마이너리티를 추동하는 것이 근본적인 사회변혁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나 중요한 것은 현재 내가 딛고 서 있는 맥락인데, 이것을 보면 나는 어느새 7년 전 나랑 의견을 달리 했던 친구의 길을 가고 있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했지만, 행동으로는 그동안 얼마나 메이저 리그에 진입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 왔던가를 생각하면 부끄럽기가 짝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마이너 리그의 반란을 지지한다. 다만 내 스스로 '변혁의 주체가 되겠다'고 말을 하지 못할 뿐이다.
미증유의 기록을 세워주길
얼마 전에 7년 전의 그 친구가 사법시험에 합격해 졸업을 하고 사법연수원을 다니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녀석이 그렇게 주장하던 대로 이제 '성 안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남조선이 어쨌거나 변혁의 흐름을 가져야 한다는 내 입장에서는, 당시의 기억을 근거로 한 명의 세작이 기득권의 견고한 성 안에 들어간 것으로 여기고 있다. 머리가 좋은 녀석이니 그 때의 소신도 잊지 않고 있기를 기원한다. 미증유, 내가 그 녀석에게 기원하는 것은 미증유의 역사다.
이와 관련해 곰곰히 생각해본다. 과연 내 지향은 무엇인가. 내가 생각을 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나는 언제나 주류에 편입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꽤 멋진 일(?) 같았고, 한동안은 스스로가 '비주류'이라 굳게 믿으며 자랑스러워도 했던 것 같은데, 요 몇 년 새 그런 생각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니 애당초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참 꿋꿋하게 해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논쟁의 시작
저런 생각에 취해 있던 벌거숭이 시절이다. 친구들과 함께 잠깐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우리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자'는 결론을 낸 적이 있다. (어찌나 호기로운지!) 그런데 그 방법에 대해 이견이 났는데, 나는 '아래에서 변혁을 노래하자'고 주장했고 다른 친구는 '성 내에서 가교를 내려 성을 무너뜨리자'고 주장했다. 그 친구는 '일단 안에 들어가서 문을 여는 것이 빠르고 효율적이다'는게 논거였고, 나는 '일단 체제에 편입된 자가 문을 열어줄 거란 확신을 가질 수 없으며, 엘리트 중심보다는 인민 중심 체제를 세우는 것이 비록 느리지만 견고할 것이다'라 응수했던 것 같다. 물론 그 때의 생각이다.
이제 그 이야기를 나눈지도 어언 7년이 다 되었고, 지금 생각하면 당장의 남조선 사회에서는 그 친구의 방법이라도 일단 차용하는 것이 조금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조금씩 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성문을 열겠다'는 친구들을 완전히 믿을 수가 없다. 단적으로 남조선의 역사를 통틀어 그렇게 한 전례를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일제강점기를 전후해 '마이너리티를 생각하는 몇몇의 엘리트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세상이 미쳤기 때문인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한 사람의 '지사'로 기억될 뿐이지 세상을 뒤엎은 '혁명가'로 기억되지는 않고 있다.
귀찮을 때는 경험적 증거를
반면 애당초부터 아래에서 시작해 세상을 조금씩이라도 바꾸는 사람들은 많다. 전태일이 그랬고, 김진숙이 그렇고, 가깝게는 내 친구 공현이 그렇다. 함께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아, 학교의 비합리한 조치에 여러모로 이의를 제기하던 공현은 이제 어엿한 중견 활동가가 되어 책이며 강연을 다니는 등의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물론 '김상곤이라는 엘리트 관료가 말을 꺼냈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라는 게 비로소 현실화 될 수 있지 않았느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공현이 학교를 졸업한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가 일을 시작하면서 해왔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들의 활동에 의한) 맥락이 있었기 때문에 김상곤이라는 엘리트 관료가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할 법 하다.
어쨌거나 그래서 내 경우에는 어떻냐면. 나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전히 마이너리티를 추동하는 것이 근본적인 사회변혁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나 중요한 것은 현재 내가 딛고 서 있는 맥락인데, 이것을 보면 나는 어느새 7년 전 나랑 의견을 달리 했던 친구의 길을 가고 있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했지만, 행동으로는 그동안 얼마나 메이저 리그에 진입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 왔던가를 생각하면 부끄럽기가 짝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마이너 리그의 반란을 지지한다. 다만 내 스스로 '변혁의 주체가 되겠다'고 말을 하지 못할 뿐이다.
미증유의 기록을 세워주길
얼마 전에 7년 전의 그 친구가 사법시험에 합격해 졸업을 하고 사법연수원을 다니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녀석이 그렇게 주장하던 대로 이제 '성 안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남조선이 어쨌거나 변혁의 흐름을 가져야 한다는 내 입장에서는, 당시의 기억을 근거로 한 명의 세작이 기득권의 견고한 성 안에 들어간 것으로 여기고 있다. 머리가 좋은 녀석이니 그 때의 소신도 잊지 않고 있기를 기원한다. 미증유, 내가 그 녀석에게 기원하는 것은 미증유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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