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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 창당에 대한 몇 가지 생각

클라시커 2011. 10. 21. 11:44
녹색당 창당 발기인 대회는 9월 30일도, 10월 31일도 아닌 10월 30일이라고 합니다. 31일은 월요일이네요. (...)

10월 30일, 선유도 공원에서 (가)녹색당 창당 발기인 대회가 열린다. 남조선에서도 유럽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처럼 정당으로서의 환경운동조직이 건설되는 것이다. 사실 남조선에서 아예 녹색당 건설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초록정치연대랄지, 초록당 사람들(준)이라는 이름의 조직들이 존재했지만 그동안은 정말 '준비'만 했던 조직들이었다. 그 준비와 노력들이 이제 결실을 얼마 앞두지 않은 셈이다.

녹색당 창당의 배경과 구성

사실 그동안 이들이 '준비'만 열심히 하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남조선의 인민들이 '생태'라는 가치를 부차적인 가치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먹고 살 만 하면, 그때쯤 생태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아주 '자애로운' 생각들이 지배적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이 쉽게 깨질 수도 있다는 게 최근 이웃나라 일본의 재해로 인해 확인되었다. 막연하게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던 핵발전소(원전)이, 사실은 다른 이름의 핵폭탄일 수도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남조선에서 '녹색당 창당'이란 담론이 공론화된 시점은 이 이후였다. 시점만 놓고 보면, 애당초 일본의 일을 기회로 삼아 남조선에서도 녹색당 창당을 해보겠다는 의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물론 이후의 상황은 이들의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는데, 핵발전소에 전기 생산량의 상당부분을 의존하고 있다는 남조선의 현실논리가 등장했고 사람들이 이에 동조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번 창당 발기인 대회에는, 애당초 이들이 노렸던 것처럼 많은 '탈색된 민간인'들이 참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초록당 사람들(준) 같은 기성정치조직이 참가하는 동시에 그동안 환경운동을 해 온 환경운동연합 같은 기성 환경운동 그룹들, 생태에 관심있는 소수의 '탈색된 민간인'과, 그리고 - 녹색당을 조직하는 입장에서는 아주 고맙게도 - 삽질을 크게 해주는 진보신당 같은 진보정당에 크게 실망, 대안정치세력을 찾는 활동가 및 당원들이 참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녹색당 우경화의 바람

문제는 이들 간에 약간의 동상이몽이 있는 것 같다는 거다. 초록당 사람들(준)이나 환경운동연합 같은 기성 환경운동그룹들은 이 당을 오롯한 생태주의 정당으로 꾸미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반해, 기성 정당 영역에서 대안을 찾아 녹색당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적-녹 정당의 실현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인지는 모르나, 벌써 오랫동안 생태운동을 해오신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이 "적색과 녹색은 같이 갈 수 없다"(http://cafe.naver.com/yesgreens/3504)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고 전해진다.[각주:1] 반면 기성 정당 영역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은 '생태주의의 실현은 무한 성장을 지향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속성과 대립한다'는 요지로 적-녹 연합의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김수민의 '녹색당 참여선언'으로 갈음한다. 꼭 읽어보길 권한다. http://kimsoomin.tistory.com/378)

사실 녹색당의 우경화는 이미 녹색당이 건설된 대부분의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당장 녹색당이 '집권했다'며 남조선 녹색당의 롤모델 쯤으로 종종 등장하는 독일의 경우가 그 대표적 사례다. 이 이야기에 관해서는 8월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 그 중 일부를 소개한다.

(전략) ‘경제와 생태는 서로 잘 통한다’는 확신에 고무된 함부르크 녹색당은 15년 전부터 완벽한 행동 변화를 보여왔다. 오랫동안 좌파에 몸담은 함부르크 녹색대안당인 ‘녹색대안명부’(GAL·Grün Alternative Liste Hamburg)의 일부 창당 회원들은 1999년 연방 당국이 코소보전쟁 참여를 승인하자 이에 항의하기 위해 문을 박차고 나갔다. 평화주의의 포기와 이후 코소보전쟁에서 흘린 피는 고등교육을 받고 가정형편이 넉넉한 신세대와, 정부기관이나 기업에도 호의적인 신세대 녹색 활동가들을 많이 양산했다. 함부르크 적-녹 연정의 대변인인 여성의원 안야 하즈덕은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다. 심리학자인 그는 1995년 당원증을 발급받기 전까지는 녹색당을 찍은 것 말고는 한 번도 녹색당을 위해 시위해본 적이 없다. 2002년 분데스타크 의원으로 당선된 뒤, 그녀는 동료들과 똘똘 뭉쳐 부자들에게 부과된 부유세 감축을 승인했다. 이후 부유세 세율은 슈뢰더 집권 기간에 53%에서 42%로 낮아졌다. 그는 “좌·우파의 도식이 내게 믿음을 준 적이 없다. 녹색당이 경제개방을 한 것은 잘한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후략)

- <녹색당의 황금빛 아망>, 올리비에 시랑,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월호

(전략) 피셔(요슈카 피셔 : 녹색당 출신 정치인. 독일연방공화국의 총리를 지냈다 - 인용자 주)는 2005년 선거 패배로 조기 퇴진하며 (중략) 다국적기업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 그는 컨설팅 회사 요슈카&코(CO)를 설립했다. ‘CO’는 1995~2004년 분데스타크 녹색당 대변인을 지낸 동업자인 디에트마 후버를 의미한다. BMW와 지멘스, 그리고 유럽의 거대 상설 할인마켓인 레베(Rewe) 등이 고객이다. 게다가 이 회사는 1년 전부터 투르크메니스탄·이라크·터키의 지도자들과 함께 나부코(Nabucco) 유럽 가스관 프로젝트 컨소시엄을 추진하고 있다. 공직을 떠나 사기업을 운영하는 전직 독일 외무장관에겐 적격인 프로젝트다. (중략) (녹색당 출신으로) 권력의 맛을 본 이들은 ‘색다른 정치’를 펴고 있다. 이를테면 이들은 자신의 의원 경력을 재계의 문을 여는 ‘마법의 열쇠’로 활용하고 있다. 2006년, 슈뢰더 정부에서 보건부 장관을 지낸 안드레아 피셔(요슈카 피셔와 인척 관계가 없음)는 제약업계 로비 전문 홍보 자문회사인 플레온(Pleon)에 합류했다. 그는 현재 보건업계를 상대로 ‘독립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베를린 녹색당 대변인 출신인 그의 동료 노베르트 셸베르크가 그를 돕고 있다. 셸베르크는 동시에 주요 고객인 약사연맹(VFA)의 이익도 옹호하고 있다. (중략) 미국 그룹 마스인코퍼레이티드는 ‘건강·영양·지속적인 개발’ 부서 총괄을 2005년까지 슈뢰더 정부에서 소비자보호 국무장관을 지낸 전 녹색당 의원 마티아스 베르닝거에게 맡겼다. 분데스타크 녹색당에서 기부금 조성과 기업 관계를 담당했던 전 녹색당 의원 마리안 트리츠는 현재 독일 담배산업의 로비스트로 일하며 흡연자 보호를 책임지고 있다. 그녀는 채용 당시 담배를 옹호하는 것이 “무척 흥분된다”고 했다. 하지만 모험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향후 원자력산업에도 뛰어들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실망스러운 답변을 했다. (중략) 2008년, 13년간 분데스타크(Bundestag, 독일연방하원 - 인용자 주) 녹색당 의원을 지낸 마가레타 울프는 디클링아른트자문(Deekeling Arndt Advisors)에 합류했다. 그녀는 이 업체에서 ‘그린워싱’(겉으로는 환경친화적인 정책 또는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환경을 파괴하는 등 다른 방향의 행위를 하는 것)의 미덕을 원자력업체들에 강연하고 있다. 울프의 줄타기는 원자력업체 EnBW에 취직한 녹색당의 역사적 인물이자 전 분데스타크 녹색당의 선동가 레조 슐라우흐의 줄타기와 거의 일치한다. 11년간 녹색당 의원을 지냈고 독일 텔레비전 에서 에너지 문제 전문가로 활동했던 미샤엘레 후스테트는, 현재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원자력업체인 RWE에서 ‘재생에너지’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 <돈방석에 앉은 요슈카 피셔'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월호, 인용자는 나를 의미한다.


독일 뿐만 아니다. 프랑스 녹색당(Verts)도 애초에는 좌파정당으로서의 포지션을 잡고 출발했지만, 이후 이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별도의 녹색당(Cap21)을 창당함으로써 2002년 대선에는 생태주의를 표방하는 정당 출신 후보가 둘이나 나오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스웨덴 녹색당도 결국엔 득표를 위해 '고속철도 개발' 등 이른바 '녹색 성장' - '그린 워싱'의 대표적 수사다 - 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개중 뉴질랜드 녹색당 정도나 여전히 좌파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 상황이다.

남조선 녹색당의 미래

문제는 남조선이라고 해서 이렇게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는 거다. 일단 남조선의 환경운동가 출신 명사 중 (거칠게 말해) 좌파적 색채를 띈 인물은 거의 없다시피한 상황이다. 환경운동연합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최열이 그렇고, 환경운동연합 출신 변호사 오세훈이 그렇다. 오히려 이들은 '중도적'이기는 커녕 이후 기득권층의 이익에 복무하는 모습까지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도 현재 환경운동연합 같은 환경운동이나, 생협이나 한살림 등 생태주의에 기반을 둔 협동조합의 주 참여층은 좌파 진영에서 설정하는 전통적인 '사회적 약자 계층'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나 생태주의적 식품을 판매하는 협동조합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여기에는 생태주의적 농사, 생산방식을 총칭하는 '유기농'에 '고급스럽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도입된 영향이 크며, 궁극적으로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남조선 사회 자체적으로 '생태'라는 것을 기본적 권리가 아닌 부차적 권리로 여기고 있는 의식 덕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현재 상황 및 그동안 흘러온 맥락을 볼 때, 남조선의 녹색당 운동 역시 우경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나는 여기고 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색과의 연합을 통해, 좌향좌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우향우는 막아야 한다고 보지만 과연 이것이 얼마나 실현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1. 그러나 김종철 발행인의 평소 이야기들을 놓고 생각해 보면 이것이 김종철 발행인이 하려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을거라 생각한다. 이 날 이 발언을 요약해 옮긴 작성자의 의도가 개입됐을 거라 추측해 본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