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記/2015 이전

[용산>이태원동] The Booth

클라시커 2013. 8. 21. 00:23



  2008년에 유럽여행을 어찌저찌 다녀오게 되었는데, 독일에서 마신 맥주는 정말 한국에서 맛 본 맥주와 차원이 다르더군요. 뭔가 탁한 것이 청량함은 좀 덜했지만 그 풍미가 으뜸이요, 한국에서는 마셔보지 못한 맛이었지요.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이 바이에른의 자랑, 바이젠이었습니다. 라거 맥주가 대세인 한국에서는 쉽게 마실 수 없는 맥주였지요. 한국에 돌아와 찾아보니, 저처럼 여행에서 접한 맛을 한국 맥주로 달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결국 '홈브루잉'이란 것을 한국에 들여오고야 말더군요. 저도 그 이야기에 혹해 키트를 찾아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검색해보니 한 번 만들면 대략 5-6리터 정도가 기본으로 생산된다고 하여, 술을 많이 먹지 못하는 제게는 고역일 것 같아 제풀에 그만두긴 했지만 말입니다.


  몇 년이 지나, 사람들은 이제 맥주의 맛을 논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맥주는 이제, 그냥 더운 여름날 지친 몸을 이끌고 와 갈증을 식혀주던 단순한 임무를 뛰어넘어 이제는 그 맛으로 먹는 하나의 '음식'이 된 셈입니다. 이 추세에 맞춰, 이제 홈브루잉 맥주, 혹은 크라프트 맥주는 소수가 아닌 일반 대중이 찾는 기호식품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영향인지 이국적인 분위기로 유명한 이태원동 근처에는 벌써 크라프트 맥주를 선보이는 맥주집이 벌써 세 곳이나 생겼더군요.


  네, 아시는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경리단길 이야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더 부쓰'를 이야기합니다.


  사실 더 부쓰는 워낙 유명해서, 지금 제가 구태여 다시 이야기하기도 살짝 민망한 곳입니다. 이코노미스트에서 한국 맥주를 혹평한 기자가 참여했다는 사실은 이미 인터넷에서는 정설인 것으로 보입니다. 제공되는 맥주는 단 세 종류. 바이센과 오트밀 흑맥주, 그리고 페일에일입니다. 안주로는 치즈피자와 페퍼로니피자만 판매되는데, 홍대의 한 피자집에서 공수해 오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조금 이른 시간인 5시 경에 찾은 더 부쓰는 한가했습니다. 저희 일행을 포함해 세 팀 정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문하려고 보니, 늦은 시간에 잠깐 방문했을때 보았던 바이센과 흑맥주는 없고 더 부쓰의 대표격인 페일에일만 있더군요. 무슨 일인가 여쭤보니 이른 시간에는 페일에일만 제공이 된다고 합니다. 다른 맥주는 언제쯤 맛볼 수 있냐고 여쭸더니 저녁에나 들어온다고 하시더군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냐는 질문에는 다소 불쾌한 듯 '저녁이요'를 반복하셨는데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제가 이 세계에서 통용되는 어떤 룰을 깬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곳 페일에일에서 제가 느끼는 점이라면, 페일에일의 아로마가 정말 마시는 사람을 기분좋게 한다는 점입니다. 첫맛은 다소 쌉쌀하지만, 끝에 느껴지는 달콤한 과일향이 있죠. 같이 간 친구도 이 조합을 참 좋아하더군요. 많지는 않지만 적당히 즐길 정도로 올라와 있는 거품과 마실때마다 잔에 남는 거품자국을 보고 있노라니, 그리고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절로 웃음꽃이 피더군요.


  더불어 이 곳에서 판매되는 피자는 제가 맛 본 피자 중 단연 최고라고 손꼽고 싶은 피자입니다. 다소 짠 것이 흠입니다만, 맥주안주로는 안성맞춤이겠고요. 잡다한 토핑이 올라있지 않아, 피자를 먹으면서도 맥주의 맛을 놓치지 않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가격도 나쁘지 않습니다. 큰 크기의 피자 한 조각이 3,500원이고 한 판에는 18,000원입니다. 맥주도 한 컵에 빌스 페일에일 기준으로 5,000원입니다. 마트에서 파는 외산 맥주에 비하면 양도 많고, 무엇보다 병입일자로부터 오래된 것이 아니라 신선한 맥주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매우 적정한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게는 맥주 한 잔이 치사량이기 때문에... 중복섭취에 대한 부담이 없으므로 적정 가격이라 볼 가능성도 있습니다.


  총평하자면,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맛있는 맥주에 피자를 곁들여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이라면 추천합니다. 다만 너무 늦게 가면 홀에 앉지 못하고, 밖에 나와 간이의자에 앉아 먹어야 할 수도 있고 너무 일찍 가면 다양한 맥주를 맛볼 수 없으니 시간을 고려하여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덧 : 음식점을 논하려면 이런 기초정보에 대한 정확한 설명 - 피자는 몇 인치짜리인지, 맥주는 한 컵의 용량이 파인트인지 쿼터인지 등 - 을 해야 할텐데, 그러지 못해 많이 아쉽습니다. 다른 곳에 혹시 정보가 있을까 하여 구글링을 해보았으나 다들 그냥 '한 조각'과 '한 잔'을 단위로 사용하고 있네요. 다음에 다시 가게 되면 한 번 여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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