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그리스 신화의 중심이 되는 델포이에 다녀왔습니다. 수많은 신화들이 아폴론 신전의 무녀에게서 나오는 신탁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라졌습니다. 오이디푸스가 그랬고, 헤라클레스가 그랬습니다. 아폴론 신전의 무녀는 정갈하게 몸을 씻은 후에, 아폴론 신전의 바닥 틈새에서 새어나오는 가스를 마시고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럼 이것을 바깥에 있던 신관이 신탁 의뢰자에게 해석을 해주는 방식으로 신탁이 전해졌지요. 늘 그렇듯, 환각 모티브는 여기에서도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존재합니다. 현재도 수많은 원주민들이 환각성분이 있는 물질을 먹고 신의 말을 전합니다. 우리가 흔히 접신을 한다고 할 때 등장하는 '무아지경'이란 말도, '내가 없는 상태'를 이야기하는거니까 환각 상태를 이야기한다고 봐도 되는 거겠지요.
그리스에서 기독교 이외의 모든 종교가 배타시 되었을때 - 이 때에는 하다못해 빠르떼논 신전도 기독교의 예배당이 되었었다! - 당연히 다른 신을 위한 신전이 즐비한 이 도시는 잊혀지고 말았다. 그러던 것이 프랑스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 복원되었다. 때문에 델피의 박물관에는 영어보다 불어 설명이 더 먼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헬라어, 영어, 불어 이 3개 국어로 설명되고 있다.)
델피 박물관, 아폴론 신전을 다녀와서 언덕 아래에 있는 김나지움과 아테나 신전에 갔다. 뙤약볕에서 10여분 가까이를 걷는 일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델포이를 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축축 쳐지는 몸을 이끌고 언덕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마침 다녀온 날이 토요일 저녁이어서, 도미토리에서 파티가 열렸다. 알코올이라는 지극히 '사회적인' 매개체를 통해 여러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였다. 그 중 몇과는 일정이 맞아 로마로 함께 넘어 온 상태다. 혼자다니는 여행이 좋은 점이 바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만나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딱히 그른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밤새 술을 마시고, 20일 오전에 알코올에 쩔은 몸을 이끌고 페리를 탔다. 유레일 특전을 활용해 성수기 추가비용과 항만세, 유류할증료만 내고 37유로에 그리스를 떠났다. 애초에 그리스를 넣을때, '무리하는 거 아니냐'며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지중해 유랑 중에 다시 한 번 그리스를 와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이지 지중해' 그리스 편을 유용하게 봤다. 소위 국내 1위라는 '100배'는 그리스에서는 아무 쓸모도 없는 책이었다. 대체적으로 100배는 유물-유적보다는 쇼핑-유흥에 더 '전문적'인 것 같다. 때문에 그리스와 같은 유물-유적 중심의 나라에서는 정말 취약한 모습을 여실하게 드러내주었다. 엘 그레코의 나라에서 그의 컬렉션이 있는 국립미술관 소개가 빠진 것이나, 초기 비잔틴 유물들이 잘 모여 있는 비잔틴 박물관에 대한 서술을 빼놓은 것은 개인적으로 무척 아쉬운 일이었다.
바리에 도착해 로마로 오는 6시간 동안 읽어본 100배 로마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가톨릭적 유물들을 개신교적 마인드를 가지고 설명하려드는지 - 작가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다. 후기에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넣은걸 보면 말이다 -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그 둘이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개신교적 마인드를 가지고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하다. 공의회에서 결정된 사안에 의해 건설된 유적, 유물과 교황과 관련한 유적, 유물들은 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한국 개신교에서 믿지 않는 삼위일체와 관련한 설명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가톨릭에서는 삼위일체 교리를 중심으로 생각하기에, 이를 반영한 유물들이 상당히 많다. 듣자하니, 로마 관광의 중심지인 스페인 광장의 계단 이름에도 삼위일체가 들어간다는데 이 교리를 알지 못하는 작가가 대체 뭘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든다.
게다가 어떤 박물관에 있는 두상에 대해 설명하면서, '두상의 크기로 보아 10m가 넘는 거대한 조각이었을 거라 생각된다'라 설명해놓았던데 두상은 거대하고 몸은 작은 '가분수 조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렇게 추정하는 배경에는 분명히 고대 로마인들이 공유했던 '카논'이 존재할텐데, 그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지면이 적었나? 그래도 단계별로 알아야 할 것은 알려줘야 로마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런지. 모두가 다 명품 아울렛이나 가보려고 비싼 항공료내며 유럽을 오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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